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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그림자만 바라보는 정치평론가, 필요한가?
2023-03-27 06:00:00 2023-03-27 06:00:00
플라톤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에 따르면 우리는 동굴 벽을 향해 몸이 묶인 죄수들이다. 벽에는 여러 그림자가 비친다. 이 그림자는 바깥 세계를 본떠 동굴 속에 만들어진 모형들의 그림자다. 죄수들은 이 그림자가 실제 세계라고 믿으며 평생을 살아간다. 그림자로부터 몸을 돌려 동굴 밖의 실제 세계, 즉 진리를 바라보라는 권유를 담은 이 비유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죄수들 중에 그림자들이 지나가는 순서를 예리하게 관찰해 기억했다가, 미래에 그림자가 어떻게 될지를 잘 예측하여 칭찬과 존경을 받으며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사람들이 요즘의 정치평론가와 같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지, 동굴의 비유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동굴의 비유에는 총 3개의 세계가 있다. 먼저 동굴 밖 세계로 플라톤에 따르면 이 (관념의) 세계만이 진짜 현실이다. 그 다음으로는 동굴 안에 세워진 모형들의 세계로, 이 세계는 동굴 밖 세계를 본떠 만들어졌다. 그 모형들이 빛을 받아 만들어지는 그림자들이 바로 세 번째 세계다. 이러한 삼중의 세계를 이제 정치에 적용해보자. 정의(正義)이데아’, 즉 정의로움의 본질이 동굴 밖에 존재한다. 그 정의의 이데아를 본떠 여러 정치가들이 자신만의 모형, 즉 정책, 법안, 미래비전 같은 것들을 만들어 세운다. 정치란 정치가들이 저마다 자기가 만든 모형이 더 정의로운 것이라 주장하며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갈등과 다툼이 벽에 그림자로 비친다. 그런데 이것이 진짜 정의를 놓고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림자만으로는 알아볼 수 없다. 따라서 죄수들이 보는 정치의 그림자는 오직 권력 다툼이며, 정치평론가들은 바로 그 그림자에 대한 전문가다. 이번엔 어느 그림자가 승리할지, 어떤 그림자가 나타났을 때는 어떤 그림자가 더 유리할지 따위의 문제들을 예측하고 해설해준다. 어느새 무엇이 정의로운지에 대한 관심은 정치권과 정치인들 사이에서 권력을 놓고 벌이는 정치판에 대한 관심으로 변질된다.
 
예를 들어보자. 나경원 전 의원이 헝가리식 출산 시 대출탕감이란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때, 필요한 질문은 예컨대 그러한 현금 지원성 정책이 대한민국을 아이낳고 키우기에 괜찮은 나라로 만들 수 있는지 같은 것이었다. 미래가 불안한 청년세대들에게 과연 돈을 쥐어주는 것만으로 가족을 꾸려도 된다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느냐는 것이어야 했다. 한편 헝가리가 그런 정책을 내놓은 데는 반()이민자 정서라는 배경이 있었다. 아이를 낳아도 순수 헝가리인들이 낳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생각이 우리 사회에서도 바람직할지 역시도 다루어져야 했다. 그런데 정치평론가들이 출연해 시사프로그램을 가득 채운 것이라고는 윤심이 나 의원을 버렸다’, ‘나 의원은 이를 무릅쓰고도 출마할 것인가’, 심지어 나 의원과 윤 대통령이 대학 시절에는 어떤 사이였나따위의 이야기들뿐이었다.
 
결국 이 정책이 정의로운 것이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없었고, 얼마 뒤 대한민국은 합계출산율 0.78이라는 충격적 결과를 받아 들었다. 정치평론가들이 정치를 변질시킨 원인인지, 아니면 정치가 변질된 그 결과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그들의 말 속에서 정치란 무엇이 정의로운지를 고민하는 장이 아니라 권력을 둘러싼 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치의 그림자만을 바라보게 만드는 지금의 정치평론은 정말 필요한가?
 
노경호 독일 본대학 철학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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