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현우기자] 박근혜 당선자가 30년만에 청와대로 돌아간다.
박 당선자는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인 16년 동안 청와대에 머물렀다. 1974년부터 육영수 여사가 조총련 문세광의 흉탄에 사망하면서, 어머니 대신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1979년 암살되면서 청와대를 박 당선자도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
박 당선자는 청와대를 떠난 후 정치와 무관한 시간을 가졌다.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 전 대통령 시절 여당이었던 민주공화당 인사들과 유신정우회 계열 인사들이 1981년 한국국민당을 창당했었고, 1987에는 박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김종필 전 의원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했었다.
하지만 박 당선자는 이들과 정치활동을 함께 하지는 않았다.
대신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등을 운영하며 사회활동에 전념했다. 대신 꾸준히 외부 행사에 참석하고 거물 정치인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 이회창 요청에 정계 입문
박 후보에게는 20년만에 기회가 돌아왔다.
당시 IMF사태에 대한 책임과 아들 병역문제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대선에서 패하면서, 한나라당은 여당에서 야당으로 떨어졌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이회창 전 총재는 박 당선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박 당선자는 보수층이 많은 대구 달성군에서 1998년 16대 국회의원으로 수월하게 당선됐고, 반년만에 한나라당 부총재까지 오르며 정치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박 당선자는 부총재가 된 후부터 강렬한 존재감을 나타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이 전 총재의 1인 지배체제를 비판하며 이 전 총재의 도우미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기도 했다.
◇ 위기 때마다 부각..'선거의 여왕'
이 전 총재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패하면서 한나라당은 야당에 머물렀다.
하지만 박 당선자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명성이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2004년 한나라당이 발의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는 역풍을 맞았고 대기업에서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들어나면서 한나라당 지지율은 급락했다.
17대 총선에서 한자리수의 의석을 차지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도 나왔다.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을 구한 것은 새 대표가 된 박 당선자였다.
박 당선자는 대국민 사죄했고, 당사와 연수원을 매각해 820억원의 불법자금을 갚았다.
새누리당의 지지도는 회복됐고 17대 총선에서 121석을 차지하며 예상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이후 박 당선자는 2005년 열린우리당의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는 장외투쟁을 지휘하고, 2006년 커터칼 피습사건 등을 겪으며 강한 리더라는 이미지를 만들어갔다.
◇ 과감한 도전이 성공..압도적 지지로 대선후보
박 당선자는 대선 전 한차례 위기를 맞았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한나라당이 여당 지위를 차지했지만, 독선적인 국정과 민생 악화로 지지율은 계속 하락했다.
박 당선자도 이 대통령과 뚜렷한 선을 긋지 못했다.
지난해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이 투표율을 낮추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후보 홈페이지에 디도스 공격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한나라당은 다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박 당선자는 위기에 강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박 당선자는 "집권여당으로서 국민의 아픈 곳을 보지 못하고 삶을 챙겨드리지 못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죄한다"며 이 대통령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1월에는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개정했다.
박 당선자의 모험은 성공했다.
새누리당은 열세라고 평가받던 19대 총선에서 152석을 차지하는 성과를 차지했다.
박 당선자는 19대 총선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2012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84%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