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중 하나로 꼽히는 제프 벡이 별세했습니다. 향년 78세.
벡의 공식 웹사이트는 11일 공식 성명에서 "우리는 깊은 슬픔 속 벡의 가족을 대신해 그가 사망했음을 알린다. 벡은 갑작스러운 세균성 수막염으로 어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에릭 클랩턴, 지미 페이지와 함께 벡은 '현존하는 기타의 신'으로 불려왔습니다.
1944년 영국 웰링턴에서 태어난 벡은 10대 때부터 로큰롤을 들으며 제작 기타로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1965년 밴드 '더 야드버즈(The Yardbirds)'로 본격 음악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트 풀 오브 소울(Heart Full Of Soul)', '아이 엠 어 맨(I'm A Man)', '셰이프 오브 띵스(Shapes Of Things)'같은 곡들을 냈는데, 당시 선구적인 피드백 주법(앰프와 기타의 거리감으로 생성하는 소리 질감의 차)는 폴 매카트니, 지미 헨드릭스의 계보를 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중 하나로 꼽히는 제프 벡이 별세했다. 향년 78세. 사진=위키피디아
그러나 1년 만인 1966년 팀을 탈퇴했고, 이후 '제프 벡 그룹(Jeff Beck Group)'이나 '백, 보거트 앤 어피스(the Jeff Beck Group and Beck, Bogert & Appice.)' 같은 솔로 프로젝트를 이어가며 사운드 혁신에 매달렸습니다.
대표 싱글 곡은 1967년 발표한 '벡스 볼레로'(Beck's Bolero)로, 지미 페이지와 존 폴 존스 등 기타 거장도 참여했습니다.
솔로작 첫 두 앨범 'Truth(1968년)'와 'Beck-Ola(1969년)'는 블루스 기타의 모든 것을 펼치며 헤비 메탈의 토대를 마련합니다. 록 음악의 전설로 불리는 로드 스튜어트가 두 음반 작업에 함께 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기타리스트 레스 폴을 위한 음반 '로큰롤 파티'(Rock 'n' Roll Party·Honoring Les Paul)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영국의 전설적 밴드 '비틀스' 음반 대부분을 담당하며 '다섯 번째 비틀'이라 불린 조지 마틴 참여의 'Blow By Blow'(1975)는 벡의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기타 연주가 왜 리드 보컬 부분을 대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작입니다. 이후 그의 기타 연주는 속삭이고 흐느끼며 때론 샤우팅을 하는 노래가 됩니다.
1985년 미국의 히트 메이커 프로듀서 나일 로저스와 함께 작업해 내놓은 솔로 음반 'Flash'로 첫 그래미 상을 받았습니다.
1987년, 믹 재거의 솔로 앨범 'Primitive Cool'에서 연주했고, 1990년대 핑크 플로이드 베이시스트이자 보컬 로저 워터스, 존 본 조비와 작업했습니다. 톰 크루즈 영화 'Days Of Thunder'의 한스 짐머의 악보에도 기여했습니다. 세계적 테너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팝스타 메이시 그레이, 크리시 하인드 등 수많은 보컬리스트와 협업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중 하나로 꼽히는 제프 벡이 별세했다. 내한 당시 모습. 사진=프라이빗커브
하드 록, 재즈, 펑키 블루스, 오페라, 일렉트로닉, 힙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수혈하고 기타로 변주하면서 호평받았습니다. 'Flash'를 포함해 생전 그래미상을 8번 수상했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2번 이름을 올렸습니다. 음악 잡지 롤링 스톤즈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명'에서 5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손가락에 700만 파운드(105억원 상당)의 보험을 든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예명은 '기타리스트들의 기타리스트'.
특히 분신과도 같은 흰색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로 선보이는 독특한 주법은 그의 상징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피크 없이 오른손 엄지로 줄을 튕기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비브라토 암과 볼륨 버튼을 만져 음의 공명을 일으키는 주법입니다.
영국 유명 가수 로드 스튜어트는 벡을 "다른 행성에 있었던 뮤지션"이라고 표현합니다.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 또한 "기타 연주의 절대적인 정점"이자 "지독할 정도로 훌륭한 인간"이라 설명합니다.
세계 대중음악계에서는 그의 유산이 연주의 유동성과 공격성 사이의 균형에 있다고 평가합니다. 귀를 찢을 듯한 불협화음조차 음악이고 표현이라는 것을 보여준 실험 정신 또한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중 하나로 꼽히는 제프 벡이 별세했다. 내한 당시 모습. 사진=프라이빗커브
세계 유수의 대중음악가들이 다른 행성으로 넘어간 고인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롤링 스톤스의 프론트맨 믹 재거는 멋진 남자를 잃었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 연주자 중 한 명"이라고 말했습니다. 블랙 사바스의 오지 오스본 단장은 벡을 알고 함께 플레이할 수 있었던 것은 "너무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얼마나 슬픈지 표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키스의 멤버 진 시몬스와 폴 스탠리도 각각 추모의 글을 적었습니다. 시몬스는 이 소식을 "가슴 아픈 일"이라며 "제프처럼 기타를 치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스탠리는 또한 벡을 "역대 기타 거장들 중 한 명"이라고 칭하며 "따라올 수 없는 길을 개척했다. 그의 음악 영원히 재생될 것"이라 했습니다.
제프 벡이 한국과 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10년 첫 내한 공연입니다. 이후 2014년과 2017년 총 세 차례 한국 음악 팬들과 기타로 교감했습니다. 2017년 마지막 공연 당시 올림픽홀에서 그는 "여전히 음악 밖에 모른다. 집 의자 주변에 항상 기타를 놔두고 손이 갈 때마다 친다. 안 그러면 손이 물러져 연주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공연에서 멘트보다 연주에만 거의 집중했습니다. 100분의 공연 시간 중 1분의 쉬는 시간도 없이 음악으로만 채웠습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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