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에겐 ‘넘사벽’ 케이스로 불리는 쪽이 ‘태국 공포영화’다. 이른바 ‘점프 스케어’(깜짝 놀라게 하는 방식) 기법의 공포가 아니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샤머니즘이 발달한 태국에서 귀신(鬼神)은 특별한 존재가 아닌 언제나 함께 있는 그들이다. 그래서 그들에겐 정말 많은 다양한 시선이 존재해 왔다. 태국의 공포영화를 보면 태국 사람들이 공포를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른 지점에 있음을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태국 공포 영화를 만들어 온 영화인의 정점에 이 사람이 있었다.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태국 로컬 영화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선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그가 선보인 ‘셔터’ ‘샴’ ‘피막’ 등은 태국 영화사에 기록적인 흥행 성적을 남긴 것은 물론 국내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던 작품들이다. 그가 잠시 멜로/로맨스 장르로 외도를 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에게 해답은 ‘공포’였다. 그걸 짚어낸 영화인은 공교롭게도 한국의 나홍진 감독이다. ‘곡성’을 연출하고 후속편 고민을 하던 중 ‘랑종’ 시나리오를 완성한 뒤 반종 감독을 연출자로 낙점했다고. 반종 감독 역시 자신의 ‘셀럽’이던 나홍진 감독 요청에 흔쾌히 연출 제의를 받아들였단다.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사진/쇼박스
‘랑종’ 개봉을 앞두고 뉴스토마토와 화상으로 만난 반종 감독은 이 영화를 만나기 직전까진 ‘공포’ 영화를 보지도 만들 계획도 없었단 얘기를 했다. 태국 공포 영화의 정점에 서 있는 연출자가 내 뱉은 뜻밖의 속내였다. 워낙 기상천외한 연출과 미장센으로 자신의 ‘영화적 공포 세계’에서 해볼 건 다 해본 탓에 그랬던 것일 수도 있을 듯싶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욱 더 나홍진 감독이 건 낸 ‘랑종’ 시나리오가 호기심을 당겼던 듯싶다.
“맞아요 실제로 그랬죠. ‘셔터’와 ‘샴’ 이후 공포 장르에 대한 따분함이 생겼었죠.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손에 쥐어진 ‘랑종’ 시나리오가 특별해 보였어요. 특히 ‘곡성’을 너무 대단하게 봤는데 나홍진 감독과 함께 할 수 있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죠. 인간들의 원죄나 악에 대한 얘기를 풀어가고 싶었는데 나 감독과 그런 점에서 공통분모를 찾았죠. 관객들에게 그런 것을 생각할 기회를 ‘랑종’으로 주자고 했죠.”
충무로에서도 대단한 완벽주의자로 소문한 나홍진 감독 촬영 현장은 초보 스태프들에겐 결코 쉽지 않은 현장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이번 ‘랑종’은 태국에서 찍은 사실상 태국 영화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시나리오와 제작 그리고 프로듀서에는 ‘나홍진’이란 이름이 선명하게 쓰여져 있다. 반종 감독이 경험한 ‘나홍진’이란 감독의 아우라는 한 마디로 이랬다고 한다.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사진/쇼박스
“나홍진 감독과의 작업은 한 단어로 압축할 수 있어요(웃음). ‘압박감’ 그리고 ‘중압감’이죠. 하하하. 그가 내게 이런 감정과 스트레슬 준 게 아니라, 어떤 연출자라도 나홍진 감독 수준의 영화인과 함께하면 그런 감정을 당연히 느낄 수 밖에 없다 생각합니다. 참고로 나 감독은 날 믿어주고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정말 많이 줬어요. 많은 의견 교류가 있었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피드백을 하면서 좋은 작품을 함께 만들었죠.”
‘랑종’은 분명 상업영화다. 하지만 반대로 ‘상업영화’스럽지 않은 부분이 정말 많다. 그건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형식 때문이다. 영화는 극중 태국의 무당 ‘랑종’을 취재하는 가상의 취재진이 취재한 내용과 과정을 관객들이 다시 보는 형식이다.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와 푸티지 파운드 형식을 끌어왔다. 이런 형식 때문에 ‘랑종’의 공포감은 더욱 더 사실감을 더한다. 이런 점은 실제 시나리오에 엄연히 명시된 기법이기도 했다고.
