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재야'는 제도권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전에는 "벼슬하지 않고 민간에 존재한다"고 정의할 정도로 권력과는 거리를 두고 쓴소리 내는 재야에 기반을 둔 연구소들이 우리 주변에도 적지 않습니다. 정부 산하이거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여러 연구소들이 제도권의 정책을 보완해서 풍부하게 만드는 것과 달리 제도권 정책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정책을 감시하고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 이들 재야연구소의 주업무입니다. 뉴스토마토는 소수의 목소리로 묻혀있는 이들 재야연구소의 목소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특히 새정부 출범 전후로 빚어진 현안과 향후 이슈에 대한 이들의 견해는 귀기울일만 합니다. [편집자]
신자유주의가 고장난 게 명확해지면서 대체재를 찾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누군가는 사회적경제를, 누군가는 복지국가를 주목하는가 하면 이 자체를 신자유주의에 대한 '보완'으로 바라보고 비판하는 시선도 없지 않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수정이냐 전면 재편이냐, 지향점과 방법론이 다 다르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는 이처럼 신자유주의 이후 꿈틀대는 움직임을 주목한다. 그것도 지구적 차원에서 흘러온 자본주의 변화 속에서 조망해보려고 한다. 연구소 이름 앞에 '글로벌(global)'이 붙은 건 사람들이 맞닥뜨린 위기와 변화가 국적이나 국경과는 무관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500년 넘는 자본주의 역사가 패턴을 갖고 있다면 어떤 것일까? 신자유주의는 그 패턴 안에서 이제 어떻게 바뀔까? 지난 2008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구조 변화 흐름 속에 들어선 건 분명한데 변화 가능성은 어디까지일까? 연구소가 지닌 문제의식엔 이런 게 포함돼 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지구적 구조의 변화 특히 금융위기, 재정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 체제의 향방에 초점을 두고 그 궤적을 추적하며 이러한 현실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지구정치경제학의 학문적 발전과 심화에 주력한다"는 설립취지를 내걸고 지난 2011년 출범했다.
연구소에는 현재 홍기빈, 오건호, 장석준, 박형준, 정욱식, 지주형, 홍일표 등 경제, 복지, 평화 문제에 정통한 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연구소 역사는 길지 않지만 ‘GPE총서’로 소개해 놓은 책만 10여권에 이르는 등 출판활동은 활발하다.
<자본주의 고쳐쓰기>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돈의 본성> <체제적 공포, 현대 금융과 자본주의의 미래> 등이 그동안 연구진에 의해 번역 혹은 저술됐다.
올해 초에는 무크지 <위기·반란·대안>을 펴내고 유로존 위기와 유럽 좌파의 대안 등을 소개했다. 앞으로 글로벌 위기가 현안으로 부상하고 쟁점이 부딪칠 때 계속해서 무크지를 낼 계획이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는 '지구정치경제학'이란 다소 생소한 연구방법론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이는 쉽게 말해 국내와 국제, 정치와 경제를 나눠서 연구해온 학문간 경계를 허물어 지구적 차원의 정치경제 질서와 그 변화를 폭넓게 살펴보는 방법이다.
"현존 역사 구조가 어떻게 형성돼 왔고 어떤 내적 논리로 구조화 됐는지, 그것이 어떤 동력 속에 변형되고 있는지 중요과제"로 삼고 있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지구성'이라는 거시적 변화에 대해 한반도 사람들은 인식 부족 상태라는 지적도 빠뜨리지 않았다.
"일본 제국주의의 강탈에서 현재의 ‘금융 허브’ 정책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사람들이 지구적 변화의 방향과 성격을 정확하게 진단해 적극적으로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개척했었던 경우는 많지 않고 오히려 역행하는 방향을 선택해 왔다"는 것.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선택이 대안으로 가능할까? 연구소는 이에 대해 특정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여타 연구소와 차이점이 이것인데 이들은 정책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되고자 하지만 여타 싱크탱크처럼 적극적으로 담론 형성에 나서는 걸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말 그대로 순수한 의미의 연구를 목표로 하고 결과물은 정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소스가 되기를 희망한다. 때문에 활동 역시 출판과 세미나, 워크숍 등에 주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착하는 분야는 있다. 연구소는 지난 5월 '1990년대 이후 스웨덴 재정복지개혁 내용과 평가' 보고서를 내는 등 북유럽 사민주의 모델을 주력 연구과제로 삼고 있다.
현실에서 성장과 분배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절충점을 찾은 드문 사례라고 보기 때문이다. 연구소는 '사민주의의 가능성'과 '제3의 길'의 실패를 올해 연구사업으로 꼽고 있다.
◇ “시장이든 공공이든 필요한 역할 있어..다원적 조직화가 중요”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위 사진)은 시장이든, 공공이든, 사회적경제든 각각의 고유역할이 있기 때문에 적재적소에 조직하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 문제는 한 극단만 좇으면서 다른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데 있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그 극단이란 시장과 기업만이 옳다는 믿음이다.
홍 소장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대안으로도 특정한 경제시스템을 고집할 게 아니다.
요컨대 경제학에선 흔히 '시장'과 '정부'를 대별되는 가치로 설명하지만 중요한 건 조화를 통해 유기적 시스템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연구소가 스웨덴 모델을 주목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였다.
홍 소장은 신자유주의 폐해를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대안경제를 국내에 여럿 소개해왔다. 저서와 역서만 10여권 이상인데 특히 2009년 번역한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사회적 반향을 크게 낳았다.
홍 소장은 라디오방송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한 바 있고 지금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칼럼을 쓰고 있어 대중적으로 친숙한 인사기이도 하다. 인터뷰는 서울 서교동에 자리한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 연구소가 지향하는 경제체제와 실천방안이 있다면.
