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민주화가 시대정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표 재벌인 삼성은 세리보고서를 통해서 한국의 의제를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새사연은 삼성보고서의 거짓말을 두고 보지 않겠습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삼각동맹(재벌-경제관료-조중동)의 정중앙을 조준하겠습니다. 재벌개혁 경제 민주화 정책 의제를 선도하겠습니다.”
<사진 제공: 새사연>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하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새해를 맞아 새사연 홈페지이에 밝혀놓은 포부다.
연구원만 340명을 거느린 삼성경제연구원과 대적하겠다고 밝혔지만 새사연은 현재 9명의 연구원을 두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한국형 진보의 길’을 만드는 데 새사연의 역할은 적지 않았다.
새사연은 ‘진보진영의 싱크탱크’를 자처하며 2006년 2월 출범했다.
◇새로운 담론과 이슈 주도..구체적 정책화 목표
주류경제가 퍼뜨리는 거짓에 맞서 새로운 사회경제 담론과 이슈를 주도하고 구체적 정책으로 이를 내놓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학계와 명망가 인맥에 기대지 않고 ‘40대 진보적 생활인’이 주축이 돼 만든 게 특징이라 할 만하다.
1, 2대 원장은 언론인 출신의 손석춘 씨(현 건국대 교수)가 맡았고 2011년부터 정태인 원장이 새사연을 이끌고 있다.
<자료 제공: 새사연>
새사연의 관심사는 노동, 복지, 교육, 의료, 여성, 주거, 농업 등 사회경제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워낙 많은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로 정리하기 힘들 정도다.
다만 출범 당시엔 신자유주의와 ‘삼성공화국’을 넘어서는 방안으로 금융 공공성, 기업 민주주의를 주장했고, 이명박정부와 세계 금융위기가 걸쳐 있던 시기엔 민영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한편 시장경제를 대체하는 대안경제 찾기에 힘을 쏟았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선 재벌개혁을 주목하는 보고서를 여럿 쏟아내며 정치권이 구호로 외치는 경제민주화가 올바른 방향을 잡도록 쓴소리도 많이 냈다.
새사연은 최근 정태인 원장과 이수연 연구원이 <협동의 경제학>을 출간하고 이달 말 ‘사회적경제 학교’를 개강하는 등 당분간 대안경제 찾기와 양극화의 근원을 추적하는 작업에 매달릴 것으로 보인다.
<자료 제공: 새사연>
새사연의 시각으로 제시한 정책은 그동안 10여권 발간한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출범 첫해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2006년)을 필두로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 <우리 농업, 희망의 대안>(이상 2007년),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신자유주의 이후의 한국경제>(이상 2008년), <성장률 속에 감춰진 한국사회의 진실>(2010년)을 그동안 새사연 이름으로 펴냈다.
대선이 치러진 지난해엔 <리셋 코리아>, <대선후보 주요정책 평가>, <대선후보가 말하지 않은 중요정책>을 내는 등 새사연은 한해 가장 큰 과제로 ‘정책보고서’를 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자발적 회원 참여, 회원 9000명 회비와 아이디어로 운영
그러나 새사연이 담론을 퍼뜨리는 방식은 일방향의 보고서 작성과 강연·강좌·강의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진 제공: 새사연>
새사연은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 아래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 연구소와 다르다.
새사연은 처음부터 회원 기반 연구원을 목표로 출발했다.
타깃층도 지적 욕구에 목마른 생활인으로 일반시민과 전문가집단 사이의 중간층을 겨냥했다.
김병권 부원장은 “시민단체의 경우 회원을 두고 있지만 우리가 출범할 당시만 해도 회원 기반으로 운영되는 연구소는 없었다”면서 “연구소는 딱딱하다는 인상이 있는데 우리는 일반 시민과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회원제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출범 이래 7년이 지난 지금 회원 수는 8733명(5월19일 기준). 온라인회원뿐 지역별, 연령별, 혹은 복지나 교육 등 주제별 분과나 모임이 가동 중이고 다달이 ‘새길산책’이란 이름으로 산행에 토론을 곁들이는 행사도 벌이고 있다.
회원끼리 ‘투표시간 연장’ 등의 캠페인을 벌이는가 하면 이들이 요구하는 정책 방향을 일간지에 광고로 내기도 한다.
회원들이 보태는 회비와 아이디어가 새사연의 자산이다.
새사연은 지난해 말 <한경비지니스>가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 정치사회 분야 4위에 랭크됐다.
규모만 놓고 보면 수백명의 연구원과 수십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거대기업 부설연구소에 비할 바 아니지만, 사회경제 아젠다를 주도하고 새로운 운영모델을 선도한 점에서 7살 새사연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사진 제공: 새사연>
◇"올해는 한국사회 10대 불평등 추적"
김병권 부원장(아래 사진)은 새사연의 안살림을 책임진다.
