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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욕하는 것보다 쉬운 정책은 없다
2023-06-09 06:00:00 2023-06-09 06:00:00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 발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입 안 아픕니까? 북한은 늘 그런데 뭘…”
 
민주당 의원 시절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을 인터뷰할 때였습니다. 세습·독재 체제이고, 지나치게 전투적이고, 외교도 경직돼 있고 등등 한참 북한을 비판하는 저를 지켜보다가 송 전 장관이 한 말입니다.
 
“북한 행태는 상수입니다. 욕 하면 뭐 합니까. 문제는 그런 북한을 상대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일반 국민은 그저 북한 비판만 해도 됩니다. 하지만 정치인이나 정책 담당자들은 비판을 넘어 대책을 만들고 현실화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욕만 한다면,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것으로 일관한다면 세상에 그보다 쉬운 일, 그보다 쉬운 정책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난달 31일 북한이 발사한 우주발사체에 대해 대통령실은 “소위 위성 명목의 장거리 탄도미사일”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로켓 비행체의 앞머리 페어링(덮개) 안에 위성을 넣으면 인공위성이고, 탄두를 넣으면 탄도미사일입니다. 로켓 발사 원리는 같지만 앞머리에 무엇을 넣느냐가 다른 것입니다.
 
최대 고도와 궤적도 다릅니다. 인공위성은 최대 고도가 400∼700㎞ 정도 올라가 적정 궤도에 진입해 지구를 회전하게 되지만, 1만㎞ 이상 사거리를 가지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최대고도 1천㎞ 이상 올라가야 하고, 그 뒤 다시 대기권에 재진입해야 하므로 위성보다 더 큰 궤적 포물선을 그리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이번 북한 발사체는, 김여정 부부장이 말한 대로 군사정찰위성이 맞습니다. 합참이 일관되게 우주발사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대통령실이 북한 군사정찰위성을 탄도미사일이라 부르는 까닭은
 
그런데도 대통령실이 탄도미사일 표현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위성보다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해야 더 위협적으로 느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눈 가리고 아웅’입니다. 김여정 부부장이 직접 군사적 목적이라고 공개했습니다. 게다가 이미 고체형 ICBM 발사 실험에 성공했고 이에 대한 유엔의 추가 제재도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굳이 인공위성이라는 외피를 쓸 이유도 없습니다.
 
대통령실은 지난 7일 공개한 ‘국가안보전략’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호칭을 빼고 이름만 기재했습니다. 올해 2월 국방부 국방백서도 김 위원장 이름 석 자만 표기했습니다. 북한이 ‘윤석열과 그 군사 깡패들’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한 상호주의적 대응이라는 것이 정부 설명인데, 우리가 북한과 같은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심리적 G8’이라면서, 이렇게 낮은 수준의 팃포탯((tit-for-tat)을 벌이는 것일까요?
 
이 같은 모습들은 물론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남한 주류세력에게는 북한을 군벌 집단이나 도둑 떼 정도로 보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현실은 사뭇 다릅니다.올해 5월 현재 북한은 159개국과 수교하고 있고, 지난달 27일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집행이사회 이사국으로도 선출됐습니다.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더욱이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된 우리가 세계 평화를 논할 때 북한을 제외해 놓고는 뭘 할 수가 없습니다. 윤석열정부에게 아무리 북한이 같잖고 혐오스럽게 보여도 말입니다.
 
북한, '실패한' 위성 발사 장면 공개: 북한이 2023년 5월 31일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발사장에서 쏜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의 발사 장면을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했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실은 외교·통일·국방 분야 최상위 전략 기획 지침인 ‘국가안보전략에서 북한에 대해 “각종 도발 기회만을 노리고 있다”, “김정은은 국방 분야 성과를 자신의 치적으로 부각하고 경제 실패 책임은 간부들에게 전가하며 정권 안정에만 주력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비판은 할 수 있으나 문제는 그것뿐이라는 점입니다. “북한이 모든 대화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복귀하도록 유도하는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하나 마나 한 주장과 함께, 처음 공개하자마자 북한이 거부했고 더 가능성도 없는 ’담대한 구상‘만 반복할 뿐입니다.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끌어낼 방책을 내놓으라는 질문에,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동문서답하는 꼴입니다.
 
대책도 없이 북한 비판만…안보는 국방+외교
 
중국에 대해서도 비슷합니다. 이명박정부 이래 모든 정부가 중국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기술해 왔으나 이를 빼버리는가 하면 중국-일본으로 돼 있던 기술 순서를 일본-중국 순으로 바꿨고 분량도 일본은 3쪽을 할애한 데 비해 중국은 1쪽에 그쳤습니다. 그 이유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법치와 헌법, 가치 지향점에 있어서 좀 더 가까운 나라를 배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선 때부터 노골적으로 혐중 정서에 올라탔던 기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안보는 국가가 존재하는 근본적 이유인데, 안보는 국방, 군사력만이 아니라 외교와 함께 가야 합니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라는 말도, 손자병법이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은 최선 중의 최선이 아니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 중에서 최선”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윤석열정부는 한 팔은 묶어놓고 다른 한 팔만 갖고 싸우고 있는 것 아닙니까?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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