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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산울림과 '시간 여행', 45년 전으로
김창완 자택 인터뷰…왜 하필 '릴 기반 LP'였나
"서울스튜디오의 침묵, 공기마저 생생히 구현"
산울림 원형 마주하는 것, 한국 대중음악사 새로 쓰는 일
2022-11-11 06:00:00 2022-11-12 00:03:35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산울림 데뷔 45주년 기념 '리마스터링 LP(바이닐)'는 음악업계와 평단의 의견을 종합하면 '근본부터 다른 재발매'다.
 
김창완 표현대로 이것은 '쥬라기 공원이 따로 없는' 소리의 상아탑이다. 기존 산울림의 녹음 사운드 자체를 완전히 '수저통 소리'로 만들어 버린, 사운드의 혁신이라 할 만 하다.
 
최근 유행하는 단순 복각판(CD 디지털음을 LP로 단순 변환)과는 초창기 공정 방식부터 달랐다. 1995년부터(구 대성음반으로부터 양도) 김창완 자택 벽장에 보존했던 기존 산울림 음반 전체의 '마스터 릴 테이프(LP 발매를 위해 녹음한 당시 연주가 담긴 릴 테이프 원본)'가 질료다.
 
'오리지널 릴 마스터 테이프'에서 아날로그 소리의 기본 파형을 추출하고 오늘날 현대 기술로 세공했다는 점에서, 기존 원본 혹은 단순 재발매식 음반들과는 사운드 자체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들어보면, 전반적으로 소리의 해상도가 높아져 다소 흐릿하게 뭉개져 있던 악기 소리들이 선명해지고 광활한 공간감이 느껴진다. ‘45년 만의 하이파이’ 산울림인 것이다.
 
본격 LP 발매를 앞두고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본보 기자와 만난 김창완은 "3형제의 기록물이라 단지 보관하고 있을 뿐이던 '릴'이 산울림 녹음 당시 서울스튜디오의 침묵, 공기마저 생생히 구현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어쩌면 '산울림 DNA'로 들어가는 '창(窓)'이 될지 모를 이 프로젝트를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고자 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이리도 선명한 '아니 벌써',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는 이미 나'가 나온 것인지. 산울림의 원형과 본질을 마주하는 것은 곧 한국 대중음악사를 새로 쓰는 일이자, 외계 유성우를 온 몸으로 맞는 경험과도 같은 것이기에.
 
이날 인터뷰에는 이번 LP 프로젝트 전체의 디지털 변환 및 리마스터를 맡은 국내 최초 그래미 레코딩 엔지니어 수상자인 황병준(지난 2012년과 2016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녹음 기술상과 최우수 합창 퍼포먼스상)과 이번 LP 기획자로 나선 김경진 대중음악평론가(팝시페텔 대표·과거 한대수, 산울림, 김광석의 박스 세트 기획 및 발매)도 동행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김창완이 뽀얀 빛깔의 전통주를 내와 투명 술잔에 쪼르륵 따랐다. 그 조그마한 술잔이 유에프오가 되는 상상을 했다. 맞다, 이제 한국형 사이키델릭이 태동한 그 외계로 단숨에 넘어가보는 것이다.
 
최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본보 기자와 만난 김창완은 "3형제의 기록물이라 단지 보관하고 있을 뿐이던 '릴'이 산울림 녹음 당시 서울스튜디오의 침묵, 공기마저 생생히 구현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왼쪽부터 국내 최초 그래미 레코딩 엔지니어 수상자인 황병준(지난 2012년과 2016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녹음 기술상과 최우수 합창 퍼포먼스상)과 김창완, 그리고 이번 LP 기획자로 나선 김경진 대중음악평론가(팝시페텔 대표·과거 한대수, 산울림, 김광석의 박스 세트 기획 및 발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이번 LP 프로젝트는 산울림 앨범 전체가 대상이므로, 1997년 지구레코드, 2008년 로엔에서 나온 '산울림 박스세트(CD)'가 생각나는 지점도 있습니다. 당시 박스세트 때와 이번 프로젝트의 LP들과는 작업 과정이 어떻게 다르다고 보면 될까요.
 