정태인 원장이 강연과 강의 등 외부활동에 주력한다면 김 부원장은 기고는 기고대로 하면서 내부계획을 조율하는 실무를 담당한다.
김 부원장은 새사연이 올해 주목하는 이슈로 한국사회 불평등 문제를 꼽았다.
소득, 주거, 교육, 의료 등 전방위로 불평등을 연구해서 한국사회 맨얼굴을 책으로 펴낸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새사연 창립멤버인 김 부원장은 이전에 없던 '회원 기반 연구소' 모델에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대안과 담론을 만드는 데 회원들 역할을 좀 더 끌어내는 방법이 과제로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구원과 시민들간 접촉면을 넓히는 데 온라인을 처음부터 주목한 IT 전문가이기도 하다.
인터뷰는 14일 오후 서울 상수동 새사연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새사연의 목표를 보면 "막강한 예산과 인력을 보유한 기업 연구소나 국책 연구소가 국정 방향을 움직이고 있는 시대, 이들 연구소의 독주를 막겠다"는 언급이 나온다. 대기업연구소, 국책연구소가 설파하는 의제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대기업연구소는 기업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책연구원은 정부 정책을 돕거나 국정을 홍보 역할을 한다.
둘다 일반시민이 갖고 있는 지적욕구를 해소할 수 없다. 목소리 폭도 좁을뿐더러 상위기구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어떤가. 시민들의 지적수준이 매우 높아졌다고 본다. 국가나 지역 이슈에 대해 정책적 판단을 해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참고할 만한 데가 많지 않은 것이다. 새사연이 애초 출범한 것도 시민들의 이같은 지적욕구를 풀어주기 위해서다.
- '시대의 나침반'이 되겠다는 목표는 얼마만큼 이뤘나.
▲사실 과락보다 나은 정도라고 본다. 일반기업 입장에서 설립 7년이면 손익분기점을 넘겨야 할 시점인데 새사연이 처음 기획했던 운영모델과 그 성과를 놓고 봤을 때 그렇다.
회원 기반의 연구원 모델은 어느 정도 정착 한 거 같은데 생산되는 내용은 회원들의 기대에 못 미친 것 같다.
처음 구상한 이상적 모델이 회원들을 정책 개발에 적극 참여시킨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특정분야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일정 수 이상 모여 토론을 벌이고 이들이 돈을 내 연구원을 채용하는 시스템이다. 실제 보건분야 연구원은 그렇게 뽑았다.
그런데 나머지 분야는 성공하지 못했다. 회원들이 후원회원에 머물러 있는 게 한계가 있다.
정책토론에 회원들을 적극 참여시키는 모델은 유효할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 추진할 생각인데 방법은 좀더 고민을 해봐야 한다.
◇"회원기반 연구원 모델은 유효..적극적 의견 개진 끌어낼 것"
- 올해 주력하려는 사업이나 계획은.
▲연구원 공동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두 가지다. 먼저 우리 사회 10대 불평등을 추적해 보려고 한다.
불평등 문제는 오랜 이슈이면서 우리 사회 근저가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볼 수 있다. 소득 불평등, 교육 불평등, 주거 불평등, 에너지 불평등 이런 게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골고루 보려고 한다.
또 하나, 서울시 혁신모델을 평가해보려고 한다. 지금 박원순 시장이 하고 있는 방식은 오세훈, 이명박 전 시장과 다른데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보자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볼 건 뭔지, 부정적으로 볼 건 뭔지 냉정하게 평가해보려고 한다. 내년은 지자체 선거가 있으니까 긍정적 정책을 다듬어서 선거 공약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경제민주화 입법안..6월 국회 넘기면 더는 추진 어려워"
- 새정부가 경제민주화를 내세웠는데 어떻게 보고 있나. 진정성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가 있다면 무엇일까.
▲경제민주화는 재벌이라고 하는 막강한 파워집단을 견제하는 의미가 있다. 정부 힘이 비교적 센 집권 초 이걸 이뤄야 하는데 지금은 의지가 약하지 않나?
이번 4월 국회에서 통과된 경제민주화 법안을 보니 많이 잡아도 3개 정도다. 정년 연장, 하도급법 개정, 임원연봉 공개하는 자통법(자본시장통합법) 등인데 애초 예상한 것보다 수위가 낮다.
대기업 임원연봉의 경우 지금은 총액만 공개하는 수준인데 일본과 미국은 1990년대 이미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스위스에선 지난 3월 은행 임원들의 보수를 제한하는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서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선진국에선 임원 연봉 정보를 ‘알고 싶다’가 아니라 일정 수준으로 규제하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제야 연봉을 ‘알고나 싶다, 공개하라’ 이 수준 아닌가.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처벌, 재벌총수의 배임죄 형량 강화, 이런 게 6월 국회로 넘어간 상황인데 6월엔 얼마큼 입법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만일 6월 국회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더는 어렵다고 본다.
