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그래미는 보수적" vs "음악성·예술성 필요"
'철옹성' 그래미…일각에선 "경쟁 자체가 치열"
조수미부터 BTS까지…계속되는 한국 그래미 도전사
2022-04-04 18:14:04 2022-04-05 08:52:11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음악계의 에베레스트, 축음기 모양의 트로피를 건네는 그래미는 어떤 상인가.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한국 대중음악 분야 최초로 수상에 실패한 그래미는 세계 음악계 최고 권위로 꼽힌다. 평단 일각에서는 "(그래미 특유의) 보수성도 인정하지만, 결과적으로 치열한 수상 경쟁을 뚫으려면 그래미 기준에 부합하는 음악성과 예술성도 필요하다"고도 짚는다.
 
'철옹성' 그래미…보수적인 선정방식
 
1958년 시작된 그래미 어워드는 미국 레코드 예술 과학 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Recording Arts & Science, ‘NARAS’)에서 주최하는 음악상이다. 빌보드 뮤직 어워즈(1990년 시작),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1974년 시작)와 함께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으로 꼽히지만, 세 시상식 중 음악성, 역사적 측면에서 가장 큰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타 음악 시상식과 비교해 지독하리만치 보수적인 선정방식을 고수한다. 한 해 동안 차트를 휩쓴 가수도 그래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무관 뿐 아니라 후보에 오르지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지난해부터 대중 투표 방식으로 전환한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빌보드 차트 성과를 기반으로 두는 빌보드 뮤직 어워즈와는 기준 자체가 다르다.
 
차트 성적이나 음반 판매량 등 상업적 성과보다는 음악성과 작품성, 사회적 영향까지 시상에 포괄한다. 실제로 보수적인 40대 이상 백인 남성이 주 선정위원으로, 실제 회원 가운데 아시아 지역 비중은 10%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2017년 세계 최고 팝 디바 비욘세의 '레모네이드'가 영국 출신 백인 가수 아델에게 밀려 수상하지 못하자, 미국 네티즌들은 온라인에 '너무 하얀 그래미상(GRAMMYsSOWHITE)'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로 비판한 사례가 있다.
 
2020년 미국 차트를 휩쓴 위켄드 역시 이 시상식에서 1개의 부문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자, 자체 보이콧을 선언해 큰 논란이 일었다.
 
'제64회 그래미 어워즈'의 5관왕에 오른 미국 재즈 뮤지션 존 바티스트. 사진=AP·뉴시스
 
"그래미 수상 경쟁 뚫으려면 음악성·예술성 필요"
 
올해 그래미는 총 86개 부문을 시상했다. 4대 본상 '제너럴 필즈'(General Fields) 외에 예년처럼 팝, 록, 컨트리, 랩, 댄스, 클래식 등 음악 장르별 세부 부문이 있고 작·편곡, 앨범 패키지, 프로듀싱까지 아울렀다. 
 
방탄소년단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팝 세부 시상 중 하나인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에 올랐지만, 트로피는 각각 레이디 가가·아리아나 그란데, 도자 캣·SZA에게 넘기고 말았다.
 
지난해 빌보드 싱글 차트 10주 1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대상 등 성과를 냈음에도 그래미의 선정 기준에는 못미쳤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그래미 어워즈 후보는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 중 투표권이 있는 1만1000여 명의 투표로 선정한다. 방탄소년단과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의장도 각각 투표 회원과 전문가 회원 자격으로 투표할 수 있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선정 위원 중 다수는 백인 남성이다.
 
후보 지명 후에는 수상자를 결정하는 최종 투표가 진행된다. 해당 부문에서 최다 득표를 한 후보가 수상하게 되고 득표수가 같을 경우 공동 수상을 한다. 수상자는 축음기를 형상화한 트로피 '그라모폰(Gramophone)'을 받게 된다. 
 
평단에서는 BTS의 이번 수상 불발을 두고 그래미가 여전히 보수적이고 인종적 위계가 심하다는 의견과 팝 부문이 대표적인 미국 주류 음악 장르라 경쟁이 치열했다는 분석이 맞부딪친다.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수상 불발은 BTS 음악이 미국 차트와 시장에선 엄청난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래미가 통상적으로 요구하는 음악성과 예술성은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최근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해도 그래미가 여전히 보수적 스탠스를 갖고 있는 방증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래미는 지난해까지 운영하던 비밀 위원회를 없애고 회원 전체 투표로 후보를 지명하는 것으로 규정을 바꾸기도 했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역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영역이 워낙 경쟁도 치열했다"면서도 "팬덤과 시장 논리보다는 음악성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지난해 앨범 단위를 발표하지 않은 BTS의 경우 경쟁작들에 비해 약한 측면도 작용했을 것"이라 설명했다.
 