▲ 지난 30년 동안 시장근본주의가 지배적 담론으로 정치, 경제뿐 아니라 사회관계 일반을 조직하는 것으로 기능해왔다. 시장근본주의에 맡기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으로 그렇게 해왔는데 2007년, 2008년 세계적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30년 담론이 지녔던 정당성, 논리적 설득력이 약화됐다.
이젠 시장근본주의가 지향하는 방식이라든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는 게 옳다고 철썩 같이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럼 어떤 것에 맡기느냐? 그에 대해 아직 대안체제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사회 불평등, 환경 파괴 이런 것을 고칠 수 있는 대안적 정치경제를 조직하자는 합의는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그렇게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변해가는 것, 어떤 쟁점이 나오고 있고 큰 틀에서 대안적 정치경제체체로 어떤 정책이 가능한지 연구하자는 게 우리 연구소 목적이다.
우리는 대중담론을 형성하는 것보다 대중교육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연구소 이름 때문에 국제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정확히는 신자유주의로 지구적 차원의 정치경제 시스템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연구하는 게 우리 목표다.
사진 제공: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 보고서나 언론보도를 통해 스웨덴식 복지모델, 스웨덴의 사민주의을 계속 소개하고 있는데 이 모델이 대안으로 유력하다고 보는 건가.
▲ 그 부분은 갈라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분명한 건 한국은 스웨덴 같이 될 수 없다는 점인데 원론적으로 다른 체계를 가져오는 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우리는 문화나 역사적 전통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스웨덴에 있는 구체적 제도를 가져오자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하냐? 사람들 지배하는 정치경제철학으로 시장근본주의하고 맑스공산주의가 있고 그 두 가지 아니고선 사람들도 잘 모른다.
이 지점에서 북유럽 사민주의를 통해 또 다른 방법론, 보편적 사상과 이론을 찾아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구체적 정책을 베끼는 것은 불가능해도 사상과 이론 차원에서 보편적이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이 거기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걸 연구해보려는 것이다.
지금은 알아보는 단계다. 우리가 꿈꾸는 것은 직접 정책을 만드는 싱크탱크가 아니라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연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정책을 만드는 데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이고 사민주의에 대한 연구도 그렇게 자료로 제공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보편적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걸 가리키는 건가.
▲ 산업사회에서는 경제활동을 조직하는 데 시장과 기업이라고 하는 방법이 있었다. 그 방법은 효율적이긴 하지만 비효율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를테면 공공부문이 그렇다. 그런 경우엔 사회적경제를 병렬적으로, 다원적으로 조직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시장근본주의가 해야 할 역할이 있고 아닌 게 있다는 건데 중요한 건 여러 경제활동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시장경제와 사회적경제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만든 비그포르스 (자료제공=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 세계적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시장근본주의는 시효를 다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역할이 있다는 의미인가.
▲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를텐데 시장경제는 수익성 원리를 충족할 수 있는 경제활동에 적합하다.
시장경제, 그보다 화폐경제라는 표현을 쓰는데 화폐경제는 그것이 가진 비인격적 속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계산에 근거해서 아주 큰 규모의 노동 분업을 조직할 수 있다. 이를테면 포항제철을 사회적경제로 조직할 순 없지 않은가.
필수불가결한 산업경제에선 필요성이 있지만 다만 수익률이 미치지 못하는 경제활동은 배제되니까 그런 곳은 사회적경제로 조직하는 게 필요하다.
- 사회적경제의 가능성은 어디까지 봐야할까.
▲ 사회적경제는 시장경제가 조직하지 않는, 시장경제가 문제를 낳는 부분을 효율적으로 그리고 생산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된다.
예를 들어 대개 부모는 자식에게 악기를 가르치고 싶어 하고 훌륭한 문학 선생님도 붙여주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걸 시장에 맡기면 잘 조직될 수 있을까?
기업이 할 수도 있겠지만 기업은 돈이 남아야 투자를 한다. 그것도 안정적 수익을 낼 수 있을 때 투자한다.
모든 아이들이 음악적, 문학적 소양을 갖게 됐을 때 그 사회적 가치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화폐가치로는 제로다. 이런 걸 공공이 할 수 있다.
공공도서관을 굉장히 잘 짓거나 무상으로 이용 가능한 공공음악학교를 전 지역에 설립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남는다. 세금이 많이 들고 수익이 안 난다는 점인데 이 경우 음대나 인문대 졸업한 어머니들이 모여서 협동조합을 만들어 해결할 수 있다.
1등만 기억한다는 광고 카피 기억하나? 시장경제의 문제는 생산자 중에선 1등 능력을 가진 사람만, 소비자 중에선 큰돈을 낼 수 있는 사람만 인정한다는 점이다.
사람들 모두가 1등이 될 수는 없는데 1등이 아닌 사람은 사장된다. 소비자 역시 큰 돈 낼 수 없는 사람의 욕구는 무시되고 배제된다, 그런 배제된 욕구와 능력 때문에 대안적 조직 방식이 필요한 건 분명하다.
물론 공공의 방식도 있긴 한데 단점은 대규모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철도라든가 수도, 복지 분야 이런 데 적합하고 효율적이지 않은, 세심함이 필요한 부분은 사회적기업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중요한 건 각각이 대등하게 관계 맺을 수 있도록 하는 점이다. 사회적경제가 됐든 다른 무엇이 됐든 전부를 대체하는 건 있을 수 없다. 시장이든 공공이든 있어야 할 데가 있다.
시장근본주의는 이걸 부정해서 공공부문도 없애야 하는 게 좋다고 하고, 사회적경제의 의의도 인정하지 않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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