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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연구소를 가다)⑪시민건강증진연구소 "정치참여, 건강에 이롭다"
보건의료계 싱크탱크..의료공공성 이슈에 시민 참여 강조
2013-08-05 08:06:52 2013-08-05 09:46:46
[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재야'는 제도권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전에는 "벼슬하지 않고 민간에 존재한다"고 정의할 정도로 권력과는 거리를 두고 쓴소리 내는 재야에 기반을 둔 연구소들이 우리 주변에도 적지 않습니다. 정부 산하이거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여러 연구소들이 제도권의 정책을 보완해서 풍부하게 만드는 것과 달리 제도권 정책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정책을 감시하고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 이들 재야연구소의 주업무입니다. 뉴스토마토는 소수의 목소리로 묻혀있는 이들 재야연구소의 목소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특히 새정부 출범 전후로 빚어진 현안과 향후 이슈에 대한 이들의 견해는 귀 기울일 만합니다. [편집자]
 
“민주주의가 건강 향상에 이바지한다.”
“건강 불평등과 부정의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한국의 정책에는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며 보건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하나같이 '민주주의'와 '건강권'을 연결 지은 말이다. 각각의 중요성은 누구나 수긍할 법한데 그 둘의 연관성은 어렴풋이 유추가능할 뿐이다. 그런데 잠깐, 다른 곳도 아닌 보건의료연구소에서 민주주의를 강조하다니, 이 단체 진짜 정체가 뭘까?
 
 
사단법인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건강권 실현’을 전면에 내세우며 지난 2010년 출범했다. 전신은 2006년 만들어진 ‘건강세상네트워크’라는 이름의 시민단체로 좀 더 전문적 이론을 통해 시민운동을 뒷받침하자는 취지 아래 연구소를 별도로 출범시켰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정관에서 “지역사회 또는 시민단체의 차원에서 건강증진 실천방안을 개발하고 관련 연구를 수행해 국민의 건강권 실현에 기여한다"고 역할을 명시하고 이를 위해 각종 정책 연구와 대안 개발, 의견 개진, 교육 등의 사업을 수행한다고 활동 방향을 밝혔다.
 
다만 연구소의 독립성을 견지하는 차원에서 정부나 기업이 발주하는 연구 용역은 수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민주주의가 건강 향상에 이바지한다"
  
   
 
의료공공성을 제기하는 민간단체는 다른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편이다. 이 가운데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건강’과 ‘정치’의 불가분 관계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좀 더 특별하다 할 수 있다.
 
연구소는 기본적으로 보건의료제도 개혁을 위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지만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는 옛 경구를 건강권에 적용한 듯, 적극적 ‘시민 참여’ 또한 강조한다.
 
연구소가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매주 발송하는 ‘서리풀논평’의 일관된 주제가 그것이다.
 
최근 서리풀논평 제목은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 글은 “민주주의가 퇴보한다면 건강정의를 위한 발걸음도 뒷걸음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다시 관심을 촉구한다”며 진주의료원 폐원 사태와 현대차 희망버스, 신세계그룹 오너의 불기소 문제 등을 하나씩 거론했다.
 
심지어 논평은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상반기에 경제민주화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요건을 완화하겠다”고 발언한 걸 들어 “도대체 무슨 ‘민주’를 말하는 것인가” 모르겠다며 꼬집고 “민주주의는 제도정치나 선거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가정과 학교, 병원, 직장에서, 그리고 내가 사는 마을과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시적 정치와 미시적 건강은 동떨어진 주제로 보여도 보건정책이 일반시민의 건강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참여는 당연하다는 게 연구소의 기본 생각이다.
 
사진제공: 시민건강증진연구소
 
물론 연구소가 정치적 주제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연구소는 건강정책과 건강형평성을 연구하는 센터로 나뉘어 각 주제에 맞는 시민대상 세미나를 열거나 다른 단체와 손을 잡고 보건의료 현안에 대한 각종 보고서를 내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7월부터 11월까지 건강세상네트워크, 동자동사랑방,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과 공동으로 동자동 쪽방 주민 5명과 일대일 심층면담, 주민 225명에 대한 면접설문을 진행한 뒤 ‘쪽방주민의 건강과 삶으로부터 배운다’는 제목으로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서리풀 연구통’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국내외 논문을 발굴, 소개하는 일도 연구소 활동 가운데 하나다. “주류 언론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기술이나 치료법을 소개” 하는 현실에서 일방의 논리가 설파하는 위험성을 바로잡는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기도 하다.
 