실제로 올해 해당 부문의 트로피를 탄 도자 캣·시저(SZA)의 '키스 미 모어(KISS ME MORE)'는 완성도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곡이다. 미 대중문화지 벌처는 작년 그래미에서 상을 받지 못한 도자 캣이 디스코 부활의 공로를 인정 받아야 한다며, 히트곡 '키스 미 모어'가 수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올해 본상 수상자들을 보면 대체로 장르를 스스로 흡수하고 음악계에 거대 파열음을 일으킨 이들이 주를 이룬다.
 
5개의 그라모폰을 휩쓴 미국 재즈 뮤지션 존 바티스트는 재즈를 토대로 가스펠, 솔, 힙합을 짜임새 있는 구조와 생기있는 연주로 주목받았다.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 OST 작곡부터, 장르적 활용 범위가 넓은 결과물들을 내왔다. R&B 듀오 실크소닉 역시 1960~1970년대풍 솔(Soul) 음악을 매끈한 현대적 멜로디로 구현해 음악계에 파격을 준 공로로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를 받았고,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스스로의 록 작법으로 지난해 Z세대 중심으로 록의 귀환을 주도한 인물로 꼽힌다. 지난해 그래미상 4개를 휩쓴 빌리 아일리시는 이날 푸 파이터스의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히트곡 '해피 댄 에버(Happier Than Ever)'의 후반부 록 사운드를 파격적인 라이브로 선보였다.
 
빌리 아일리시는 최근 숨진 푸 파이터스의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히트곡 '해피 댄 에버(Happier Than Ever)' 후반부 록 사운드를 파격적인 라이브로 구현했다. 사진=AP·뉴시스
 
조수미부터 BTS까지, 한국 그래미 도전사
 
방탄소년단이 그래미와 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19년 시상식부터다. 멤버들은 당시 'R&B 앨범' 부문을 시상하러 무대에 올랐다.
 
2018년 5월 발표한 정규 3집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 앨범 패키지를 디자인한 허스키 폭스가 당시 '베스트 레코딩 패키지'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의 성과가 영향을 미쳤지만 이는 제작사에게 수여하는 기술 부문 상으로, 방탄소년단과는 직접적 관련은 없었다.
 
이후 2020년 제62회 시상식에서는 래퍼 릴 나스 엑스(Lil Nas X)와 합동 공연을 했다. 작년 3월 '제63회 그래미 어워즈'에서는 히트곡 '다이너마이트'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수상은 아쉽게 불발됐으나, 한국 대중음악 가수 최초로 그래미 어워즈 후보로 기록됐다. 
 
올해 '버터' 단독 무대와 수상 후보까지 합치면 3년 연속 퍼포머이자, 2년 연속 후보에 오른 것이다. 다만 이날 수상 불발로 대중음악 분야 한국 그리고 아시아 최초 그랜드 슬램(빌보드, 아메리칸뮤직어워드, 그래미어워드)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잠시 숨 고르기를 하게 됐다.
 
그간 대중음악 부문 이외 그래미 클래식 분야에서는 이미 한국인 수상자가 나온 바 있다. 1993년 제35회 시상식에서 소프라노 조수미가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와 녹음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그림자 없는 여인'이 그해 클래식 오페라 부문 '최고 음반상(Best Opera Recording)'에 선정됐다.
 
음반 엔지니어인 황병준 사운드미러코리아 대표는 2차례나 수상의 이력이 있다.
 
지난 2012년 작곡가 로버트 알드리지의 오페라 '엘머 갠트리'를 플로렌타인 오페라 코러스, 밀워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레이블 낙소스의 음반으로 클래식 부문 '최우수 녹음기술' 상을 받았다. 2016년에는 라흐마니노프의 '베스퍼스: 올나이트 비질(Vespers: All-Night Vigil)' 음반으로 '베스트 합창 퍼포먼스'를 수상했다.
 
작년에는 한국계 미국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최우수 클래식 기악 독주 부문을 받아 눈길을 끌었다.
 
수상까진 못했지만 후보에 오른 경우도 많다.
 
2012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엔지니어 남상욱은 '베스트 엔지니어드 앨범, 넌 클래시컬'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같은 해에 국악 음반사 악당이반이 제작한 '정가악회 풍류 Ⅲ-가곡'이 '서라운드 사운드'와 '월드뮤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올해 세계적 DJ 제드(Zedd)와 그리프 '인사이드 아웃' 리믹스에 참여한 한국인 작곡가 겸 프로듀서 이스케이프 드림(3SCAPE DRM·최진열)은 방탄소년단과 함께 그래미 어워즈 후보 명단 '베스트 리믹스드 레코딩' 후보로 지명됐으나, 아쉽게 수상은 하지 못했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K팝은 뜸이 더 들어야 하는 단계임을 확인했다"면서도 "BTS는 아직 더 할 일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BTS가 그래미를 수상하게 되면 결국 한국 대중음악 해외진출의 정점이자 신기원이 열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래미 수상과 더불어 더 많은 케이팝 기술들이 해외로 뻗어나가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제64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버터' 무대를 펼친 방탄소년단. 사진=AP·뉴시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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