“우선 페이크 다큐 형식은 제 아이디어가 아닌 시나리오 원안에서부터 명시돼 있던 기법이에요. 우선 전 시나리오를 처음 받은 뒤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페이크 다큐 형식이 적합한지, 아니면 극영화 스타일 촬영이 맞는 것인지. 이런 고민을 나 감독님과 논의를 했죠. 정말 많이 논의를 했는데 결국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가는 걸로 결정했죠. 태국의 무속신앙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그 지점을 가장 힘 있게 표현하는데 적당하단 방법이라고 결론을 내렸죠. 리얼리티도 살릴 수 있고.”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사진/쇼박스
사실 반종 감독은 앞서 언급한 ‘공포 장르에 대한 따분함’에 이 장르를 한동안 멀리했었다. 그리고 ‘랑종’을 받은 뒤 자신이 좋아한 나홍진 감독과 함께 할 수 있단 기회에 연출 제안을 승낙했다. 그러나 반종 감독은 ‘그걸 후회한 적이 있었다’고 웃는다. 자신이 태국 사람으로서 태국의 공포를 그려왔던 감독이지만 정작 ‘랑종’ 속 태국의 샤머니즘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웃음). 그래서 나 감독에게 ‘시간을 달라’고 부탁한 뒤 조사를 하기 시작했죠. 그 조사에서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이 흥미로웠죠. 우선 태국의 무속인들은 누군가를 속이고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보단 아닌 사람이 더 많았단 점, 한국 돈으로 1000원 정도를 받고 병을 치료해주는 무속인, 물론 그게 실제인지 아닌진 모르겠지만 치료를 받는 사람 중에는 정말 병이 나은 케이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가짜는 중요한 게 아니었죠. 일종의 그 지역 정신 상담사 역할을 무속인들이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조사된 내용을 토대로 반종 감독은 배우들에게 매 촬영에서 ‘어떻게 찍을 것’이란 디렉션을 줘야 한다. 하지만 반종 감독은 일종의 가이드라인 정도만 줬단다. ‘이번 촬영은 시나리오의 이런 장면이다’ ‘어떤 감정으로 어떻게 연기를 해야한다’란 점이 아니다. 그저 ‘알아서 해봐라’란 얘기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렇게 진행한 이유는 분명히 의도한 바가 있고 또 목적도 있었다.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사진/쇼박스
“이 영화는 리얼리티가 가장 중요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그런 점을 이용하려 가이드만 주고 촬영을 했죠. 자연스러운 연기, 실제에 가까운 연기를 담기 위해서였어요. 중요한 대사만 주고 배우들이 자유롭게 애드리브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줬어요. 영화 속 거의 모든 장면이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 진 결과의 연속이에요.”
‘랑종’은 이런 과정을 통해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이미지와 설정들로 채워졌다. 무엇보다 끔찍할 정도로 공포스럽고 또 무섭다. 이런 감정의 배경에는 기존 장르 영화에서도 섣불리 손을 대기 힘들 정도의 자극적인 장치들이 이 영화 속에 가득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자극적인 장치들이 연출자인 반종 감독의 의도인지, 나홍진 감독의 의도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대중들에겐 가장 큰 이슈가 될 수 있을 듯했다.
“(웃음)나 감독과는 매 장면마다 수위 조절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죠.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와 영화적 스토리에 꼭 필요로 한 장면은 넣었어요. 선정적이거나 위험하고 논란이 많은 장면은 CCTV를 활용한 연출로 대체했어요. 자극을 위한 자극적인 표현이 절대 아니라 실제 무당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전부 그들에게서 들었던 내용들이에요. 논란이 된 장면들은 전부 영화에 꼭 필요한 장면이라고 꼭 말씀 드리고 싶어요.”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사진/쇼박스
‘랑종’은 개봉 전 언론 시사회를 통해 ‘극강의 공포’ ‘트라우마를 만드는 공포’ ‘영화가 끝난 게 감사할 따름이다’ 등 공포 영화에겐 더 없는 최고의 극찬으로 가득한 평가가 쏟아졌다. 이런 점은 반종 감독의 미묘한 연출이 큰 몫을 했다. 그리고 그런 점은 태국 공포 영화만의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한 색채가 ‘랑종’에도 강하게 투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태국 영화만의 독보적인 색채가 아시아 각국 공포 영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반종 감독이 이렇게 분석했다.
“온전하게 개인적인 생각을 전제로 말하겠습니다. 태국 사람들은 여러 믿음과 신앙에 너무 많이 노출이 돼 있어요. 촬영 전 태국 각 지방을 돌아 다녔는데 마을마다 믿는 신앙이 다르고 신들도 다르고 또 어떤 곳에는 교회가 있고 건너편에는 절도 있고. 이렇게 태국 사람들은 다양한 신을 믿고 또 귀신 얘기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태국 사람들이 공포 영화를 좋아하게 하는 점이고 또 태국 공포 영화가 다른 아시아 국가 공포 영화와 다른 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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