"죽도록 일하다간 정말 죽는다", "노동조합 가입하여 애국하자", "건강을 담보로 하는 가계부채", "소득불평등 심한 국가, 학교폭력도 많다" 같은 제목으로 소개된 논문은 전부 실증적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진제공: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소 역사는 길지 않지만 공공성의 최후보루라 할 수 있는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민영화 바람이 불고 있는 만큼 연구소의 향후 활동은 더욱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한쪽에선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또 다른 한쪽에선 무상의료 등 복지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연구소는 올해 하반기 연구과제로 대안적 보건의료시스템을 잡아놨다. 
 
김창엽 소장은 그간 활동에 대해 “상대적으로 정부나 기업에서 하지 못한 연구를 수행해왔다”며 “초보적이긴 해도 건강권, 건강불평등 문제를 아젠다로 만들고 시민 참여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메디텔로 의료관광객 유치?..에피소드 수준의 사례 갖고 일반화하는 것"
 
김창엽 소장(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아래 사진)은 올해 연구소 사업 계획으로 자살문제, 알코올 문제, 병원근무자의 노동 등을 꼽았다.
 
모두 사회적 맥락에서 살펴본 보건의료 이슈다. 개인의 건강은 그가 처한 환경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는 만큼 개인과 공동체가 건강해지려면 ‘참여’가 필수적이라 김 교수는 강조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영리병원과 메디텔 도입을 추진하는 정부 정책도 강하게 비판했다. 오직 병원만 살찌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의료 공공성이란 철학적 잣대를 꺼내들지 않아도 경제적 차원에서 이는 어리석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의료서비스산업 육성으로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정부 논리를 "허황된 꿈"이라고 일축했다.
 
인터뷰는 2일 오후 2시 서울 방배동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진제공: 김창엽 소장
 
- 연구소가 '정치 참여'를 강조하고 있는데 어떤 맥락인가.
 
▲ 대체로 건강이나 의료는 생물학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 몸에 병균이 들어오면 기계 고치듯 고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사람들이 그래서 약도 먹고 검진도 받고 하는데 이 시각에 따르면 의료나 건강에 대한 전문성, 전문가가 중요하다. 기계가 고장나면 아무나 못고치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환자나 비전문가는 수동적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종속적 관계가 되는 것이다. 건강은 지역사회나 내가 속한 공동체, 그런 환경에서 오는 영향이 많은데도 정책 결정에서 배제되는 현상이 나오는 것이다.
 
의사와 환자라는 일대일 관계에서 국가와 시민 사이에서 나타나는 보건의료정책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든 결정을 의사나 국가에 맡겨 버리는 게 타당한가?
 
참여의 문제는 더 이상 피하기 어렵다는 게 기본 생각이다. 건강권은 개인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도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참여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건강에도 이로워..건강권 위해서는 ‘좋은 정치’ 꼭 필요"
 
 
 
- "민주주의가 건강에 이롭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비슷한 이유인가.
 
▲ 건강권이란 건 건강에 대한 권리, 다시 말해 건강을 누릴 권리이기도 하지만 건강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권리이기도 하다. 그 중 하나가 참여할 권리다.
 
예를 들어서 요즘 만성병이 많다고 하는데 만성병을 줄이려면 먹는 것도 제대로 먹고, 운동도 신경 써야 하고, 개인적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할 형편이 못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책적으로 예산을 편성해서 보조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건강의 불평등이 없는 상태, 다시 말해 강남에 살든, 시골에 살든, 어디에 살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건강을 누릴 권리가 있어야 한다.
 
이런 건 누구나 정의라고 생각하는데 우린 그에 더해 건강권을 누리기 위한 정책적 참여도 넓은 의미에서 건강권이라고 본다.
 
여기에다 도로 말고 운동시설 만들어서 이용하게 하자, 그렇게 요구할 수 있는 것, 그것도 건강권이다. 단순히 모든 사람들이 건강한 수준, 그걸 누릴 권리뿐 아니라 평등하게 참여해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제대로 못 배웠다고, 혹은 여자라고, 시간이 없다고 얘기 못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발언권이 있어야 하고 정책결정에 자기의사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핵심은 민주적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는 건데 그 차원에서 민주주의와 건강권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본다.
 