김창완: 그때(2008년)는 이번 프로젝트처럼 전문 엔지니어가 붙어 있던 것이 아니었어요. 소스도 지금처럼 릴에서 그대로 빼온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은 CD 음원을 그대로 소스로 쓰고 들쭉날쭉이었죠. 그러니까 음질에 관한 거라기보다는, 그냥 여기저기 산재해있던 소스들을 컴필레이션 콘셉트에 맞춰 음반으로 냈던 거 같아요. 이번 LP 프로젝트를 하면서는, 우리가 서울스튜디오 녹음 당시 느낀 그 공기까지 전달된다는 점에서 아주 놀라웠어요. 45년 전 녹음해뒀던 릴에 이런 소리가 숨겨진 지는 정말 몰랐지.
 
-우리가 지금 음원사이트에서 듣는 산울림 전곡은 그럼 그 '들쭉날쭉한 소스'로 만들어진 건가요. 음원사이트에서 들어보면 직접 표현하신 것처럼 '숟가락통 두드리는듯' 굉장히 소리가 깎인 것처럼 들립니다.
 
김창완: 그렇다고 보면 돼요. 음원사이트면 음질이 더 떨어지겠죠. CD로부터 전송 과정에서 더 다운그레이드가 될 테니까. 당시 CD면 극강의 음질인 줄 알았어요. 더 이상 손 볼 것도 없고 그런 줄 알았거든요. 
 
-국내에서 아티스트가 마스터 릴 테이프를 전부 보관하고 있는 사례가 흔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자택 벽장 보존하셨다고 들었는데, 언제부터 어떻게 전부 소장을 하시게 됐나요. 별도의 관리 방법도 따로 있었나요.
 
김창완: 대성음반(1995년 경)이 부도났을 때부터 제가 갖고 있는 거예요. 그때 사장한테 '산울림은 우리 삼형제 기록이니까 주세요' 해서 제가 양도승인서를 받았어요. 보관 문제는 돌아보면 그저 럭키에요, 럭키. 이 집에서 거주한지는 30년이 넘었는데, 벽장이 습도도 없고 쾌적했기에 가능했다고 하더군요.
황병준: 기본적으로 자기 테이프(magnetic tape)이니까. 자성이 강한 기계들이 옆에만 없다면 큰 문제가 없죠. 원래는 테잎이 오래 감겨 있다면, 바깥 쪽에 있는 부분이 안쪽으로 자활을 시키면서 ‘전사(Print Through)’ 현상을 만들거든요. 음악이 나오기 전 조그맣게 개미처럼 나오는 소리가 대체로 그런 건데, 운이 좋게 그런 현상도 크게 없었고. 좌우 간 와인처럼 잘 보관돼 있었다고 봅니다. 만에 하나 습도 높은 지하창고에 있었다면 자활물질이 떡처럼 들러붙어 아마 작업이 불가능했을 거예요. 
 
세 사람은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때 술잔을 기울이다 의기투합했다. 운명의 연인 같은 인연으로 이번 프로젝트가 시작된 셈이다.
 
-그날 어떤 얘기가 나오다가 릴 기반의 LP 구상이 나오게 된 것인가요.
 
김경진: LP라는 매체는 기본적으로 듣든, 안듣든 CD와 결이 다르죠. 소중하게 사서 듣는 사람들은 음질 향상이라는 심리를 기대하고 있기에, 절대 대충 만든다거나 시중에 나온 절차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생각 갖고 있었고요. 
 
