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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공화국④)동료도 가족도 대화 '단절'..'마음 둘 곳 없다'
은둔형외톨이 의사불통..사회 범죄로 확대
2012-11-26 14:53:45 2012-11-29 12:14:32
[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여의도 한복판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의정부역 흉기난동, 울산 슈퍼마켓 칼부림 사건. 최근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는 '묻지마 범죄'다.
 
묻지마 범죄는 아무 이유 없이 행해지는 것으로 알려진 경우가 많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낙오된 사람들의 자포자기형 분노 범죄다. 자신의 경제적 조건이 하락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자 불특정 다수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불우한 가정환경, 경제적 어려움, 고용 불안, 잦은 실업, 사회적 차별 등 불안정한 사회의 구조적 영향 속에 패자부활조차 불가능한 환경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뉴스토마토는 묻지마 범죄를 무조건 범죄로 여기기보다는 이를 양산하게 하는 사회적·경제적 근본적 원인을 파헤치고, 사회적으로 넘쳐나는 '화'를 유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새벽에 출근해서 야근에 회식까지, 어느 덧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사회생활은 '가정에서의 저녁생활이 없는 삶'이 일상이 돼 버렸다.
 
특히 최근에는 스마트폰·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언제 어디에 있든 '함께지만 또 따로'인 생활을 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무한 소통시대가 열렸지만 결국 그 속에 갇혀버린 꼴이 됐다.
  
외도와 알코올 중독·경제적 어려움 등 전통적인 가정불화 외에도 소통과 관심 부족에 따른 오해와 갈등이 사회적 범죄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사회는 하루가 달리 각박해져가지만 답답한 마음을 열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사회생활의 준거집단(Reference group)인 가정에서도 대화는 사라져 가고 있다. 화를 참지 못한 돌발행동·범행 등이 만연해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족과도 동료와도 대화 없다.."사방이 벽"
 
26일 취업 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4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하루 평균 30분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화시간이 1시간 이상이라고 응답한 직장인은 9.9%에 그쳤으며 10분 미만이라는 답변도 무려 31.5%에 달했다.
 
가족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그렇다고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동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도 아니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4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할 결과, 10명 중 3명은 평소 동료들과 대화를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인 10명 중 4명은 동료들과의 대화 시간이 하루 평균 10~30분 미만이었다.
 
대화를 나눌만한 대상이 없어서, 많은 업무로 대화시간이 없어서, 할 얘기가 없어서 등이 이유였다.
 
직장 생활 14년차인 오 모(44세) 씨는 "직장에서의 업무와 눈치보기 등에 시달리다 보니 동료라고 해도 마음 놓고 이야기조차 하기 어렵더라"면서 "집에 와서는 지칠대로 지쳐서 가족들 얼굴을 보면 짜증부터 내게 된다"고 말했다.
 
가정에서 일을 하는 남편이나 워킹맘들은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속 마음을 터놓은 사람이 없이 외로이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韓 청소년 자살률 OECD 회원국 중 1위..자녀들 '외롭다'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맞벌이가 많이지면서 자녀들이 혼자 방치되는 일도 많아졌다. 부모와 자녀가 마주칠 일이 적다보니 공통의 관심사가 적어지고 서로 간 벽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동화약품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초·중·고등학교 재학생 자녀를 둔 부모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교생 가정의 27%가 최근 일주일 내 가족 구성원이 모여 식사한 횟수가 2회 이하라고 답했다. 자녀의 학년이 높을수록 함께 하는 시간은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끼리 모여 식사를 하더라도 대화를 나누는 가정은 27.5%에 불과했다. 가족 간 대화가 없는 이유는 '공통의 주제가 없어서'(40%)'가 가장 많았으며, '식사하면서 TV를 보기 때문에'(32.7%),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10.9%) 등의 순이었다.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은 끔직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지난 여름에는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한 후 8개월간 시신을 방치한 채 학교를 다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어머니는 아들에게 전교 1등을 강요하며 밥을 안주거나 잠을 못자게 했고 심지어 체벌까지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29세)는 "성적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아이가 요즘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등에 먼저 관심을 기울이라"며 "공부도 심리적인 안정이 수반될 때 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한국 청소년의 자살률이 1위, 행복지수는 25위라는 통계도 씁쓸한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다.
  
◇스마트폰 의존도 확대.."얼굴보고 대화 어색"
 
이 같은 대화 단절은 '은둔형 외톨이'를 양산한다. 은둔형 외톨이는 1인 가구뿐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도 가족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들이다. 최근 잇달아 발생한 '묻지마 범죄'의 피의자들 중에는 은둔형 외톨이가 많았다.
 
대화할 상대가 없자 최근에는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 등의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온라인·모바일 설문조사업체인 두잇서베이가 스마트폰 이용자 265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하루에 31번 이상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이 24%에 달했다. 자는 시간을 빼면 한 시간에 두 번은 스마트폰을 열어본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기반한 의사소통을 즐기다보니 온라인에서는 활발한 사람이라도 실제 사람들끼리 얼굴을 마주했을 때는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최근에는 돈으로 대화를 사는 '토킹바'가 인기를 끌고 있다. 토킹바는 유흥업소가 아닌 일반 음식점으로 종업원이 말 상대가 돼 준다.
 
토킹바를 종종 이용하는 36세 남성은 "집에 가족들이 있지만 다시 못 볼 사람에게 속 마음을 털어 놓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강남구 신경정신과 한 의사는 "가정은 사람들 정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세상이 흉흉해질수록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하는 시간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갖도록 의무화하다보면 서로에게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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