불평등 없이 건강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좋은 정치’가 꼭 필요하고 그렇다면 ‘공동체를 어떻게 바꿀 건가’ 그 차원에서 당연히 정치적 참여도 보장돼야 한다.
 
◇"국내 공공의료는 전체 5% 비중..진주의료원에 시장논리 대지 말자"
 
사진: 뉴스토마토 자료사진
 
- 진주의료원 사건의 본질은 뭔가. ‘공적’이라는 말은 비효율과 직결되기도 하는데 공공과 효율, 둘이 양립할 수 있는 건가, 아니면 공공의료는 비효율적이란 특성을 인정하고 바라보는 게 맞는 건가.
 
▲ 아주 이상적으로 보자면 현실과 관계없이 지금보다 공공의료기관이 늘어야 한다. 왜냐면 민간의료기관은 유지, 발전을 위해 상당한 정도로 ‘시장적 행동’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걸로 병원은 클지 모르지만 부작용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의료이용의 불평등 문제나 비용이 비싸지는 문제가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적당한 수준으로 공공의료를 해야 한다. 시장에 맡기는 게 있더라도 기초보건 의료는 시장매커니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에선 그렇게 남아 있는 게 지방의료원 밖에 없다.
 
만일 ‘이상적 상황’이라면 진주의료원 문제도 다르게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공의료기관이 몇 개 안 남아 있고 거기에서 최소한의 공공기능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돈이 없는 사람들, 민간의료기관에선 진료를 안 하려는 사람들, 갈 데 없는 사람들이 가는 곳, 그렇게 특수한 영역이 비정상적으로 좁아져 있는 상태인데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곳처럼 운영될 순 없는 것이다.
 
운영이 잘 되냐, 안 되냐 그런 질문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거긴 영세민만 가는 곳이기 때문에 운영 수지를 맞출 수 없는 비정상적 상황이란 걸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상적 의료기관에 대한 경영 상태, 효율성 잣대를 들이대고 불합리하다고 하는 건 최소한의 공공기능조차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밖에 더 되나?
 
현재로선 최소한의 공공기능을 제대로 하느냐, 못하느냐 그것에 초점 맞춰 봐야 한다. 그 잣대로 보자면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국가나 지자체 지원은 불가피하다.
 
가장 바람직한 건 공공의 비중이 지금보다 늘어서 공공의료기관이 주된 역할을 하고 민간이 보조적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게 건강 불평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이다.
 
- 공공의료기관은 어느 정도 비율로 있는 게 적당한가.
 
▲수치는 나라와 맥락에 따라 다르다. 개인적 생각으론 공공의료기관 비중이 민간기관이 치료하거나 진료 가격을 정할 때 의식할 정도는 돼야 한다고 본다. 있어봐야 의식할 수준이 아니라면 의미 없는 것 아닌가.
 
예를 들어 초음파진료의 가격을 매길 때 공공기관에서 어느 정도로 하니까 민간인 우리는 이 정도로 해야겠다, 이 수준은 돼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수준? 공공의료기관 규모가 전체 5% 정도 될 것이다.
 
◇"메디텔 도입? 철학 차원뿐 아니라 경제적 실익 따져도 납득 어려운 주장"
 
사진제공: 기획재정부. 정부가 지난 5월 '투자활성화 대책'으로 메디텔 운영 계획을 밝히는 모습.
 
- 기획재정부가 영리병원 도입을 추진하자는 입장인데 어떻게 보나.
 
▲ 그 역시 맥락이 중요하다. 공공이 튼튼하다면 민간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가능할지 모른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토대가 없는 상태다.
 
마치 진공상태와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영리병원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 있는 공공역할도 안 하겠다는 것이다.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게 어디 있느냐 하는데 의도가 뻔하다.그 의도란 건 건강권 보다는 병원만 살찌우는 것이다.
 
- 의료서비스산업은 ‘환상’이라는 입장인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건가.
 
▲ 우리 사회 특징 중 하나가 담론의 진정한 목표가 뭔지 잊어버리는 것이다.
 
의료서비스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명확해야 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이행과정도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우린 꼬리가 절대화 되는 상황이고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격이다.
 
의료서비스산업을 육성하는 목표가 뭐라고 생각하나? 국민 건강 향상에 이바지 하는 것? 국민 의료 이용에 편의를 도모하는 것? GDP 제고하는 것? 일자리 늘리기?
 