◇다른 나라에선 임원 연봉 제한..우린 이제야 "연봉이라도 '쫌' 알자!"
- 재벌개혁 이슈는 매번 부상하는데 매번 실패하는 것 같다.
▲ 사실 재벌로비는 예상됐던 부분이다. 그걸 박근혜정부도 새누리당도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강령 개정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애초 의지가 의심스럽다.
재벌의 양보를 끌어내고 재벌의 반발을 억제하는 게 중요한데 잘 못한다. 이번 경제민주화 정책도 잘 안될 것 같다.
- 대형마트 판매품목 제한이나 청년고용촉진법에 대해서는 평범함 주부들, 평범한 30대가 반대하지 않았나. 재벌의 반대와 별개로 일반시민 사이에서 개혁입법에 동의하지 않는 여론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 사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개혁은 없다. 개혁이 대의명분을 얻으려면 결국 다수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볼 때는 정보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예컨대 대형마트 일요휴무제에 대해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에는 반대가 더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중소상인들 처지에 대해서 많은 시민들이 알게 됐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분들도 주말이나 휴일엔 쉬어야 한다는 공감대도 퍼졌고 밤 12시까지 영업을 할 때 이윤 대비 에너지 소비가 실제 어떻다는 것도 알아가고, 그러면서 당장 눈앞의 불편함 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지키는 게 우선이라는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서울시의 대형마트 품목 제한 논란도 지금이야 불편하다는 여론이 더 많을 수 있지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중요한 건 그같은 불편함이 양보 가능한 것인지, 아닌지 비교할 수 있는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전경련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라. 대형마트에 간 사람들 대상으로 조사해서 판매품목 제한에 반대여론이 더 높다는 보도자료를 낸다. 이러면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왜곡된 정보를 접하게 된다.
사실 시간이 없는 사람은 주말에 주기적으로 마트를 이용하는 게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물건을 다량 구매할 게 아니라 한 개 정도 살 거라면 작은 가게가 나을 수 있다.
지금은 문방구든 서점이든 작은 가게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는데 그 전에 중요도를 놓고 경중을 따져볼 필요는 있었다. 이용자 편의나 이용빈도 전부 포함해서 말이다. 그걸 판단한 뒤 대형마트를 어떻게 할지, 작은 가게를 어떻게 할지 정해도 늦지 않다. 정년 연장이나 청년고용촉진법도 마찬가지다.
◇"핵심 빠진 기업 지배구조 개선 대책..실효 있을지 의문"
-진짜 싸움은 6월에 벌어진다고 한다. 정부가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으로 내세우고 있는 게 금산분리, 신규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전환 유도 등인데 어떻게 평가하나?
▲당연히 충분치 않다. 순환출자 문제도 전면 금지해야 하는데 신규 출자만 금한다고 하고.
사실 이 문제는 삼성하고 현대차, 즉 재벌 넘버원, 넘버투 그룹의 순환출자 문제를 해결하는 게 핵심인데 그걸 그대로 내버려두고 신규 출자만 금한다는 게 무슨 의미 있을까?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이 사실 굉장한 게 아니다. 이명박정부 때 풀어 준 걸 그 이전으로 원상복귀 시키자는 것이다. 금산분리도, 지주회사도 마찬가지다. 이명박정부가 풀어놓은 걸 되돌리자는 주장을 하는 건데 그마저 안 하고 있다.
사실 금산분리나 순환출자 금지나 출자총액 제한제는 10년 넘은 테마다. 외환위기 이후 15년이 지났기 때문에 새로운 법, 다른 수단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대기업집단법을 만들자고 했다. 종합적으로 재벌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또 하나 재벌에 대한 계열분리 명령제를 도입하자고 했다. 그나마 대선 때 이런 이야기가 나왔지만 쑥 들어갔다. 지금은 최저수준의 규제를 두고도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 아닌가.
◇“사회적경제 주제로 잘 닦은 이론 내놓을 것”
- 요즘 사회적경제에 희망을 걸어보는 여론이 많다. 사회적경제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는지.
▲ 유럽의 사례로 사회적경제가 위기의 완충지대가 될 수 있다는 게 입증됐다.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사회적경제나 협동조합 비중이 높은 나라는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위기에 강한 경제 형태다.
우리도 위기국면에서 사회적경제 비중을 늘리자, 장기적 차원에서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정부 역시 협동조합기본법도 만들고 하는 것 같다. 워낙 대기업 위주의 시장경제만 밀어주는 식이었으니까.
다만 사회적경제가 어떤 원리에 근거해서 나왔는지, 기존 시장경제 주류경제와는 어떻게 관계를 맺고 가야 하는지 그런 이야기는 부족하다.
우리가 하는 역할이 그런 부분에 대한 이론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활동하는 분들이 더 잘 할 수 있도록 현장에 접목할 수 있는 이론을 만들려고 한다.

<사진 제공: 김병권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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