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칼럼)무리한 미 반도체법, 우리 정부 협상 총력 다해야
미 정부 초과이익 환수 등 독소조항 산재…정부는 "계속 협의" 원론만 되풀이
2023-03-03 06:00:00 2023-03-03 06:00:00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 조건에 독소조항을 집어넣으면서 우리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미 정부를 향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릴 수도 없는 처지이죠.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력이 절실해진 시점인데 해법을 이끌어내기는 요원한 상황입니다.
 
앞서 미 정부는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초과이익을 낼 경우 보조금의 최대 75%까지 환수하고, 미 국방부에 실험·생산 시설 접근권을 제공한 기업을 우대한다 등의 보조금 지급 기준을 밝혔습니다. 그 외에도 △지원금의 배당·자사주 매입 사용 금지 △현금흐름 등 재무 계획서 제출 등 보조금 지급이라는 명목으로 우리 반도체 기업에 족쇄를 채우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해당 조건대로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고 일정 기준을 넘어설 경우 그 이익은 미국 정부와 나눠야 한다는 얘깁니다. 보조금을 받은 뒤 큰 이익을 낸다면 다시 돌려줘야한다는 것인데, 납득하기 어려운 조항입니다. 군사용 반도체를 미국에 안정적으로 장기 공급하는 업체를 우선 지원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는데요. 보조금을 받으면 중국에서 향후 10년간 반도체 생산 설비를 늘려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있습니다. 한술 더 떠 지원금을 받으려면 건설 및 공장 근로자를 위한 사내 보육시설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건도 내걸었습니다.
 
자국 우선주의로 매섭게 밀어붙이는 미국의 공세를 보면 한미 동맹 자체를 의심케 할 정도입니다. 기업의 현금 흐름, 수익성 지표 등 내부 기밀 정보도 미 연방정부에 제출토록 했는데요. 첨단 반도체 기술을 미국으로 다 가져가겠다는 반도체 패권을 드러낸 속셈이자 명백한 월권행위입니다.
 
보조금 신청 여부는 각 기업들이 결정할 몫이지만, 업계에선 신청을 안 하기도 어려운 상황으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우리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발 리스크'가 커진 만큼 무엇보다 정부의 외교력이 중요해진 시점이 된 건데요. 재계 한 관계자는 "미국의 이런 행동은 완전히 깡패 짓"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관계자는 "우리 정부 차원에서 미국의 부당한 압력에 대해 항의할 수 있는 공식 루트를 만들어야 한다"며 "미 의회 상하 양원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로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관계 당국과 계속 협의할 예정"이라고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했는데요. 무리한 요구를 하는 미국에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외교·안보적 파장까지 불러올 수 있는 해당 문제를 기업에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우리 정부가 다양한 외교 채널을 통해 유예조치나 독소조항 수정 등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함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이렇듯 우리 민관이 하나가 돼도 모자랄 판에 'K-칩스법'으로 불리는 반도체 세제지원법은 여야 이견 속에 3월 국회로 넘어갔습니다. K칩스법은 대기업 등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현행 8%에서 7%포인트 더한 15%까지 감면하겠다는 내용인데요. 여당은 정부안 원안 관철을, 야당은 세원 감소를 문제 삼으며 대립하고 있습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일 당 회의에서 "각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세금 인하와 투자 지원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고, 주호영 원내대표도 "지금 가장 처리가 급한 것이 반도체 관한 K칩스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중 갈등에 더해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는 혼돈의 시기입니다. 부디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미국과의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기를 기대해 봅니다. 
 
임유진 재계팀장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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