의료서비스 산업이 어디에 기여를 하는지 하나씩 검토해보자.
 
흔히 이야기 하지만 개인의 건강 수준이라는 건 의료 이용도 포함되지만 건강보험도 중요하고, 잘 먹는 것도 중요하고, 제대로 운동하는 것도 필요하다.
 
의료서비스산업이 국민 편의 가운데 뭐와 관계된다는 것일까? 3시간 기다려서 3분 진료 받는 현실? 그런데 서비스산업 육성하면 이게 정말 바뀔까?
 
그 다음 GDP는 정말 올라갈까? 일자리라면 무슨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걸까? 의료서비스산업을 육성한다고 하기 전에 이런 걸 먼저 살펴봐야 한다.
 
현재 급성기병상(30일 이하 진료를 위한 병상)은 우리가 OECD 평균 보다 많다. MRI 같은 고가장비도 인구 당 수로 따졌을 때 우리가 OECD 평균 보다 훨씬 많다.
 
그렇다면 저런 주장을 펴는 실체가 뭐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의료서비스산업을 육성하자는 속내는 기껏해야 영리병원을 허용하려는 공세에 불과하다.
 
영리병원 만들어서 영리성 투자 가능하게 해주자, 돈벌이 하는 데 장애가 없도록 의료공공성 치우자는 것인데, 그 이익의 원천이 어디서 나오겠나?
 
결국 일반 국민이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료는 휴먼서비스..휴대폰 파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돼"
 
사진: 뉴스토마토 자료사진
 
- 일각에선 ‘의료관광’에 대한 장미빛 전망을 늘어놓고 있는데 이것 역시 환상이라고 보면 되나.
 
▲ 외국인 유치하는 의료관광상품 개발? 허황된 꿈이라고 본다. 첫째, 의료라는 것은 휴먼서비스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의미 있는 산업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전세계적으로도 성공한 사례가 없다. 평등이고 공공이고 이런 철학을 떠나 실무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아픈 사람이 비행기를 몇 시간이나 타고 보호자도 없는 곳에 와서 돈이 될 정도로 소비할 거다? 불가능하다고 본다. 지금 신문마다 몇 명 유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건 전체 산업규모에 비하면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있긴 하겠지만 전체 산업 규모에서 보면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다. 백만장자 몇 명이 한국에 와서 관광을 했다고 전체 산업 규모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과 같다.
 
의료서비스산업은 반도체나 휴대폰을 파는 것과 다르다. 휴먼서비스다. 서비스 이동에 한계가 있다. 죽자고 달려들어도 전체 산업 규모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다.
 
돈벌이가 된다는 건 한두 사례에 그친다. 지금 봐도 의료관광 매출의 대부분은 국내에서 나오고 있다.
 
물론 저런 주장을 펴는 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닌데 냉정하게 볼 때 의료서비스는 의미 있는 미래산업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 국부를 창출한 유례가 없다.
 
싱가폴, 태국 이야기 많이 하는데 한두 개 병원에서 그런 사례 나왔다고 그 나라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무슨 의미 있는 변화를 줬겠나?
 
없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 하는데 그렇다고 그걸 국가 정책으로 삼는 건 이상한 거다. 의료공공성, 의료정의 같은 철학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경제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사진제공: 김창엽 소장
 
- 이른바 개혁진영에서 주장하는 무상의료의 현실가능성은 어떻게 봐야 하나.
 
▲ 그 이야기를 하려면 무상의료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그것부터 풀어야 한다. 무상이라는 건 폭이 넓다. 어떤 종류의 무상의료인가 이걸 봐야 한다.
 
그 차원에서 보자면 무상의료는 영국이나 스웨덴처럼 다른 나라에 실례가 있다. 각각의 배경은 다르지만 불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무상의료인가, 각각은 얼마나 쉽고 얼마나 어려운가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가능할 것이다.
 
무상의료는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게 많다. 무엇보다 무상의료가 된다고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국식 무상의료를 도입하면 당장 천국이 될까?
 
반대로 영국의 일부 병원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그게 전적으로 무상의료라는 시스템 때문에 불거진 것일까? 그건 지나치게 일반화 하는 시각이다.
 
지금은 무상의료라는 것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것에 관심 갖고 무상의료, 무상에 가까운 제도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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