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이’ 류경수 “극중 ‘상훈 소장’ 비밀 공개하자면…”
“‘상훈 소장’, 가장 불편한 사람 모델…과한 표현과 과한 제스처 ‘주목’”
“고 강수연 선배, 날 후배 아닌 동료로 대해줘…모두가 기억해 줬으면”
2023-01-31 07:00:28 2023-01-31 07:00:28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단역 독립영화 그리고 단역 또 독립영화. 그렇게 돌고 또 돌고 또 돌았습니다. 그냥 쉽게 말해 무명이었습니다.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15세때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후부터 말이죠. 당시 일화를 인터뷰에서 물어봤습니다. 배우가 되겠다 결심한 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영화사에 직접 찾아갔답니다. 물론 당시 영화사 대표님은 그를 좋게 타일러 집에 보냈답니다. 중학교 2학년 아이의 치기 어린 패기만큼은 제대로였답니다. 그리고 그는 몇 년 뒤 대학교 연극학과에 진학해 배우가 될 초석을 다졌습니다. 졸업 이후 단역 독립영화 단역 독립영화를 돌고 또 돌았습니다. 사실 되게 지루하고 고단한 쳇바퀴처럼 느껴질 만도 하지만 그는 절대 그러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지낸 시간이 오래지 안았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무명의 시간이 별로 오래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지금의 자신이 너무 놀라우면서도 감사하고 또 행복하면서도 꿈을 꾸는 것 같답니다. 참고로 그가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린 건 종합편성채널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입니다. 누군지 단번에 아실 듯하네요. 바로 배우 류경수 입니다. 그가 넷플릭스 영화 정이를 통해 광기의 연기가 무엇인지 단 번에 증명해 내면서 즐겁게 무명을 보낸 시간의 의미를 증명해 냈습니다. 그 원동력은 결과적으로 연상호의 페르소나란 별명을 얻게 만들었습니다.
 
배우 류경수. 사진=넷플릭스
 
일단 류경수는 영화 인질을 통해 섬뜩한 배역을 소화하면서 인상적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이태원 클라쓰에서도 적당히 발랄하면서도 반대로 군데군데 섬뜩한 눈빛을 드러내며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는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한 마디로 류경수란 배우, 광기와 광기로 똘똘 뭉친 이미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실제로 만난 자리에서도 그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대로 눈을 마주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는 파안대소하며 웃었습니다.
 
저 진짜 착합니다(웃음). 눈빛 때문에 자꾸 얼굴을 보지 못하겠다는 말도 가끔씩 듣긴 해요. 그리고 쌍꺼풀이 없는 눈 때문인지 되게 무섭게 보더라고요. 배역도 좀 그런 인물들을 했는데. 저 원래 성격은 오히려 정이의 상훈 소장 같은 이미지가 더 많아요 하하하. 그래서인지 사람들 앞에서 일부러 더 밝게 행동하는 것도 있어요. 안 그러면 다들 화났냐’ ‘불만 있냐라고 오해하세요.”
 
그런 이미지 때문일까. ‘정이에서 류경수가 연기한 상훈 소장은 정말 적역 중에 적역이었습니다. 류경수가 아니라면 다른 대역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일단 상훈 소장은 일반적인 느낌이 아닙니다. 뭔가 괴이하고 또 이상한 느낌이 강합니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듯한 돌발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물론 이런 설정은 상훈 소장에 대한 비밀 때문이기도 합니다. 류경수가 생각한 상훈 소장은 이랬습니다.
 
배우 류경수. 사진=넷플릭스
 
혹시 정이를 보시면서 상훈 소장이 어떻게 보이셨어요? 그런 사람과 친해지고 싶으세요? 절대 아니죠?(웃음) 딱 생각했던 게 그거였어요. 주변에서 만났을 때 진짜 불편한 사람. ‘저 사람 왜 저래?’ 하는 느낌이 저절로 들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 제 주변에도 있어요. 그런 분들의 공통점이 뭘까 싶었죠. 관찰해 보니 표현과 제스처가 진짜 과해요(웃음). 그런 분들과 함께 할 때 어떤 느낌이지? 생각만 해도 싫죠. 그 느낌까지 더해서 상훈 소장을 표현하려 노력했죠.”
 
이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스포일러이지만 언급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극중 류경수가 연기한 상훈 소장은 로봇입니다. 뇌복제 연구를 진행하는 회사 크로노이드의 회장 뇌를 복제해 이식한 로봇입니다. ‘정이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서현 박사(고 강수연)의 상관으로 해당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로 등장합니다. 그는 크로노이드 본사를 방문해 회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로봇인 정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괴이한 장면이 화면에 비춰집니다. 참고로 이 장면, CG가 아닌 실제 류경수의 연기랍니다. 그 장면을 류경수는 인터뷰 도중 다시 한 번 선보였습니다.
 