황병준: 릴 기반의 LP를 말씀드린 것은 저인데요.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LP로 잘만 만들면 정말 멋진 아날로그 사운드가 나올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LP 기술은 날로 진화하고 있어요. 최근 충격적이었던 건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라이브였습니다. 그 자리에 래커 커팅 전문가가 커팅 머신을 들고 오더니, 믹싱 엔지니어들이 신호를 주면, 그 자리에서 커팅을 해버리더군요. 그렇게 하면 '아날로그의 정수'가 그대로 담기는 거죠. 릴 기반인 이번 산울림 LP는 최대한 원소스에 근접한 사운드, 녹음 당시 그대로의 사운드를 재현해낸 것이라 보면 됩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원본의 마스터 릴 테이프를 원소스에 최대한 근접한 장비로 디지털 컨버팅(변환)하는 작업을 거쳤다. 국내에선 현재 통상 PCM(Pulse Code Modulation)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산울림의 경우 DSD(Direct Stream Digital) 방식을 거쳤다. 모파이나 아날로그 프로덕션 등 미국 유명 제작사가 쓰는 최신식 아날로그 음반 제작 기법이다.
 
본격 LP 발매를 앞두고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본보 기자와 만난 김창완.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DSD 방식을 거치면, 오리지널 사운드가 어느 정도로 보존이 되는 것일까요. 
 
황병준: PCM이라 하는 전환 방식은 DSD와 분명 차이가 있어요. 해외에선 소니필립스 비롯해 뉴욕 소니 스튜디오 등 세계 내로라하는 15명의 엔지니어다 모아놓고 테스트 해본 적이 있는데, DSD와 PCM은 거의 다 구분을 했어요. 그런데 DSD와 릴은 구분을 거의 못했고, 오히려 어떤 엔지니어는 (릴보다) DSD가 더 좋다는 판정을 내리기도 했고요. 어쨌든 DSD는 음의 색깔이나 다이내믹레인지(음악적인 표현의 크고 작고 흐름)을 누르거나 일률적으로 만들지 않고, 그대로 구현한다는 장점이 있어요. 다만 DSD는 변환 과정에서 중간에 컴퓨터가 버벅거리거나 꺼지는 기술 상의 단점이 있어요.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죠. 저는 '지구상 유일하게 남은 외계인 기술' 같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저는 이번 작업을 하며 궁금했던 게 산울림 음악은 울룩불룩하잖아요. (김창완을 보며) 그때 서울스튜디오에서 녹음할 때 엔지니어들한테 싫은 소리 안들었어요? 왜 이렇게 음악이 울룩불룩하냐고?
 
김창완: 생각해보면, 그때 사람들은 아날로그 신호에 익숙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도 스튜디오에서 오실로스코프 그래프에 나오는 우리 음악을 보고 있었거든요. 근데 우리 음악은 그루브가 많으니까, 그분들이 작업하기 힘들어 하는 거예요. 어떤 때는 기술이 안되니까 꾀를 써서 LP 커팅 단계에서, (턴테이블) 바늘이 변하면서 가도록 설계를 해놨더라고요. 그 마저도 소리가 감당이 안되면 사정없이 우리가 녹음한 음 신호를 깎아버리는 게 보였어요. 그 바람에 그간 산울림 LP들은 소리가 안 찌그러질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릴 기반의 LP 프로젝트를 감수하시면서 느끼신 점은.
 
김창완: 처음에는 이 프로젝트 한다고 했을 때, '뭐하러 릴에서 해요. CD에서 해요.' 그랬다니까요. 릴은 녹음 당시에만 활용했지, 이후 이미 녹음된 LP나 CD가 있는데 뭐하러 (릴을) 다시 꺼내 듣겠어요. 그저 '삼형제 기록'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근데 웬걸, 이번에 감수를 하는데, 내가 45년 전, 서울스튜디오 그 커다란 홀에 들어가던 경험이 재현되는 거예요. (기자를 향해 '지금 두 손으로 귀를 막아보라' 제안했다.) 그 먹먹한 귀 먹은 느낌 있죠? '침묵의 세상'은 이런 것이로구나 했었어요. 거기서 드럼을 '꽝' 하니까, 소리가 엄청날 거 아니에요. 그 조명도 어둡고 그런 곳에서, 소리한테 내가 막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근데 그게 릴에 그냥 그대로 있더라고요. 그 40여년 전 녹음 했던 현장으로 나를 데려가더라고.
 
