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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연

"설계 지식없이 시작한 원전, 이제는 해체시대"

(르포)고리본부, 1호기 2032년 녹지로…사용후핵연료 처리는 첩첩산중

2019-10-3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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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국내 첫 원전인 고리1호기를 설계한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는 설계도도 보여주지 않을 만큼 배타적이었죠. 하지만 한국형 원전 개발에 이어 해체기술 역시 전부 국산화를 목표로 할 만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지난 29일 방문한 부산 기장 고리본부의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의 말이다. 고리본부의 고리1호기는 국내 첫 해체원전으로 결정됐고, 고리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떨어진 새울원자력본부에서는 반대로 신고리 5, 6호기가 한창 건설 중이다. 즉 해체와 건설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현장에서 만난 원전 관계자들은 표정에서는 회한이 묻어났다. 첫 원전과 사실상 마지막 원전이 인근에서 해체와 건설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탓이다. 
 
실제 1982년부터 37년 간 고리본부에서 일한 권양택 고리1발전소 소장은 고리1호기에 대해 "국내 원전산업의 발전과정이 오롯이 녹아 있다"며 "40년 간 제 역할을 다한 고리1호기가 원상복구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의 월내항과 울산의 신리항 사이 바닷가에 위치한 고리원자력 본부의 첫 원전 고리1호기는 1971년 첫 삽을 뜬 이후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이후 40년 동안 총 1560억킬로와트시(kWh)의 전기를 만들어낸 뒤 2017년 6월18일 영구정지됐다.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1호기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
 
 
해체 결정 후 고리본부의 원전은 절반 정도 가동 중인데 1·2호기가 터빈건물을 공유하고 있어 고리1호기의 원자로에서 나온 증기가 전기로 만들어지는 터빈과 발전기는 가동하지 않고 있어서다. 터빈건물 3층으로 안내한 최득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본부 1호기안전관리실장은 "1호기 바로 옆 2호기의 발전기와 터빈은 여전히 1800rpm으로 돌고 있다"고 말했다.
 
한수원 계획대로라면 고리1호기는 2032년까지 해체가 완료돼 녹지로 복원된다. 2022년 6월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해체 승인을 받은 뒤 2025년 사용후핵연료 반출, 2030년 제염·철거 등의 과정을 거친다는 계획이다.
 
울산 새울원자력발전본부의 신고리4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습식저장조. 사진/한국수력원자력
 
하지만 국내 첫 해체원전으로 결정된 고리1호기가 실제 해체에 착수하기 위한 과정은 순탄치 않다. 가장 큰 난제는 사용후핵연료 처리다. 즉시해체 방식이 적용되는 고리1호기가 일련의 해체과정을 밟으려면 습식저장조에 보관된 사용후핵연료를 어디에 옮길지 정해야 한다. 한수원은 내년 6월 원안위에 원전 최종해체계획서(FDP)를 체출한 뒤 2년여로 예상되는 심사 기간 동안 사용후핵연료 처리방향이 결정되지 않을 경우 승인이 지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정부가 제시한 사용후핵연료 기본계획을 재검토하겠다며 5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시민단체와 일부 지역 주민들은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문제를 어떻게든 결론내기 위해 형식적인 절차를 밟는 데에만 급급한 정부와 한수원을 비판하며 위원회 참여를 거부하는 상태다.
 
주민 의견수렴에서도 난항을 겪고 있다. 해체계획서를 원안위에 제출하기 위해서는 주민 공람을 거쳐야 하는데 현행법상 고리본부 반경으로 인구가 많은 울주군 의견을 수렴하게 돼 있다. 주소지인 기장군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원자력안전법을 개정한다는 게 원안위 입장이다. 한수원 스케줄대로라면 원자력안전법 개정을 거쳐 주민 의견 수렴까지 8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다.
 
울산 새울원자력본부의 신고리 3, 4호기.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울산 새울원자력본부에서 건설 중인 신고리 5, 6호기.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인근의 새울원자력본부에서는 신고리 5·6호기가 건설 중이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거쳐 공사 재개가 결정된 이후 현재까지 가동률은 50% 수준. 예정대로라면 국내에 들어서는 마지막 원전으로 6호기의 설계수명 60년이 끝나는 2084년부터 탈원전이 가능하다.
 
신고리 5·6호기는 한국이 처음 원전을 수출한 아랍에미리트(UAE)의 바라카 원전과 같은 한국형 원전 'APR1400'이 적용됐다. 앞서 지어진 3·4호기와 신한울 1·2호기도 같은 모델이다. APR1400은 미국 이외 원전으로는 처음 미국 인증을 받을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국내 첫 원전인 고리1호기 다음으로 해체 가능성이 높은 곳은 월성1호기다. 한수원은 설계수명 만료시점이 2020년인 월성1호기에 대해 지난해 6월 조기 폐쇄 결정을 내렸지만 국회가 감사원 감사 요구안을 의결해 현재 원안위에서 원전 정지를 의결할 수 있는지 여부를 감사원이 검토 중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노후원전은 잔고장이 많은데 추가로 돈을 들이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월성1호기 폐쇄는 필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설계수명이 2023년까지인 고리2호기 역시 수명연장 없이 해체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이어 "고리2호기가 계속운전을 하려면 내년에 인허가 신청을 해야 하는데 준비하지 않고 있다"며 "일단 안전성을 최우선 목표로 원전건설과 해체시장에서 역할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고리1호기 해체사업 추진일정. 자료/한국수력원자력
 
울산=강명연 기자 unsai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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