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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대만의 나른한 '트로피컬 록' 선셋롤러코스터
서울서 아시아 순회공연 대단원…”4년 만에 한국 감회 새로워”
혁오, 바밍타이거 등과 교류…”한국 전통 문화 경험하고파”
2023-03-30 16:07:06 2023-03-30 16:07:06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태풍 같은 팬데믹 시기를 이겨온 이들을 위한 촛불 같은 음악(곡 'Candlelight'). 음악은 차 한 잔(곡 'Teahouse') 같은 치유와 위로가 될 수 있는 것.
 
29일 저녁 서울 광장동 예스24 라이브홀. 무대 위 키보디스트 왕샤오슈안의 길고 찰랑이는 검은 머리가 키보드 위로 쏟아집니다. 뿅뿅거리는 사운드와 함께 유성우처럼. 마지막 곡 '캔들라이트(Candlelight)' 때 무대는 촛불들을 나열한 것처럼 노란 빛으로 물듭니다. 그리고 합창. 대만 팝 밴드 선셋 롤러코스터(Susnet Rollercoaster, 落日飛車) 아시아 순회공연의 대단원. 4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이 다섯 열혈 청춘들이 외쳤습니다.
 
"암흑 같은 팬데믹 기간이 이제 끝나갑니다. 이 곡을 지금까지 인내해온 한국의 여러분들께 바치고 싶습니다."
 
2009년 대만 타이베이에서 결성된 선셋 롤러코스터[쳉 쿠오 훙(보컬·기타), 첸훙리(베이스), 로춘룽(드럼), 왕샤오슈안(키보드), 황하오팅(색소폰)]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밴드로 부상 중입니다. 따뜻한 햇살, 간간이 퍼붓는 소나기 같은 낭만이 음표로 부유합니다. 
 
열대 지역을 연상케 하는 후끈하고 달달한 사운드. 신디사이저 소리를 쌓아 올린 ‘웜톤’의 소리를 근간으로 퓨전과 라틴, 펑크(Funk) 장르를 섞고 ‘오리엔탈리즘’ 정서(동양풍 멜로디)를 고명처럼 얹었습니다. 마빈 게이나 스모키 로빈슨의 사운드 영향도 아른거립니다.
 
대만 팝 밴드 선셋롤러코스터. 사진=MPMG
 
이날 공연 직전, 대기실에서 밴드의 전곡을 담당하는 보컬 쳉 쿠오 훙(보컬·기타)과 만났습니다. "선셋롤러코스터를 표현해줄 수 있는 색깔요? '오렌지'입니다. 해질녘 바다 풍경과 같은 거요. 보기에 따라서는 삶이 금빛처럼 물드는 것 같거든요. 한국 팬들은 중국어를 배워올 정도로 친절하고 따뜻해서 좋아요."
 
이번 투어 제목은 지난해 발표한 컴필레이션 앨범명 'Infinity Sunset'에서 따왔습니다. 살바도르 달리의 '흐물거리는 시계'처럼 자동차가 굽어진 그림을 앨범 커버로 쓴 음반. 수록곡 'RunRun'에는 한국 싱어송라이터 오존도 참여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구름들 위로 쏘아지던 오렌지빛 수평선에 인상을 받은 것이죠. 구름을 자세히 보면 바다 같더라고요. 우리를 둘러싼 주변 풍광과 환경은 제 음악의 가장 큰 영감이 돼요." 
 
혁오(HYUKOH)의 보컬 오혁이 타이틀곡 'Candlelight'에 피처링 참여한 정규 3집 'Soft Storm'(2020)은 영국 평론 매체 NME가 선정한 ‘2020년 베스트 아시아 앨범’에서 BTS의 'Map Of The Soul : 7'과 순위를 나란히 한 바 있습니다.
 
혁오(HYUKOH)의 보컬 오혁이 참여한 곡 'Candlelight'에는 한국의 장례 풍습이 나온다. 사진=유튜브 캡처
 
이 앨범 발매 당시였던 2020년 본보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 때 이들은 당시 한국 장례풍습을 뮤직비디오에 담은 것과 관련 "한국 전통 장례 풍습에는 대만에서 느끼지 못하는 아름다운 장엄함이 있다"며 "해질녘 타는 롤러코스터처럼 느긋한, 흐려지는 태양빛 속으로 떠나는 결말 같은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참조 기사, (권익도의 밴드유랑)코로나 밀어내는 동양적 음계, 선셋롤러코스터)
 
이날도 쳉 쿠오 훙은 "'Candlelight'를 만들 당시 원래는 한국과 대만을 오가며 오혁과 작업을 하려 했다"며 "팬데믹 이후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추면서 파일을 교환하는 식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작업물이 좋았고,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더 연결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전날(28일) 저녁 7시 반, 비행기를 타고 들어왔다는 그는 "오혁(혁오), 산얀(바밍타이거)과 공연 이후 소주를 먹기로 했다"며 "한국의 절에 가서 대만의 절 의식과 어떤 점이 다른지 살펴보고 싶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이날 1500여명이 몰린 선셋롤러코스터의 한국 공연은 음반으로 듣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대만 특유의 ‘트로피컬 록’, 나른한 사운드를 서사적인 영상들과 시종 교차시켰습니다.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의 흐름(곡 'burgundy red')을 서서히 보여주거나, 바다의 윤슬이 시간 흐름에 따라 서서히 빛의 조도를 바꿔가는(곡 'slow') 식. 셀로판지 빛처럼 빛나는 기타톤과 신디사이저, 그리고 그 위를 금빛으로 칠하는 색소폰의 향연.
 
"'Candlelight' 뮤직비디오에 한국의 장례 문화가 등장하지만 사실은 그 곡이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슬픈 정서라는 장례식의 콘셉트를 팬데믹 시기에 빗댄 것일 뿐이죠. 곡은 코로나 이후 더 나은 삶이 올 것이라는 촛불 같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음악에서 영상은 그저 음악을 서포트하는 요소일 뿐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들의 바이닐(LP)가 풀리면 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로 인기입니다. 이날 공연장 앞에서도 MZ세대들이 긴 줄을 뱀 꼬리처럼 늘어뜨리며 섰습니다. "LP라는 매체는 집중력이 필요하죠. 턴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바늘을 얹어야 하고, 오늘날 스트리밍 시대가 음악을 배경으로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LP는 반대에요. 음악이 주인공이 되는 하나의 의식 같은 것이죠. 따뜻한 아날로그 감성이 우리 음악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29일 저녁 서울 광장동 예스24 라이브홀. 선셋롤러코스터의 공연이 열리기 한참 전 LP를 구매하러 온 사람들의 행렬.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K팝보다는 혁오와 검정치마 같은 한국 장르 음악들을 듣고, 심지어는 90년대 한국 시티팝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빛과 소금까지 즐겨듣고 영향받는다고 합니다.
 
"음악은 듣는 사람들에게 정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추상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아트기 때문이죠. 각기 다른 사람들 마음의 종착지 같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용기를 줄 수 있거나, 로맨틱한 감정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어쩌면 이날 영화 '안나 카레리나', '번지 점프를 하다' OST로 쓰여 유명해진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을 공연 오프닝으로 튼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그것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것이다.'(쇼스타코비치)
 
2009년 대만 타이베이에서 결성된 선셋 롤러코스터[쳉 쿠오 훙(보컬·기타), 첸훙리(베이스), 로춘룽(드럼), 왕샤오슈안(키보드), 황하오팅(색소폰)]. 사진=모레코즈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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