김경진: 사실 업계에서도 그런 얘기가 많았어요. '산울림은 녹음이 안좋아, 그래서 사운드가 이래'라는. 근데 릴을 들어보니 녹음이 문제였던 게 아니란 사실이 이번에 판명난거죠. '그동안 담요 쓰고 들은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김창완: 옛날에는 무명 이불이 많았잖아요. 몇 년 동안 쓰다보면 소재 때문에 얇아지고. 그러다가 솜털집을 가면 다시 포실포실해져서 돌아오지요? 그거 같은 거예요. 겨울 내내 덥던 이불하고, 솜털집 갔다온 이불하고는 다른 이불이라니까. (일동 웃음) 
 
-조금 더 음악적으로 차이점을 설명해주신다면요?
 
김창완: 옛날에는 음반을 듣고 악보를 땄어요. 누군가가 우리 음반을 듣고 '치이' 하는 소리가 나는 클로즈 하이햇으로 땄는데, 그게 알고보니까 '칙' 거리는 오픈하이햇이었다는 거예요. 그만큼 소리가 뭉개져 있던 셈이죠. 그게 아까 무명 이불 얘기랑 다른 게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요.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에서도 에코 효과 페이더를 확 올리는 부분이 있는데, 그게 이번 음반에서는 아주 선명하게 들리더라고요. 
 
-'쥬라기공원의 공룡 같은 사운드'가 거기서 아마도 느껴진 걸까요. 쉽게 이번 LP를 숫자로 표현하면 100 중 어느 정도로 오리지널 녹음 사운드에 근접했다고 보시는지.
 
김창완: ('공룡 같은 사운드'라 하면) 아마도 그랬을 거예요. 제 귀를 믿는 게 맞잖아요. 이번 LP를 100점 만점으로 얘기하면, 102 정도가 아닐까. 처음에는 네모난 상자에 가둬놨던 소리를 그대로 옮기는 게 목표였어요. 근데 릴로 하다보니, 이게 어디서 왜 찌그러졌고 압축이 됐는지 그 부분까지도 상세히 알아갈 수 있었던 것이라 봐요.
 
황병준: 세 박자가 잘 맞았는데요. 제가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원소스에 가깝게 바꾸고, 그 이후 커팅 단계의 버니 그런드만(78·마이클 잭슨, 프린스, 지미 헨드릭스, 도어스, 핑크 플로이드, 카펜터스 등 지난 60년 간 걸작 앨범의 마스터링과 래커 커팅을 맡아 온 장인), 스탬퍼 단계의 일본 음향 제작사 RTI(Record Technology Incorporated)와의 합 또한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아날로그 사운드에 관한 서로 '존중의 미학'이 있었다고 봅니다. 
 
버니 그런드만은 작업 당시, 산울림 전집의 앨범과 수록곡 제목들을 영문명으로 바꿔 보내달라는 요청을 보내왔다고 한다. 산울림 음악의 본질을 최대한 잘 구현해내기 위해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김창완: 사실 그 당시에 녹음 들어보면, '에이 더 잘할 수 있는데' 그런 게 있잖아요. 저는 그 마음을 이번에 발견한 게 너무나 행복했어요. 다른 거 보다도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이렇게 릴에 소중하게 담아놨었구나 하는 그 가치를요. 그리고 버니라는 그 할아버지 분이 '20대의 꼬마였던 우리가 내는 소리가 결국은 이런 거 내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하며, 귀 기울였을 것을 생각하니 그 애정 또한 너무나 감동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아, 나도 진짜 후배들 노래 애정을 갖고 들어야겠다' 결심했어요.
 
※다음 기사에 계속.
 
지난달 27일 1, 3집 발매를 시작으로 이번 산울림 전집은 오는 22일 2집 발매(스탬퍼 공정상의 문제로 연기)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2달 간격으로 3개 음반(각 2500장 한정수량)이 순차적으로 나오게 된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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