제가 로봇이라는 게 밝혀지는 게 바로 윙크하는 것 때문이잖아요. 더욱이 제가 로봇이라서 멈춰서 눈만 깜빡 거리고 있어야 했어요. 일단 대본에는 걷다가 멈춘다라고만 써 있었어요. 그런데 그 장면이 난 내가 로봇인지 모르고 수연 선배님과 회장 역의 선배님은 날 보면서 저 로봇 폐기할까 말까를 논의하는 장면이고. 난 그걸 보고 있고. 이걸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최대한 이상하게하자 싶었죠. 진짜 웃기게 멈춰서 눈만 이렇게 계속 깜빡깜빡 거리면서 있었어요(웃음).”
 
배우 류경수. 사진=넷플릭스
 
류경수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주변에서 가장 불편한 인간을 통해 극중 등장하는 가장 인간처럼 보이는 로봇 상훈 소장을 연기했습니다. 일단 로봇은 웬만한 배우라도 연기해 본 경험이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류경수는 30대 초반에 벌써 로봇까지 연기하게 됐습니다. 그는 정말 잘하고 싶어서 자신만의 연구로 로봇을 창조해 냈습니다. 그건 반대로 로봇을 보면서 만들어 낸 로봇이 아닌 인간을 보면서 만들어 낸 로봇이었습니다.
 
상훈 스스로는 자신이 로봇인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본인이 로봇인 걸 스스로 알게 됐을 때 오는 충격 아이러니 등을 전부 담고 싶었어요. 결과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담고 싶어서 주변에서 가장 불편한 느낌의 사람들을 모델로 참조해 이미지를 완성해 나갔어요. 그래야 더 인간적인 로봇의 느낌을 저 스스로 표현할 수 있을 듯싶었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을 통해 연상호 감독과 처음 연을 맺은 류경수. 이후 정이를 함께 했고 다음 작품은 연 감독이 기획을 하고 시나리오를 쓴 선산도 찍고 있답니다. ‘선산에는 정이에서 함께 한 김현주도 출연합니다. 그는 연상호 페르소나 그리고 김현주의 남자란 호칭에 손사래를 치면서 두 분에게 너무 무례한 호칭이 된다고 웃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두 선배와 더 많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류경수 입니다.
 
배우 류경수. 사진=넷플릭스
 
“‘지옥후시 녹음을 할 때 감독님이 영화 할 건데 대본 보낼께라고 하셨어요. 저 사실 정이가 무슨 영화인지 무슨 배역 인지도 모르고 네 할께요했어요. 그냥 로봇나온다고 하셔서, 로봇 중에 하나인가 싶었는데 이렇게 큰 배역인지는 촬영 직전에 알아서 너무 놀랐었죠. 아직도 사실 궁금해요. 저의 어떤 면을 보고 이런 큰 배역을 주셨는지. 전 개인적으로 리얼리즘 영화를 좋아해요. 그런데 연상호 감독님 영화는 정반대잖아요. 하다 보니 그게 더 매력이라서 끌리나 봐요(웃음).”
 
마지막으로 류경수에게 고 강수연과의 일화를 물었습니다. 고 강수연은 정이를 찍고 얼마 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연상호 감독이나 김현주 모두 강수연에 대한 질문에 꽤 힘들어 했습니다. 류경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이날 류경수가 생각을 바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선배를 기억하는 방식을 이렇게 하기로 정했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모두가 강수연이란 대배우를 영원히 기억해 주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배우 류경수. 사진=넷플릭스
 
정말 명성에 걸맞지 않는 선배님 이셨어요. 현장에서 절 후배가 아닌 동료로서 대해 주셨어요. 까마득한 후배인 저에게 조언 같은 건 단 한 마디도 안해 주셨어요. 온전히 절 동료로만 대해주신거죠. 연기하다가도 제가 확신이 안 설 때 선배님께 달려가서 이상하죠라고 여쭤보면 항상 ? 너무 매력 있어라고 용기를 주셨어요. 지금도 기억이 나요. 선배님의 반짝거리는 눈동자. 그 눈동자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에너지. 진짜에요. 묘한 힘이 있으셨어요. 사실 선배님 돌아가시고 나서 선배님에 대한 말을 되도록 안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을 바꿨어요. 더 많이 얘기 할거에요. 더 많은 분들이 강수연이란 배우가 우리 곁에 있었단 걸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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