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김용현

(피플)영세업자 골목상권 살아남기?…"남다른 고집이 해법"

대기업 프레차이즈 틈바구니 속 고객에게 '믿음' 준 동네 빵집

2016-11-28 08:00

조회수 : 2,824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김용현 기자] 직장인들이 퇴근하기는 조금은 이른 오후 4시30분. 성북동 동네 빵집 '오보록'을 찾은 시간이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 빵들은 손님들에게 팔려 나갔고, 바게뜨 2~3개와 쿠키 몇 개만 진열대에 남아있었다. 인터뷰 도중 빵집을 찾은 몇몇 손님들은 헛탕을 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손님이 빵을 못사고 나갈 때 질문했다. "이렇게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빵을 더 만들지 않나? 수익을 더 올리면 좋지 않나?"
 
'오보록' 왕명주 대표는 말했다. "짬깐의 돈은 얼마든지 더 벌 수 있다. 하지만 이분들은 우리 빵집을 지나다 그냥 찾는 손님이 아니다. 그동안 정해진 방법을 통해 숙성 시간을 지키고 엄선된 재료만을 사용해 정성껏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오는 분들이다."
 
이미 우리를 길들여버린 획일적인 빵맛으로 골목을 장악하고 있는 대형 프렌차이즈 업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성북동 골목 대표 빵집으로 자리잡은 '오보록'을 찾아가 대형 프렌차이즈의 홍수 속에서 골목상권 영세업자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왕명주 오보록 대표
 
-'오보록', 가게 이름이 독특하다.
 
작은 것들이 한데 모여서 오복하게 쌓였을때를 형상하는 말이다. 과거 시작을 좋아했는데 그때부터 좋아하던 단어라 가게를 열면서 사용하게 됐다.
 
-어떤 계기로 제빵업을 창업하게 됐나.
 
모 그룹에서 빵을 만드는 일을 11년 정도 했었다. 그러던 중 건강한 빵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게 됐다. 당시 부친께서 사업을 관두게 되시면서 함께 시작했다. 아무래도 가족과 함께 사업을 시작하다보니 보다 큰 용기를 얻게 됐다.
 
마침 부모님 댁이 성북동이어서 이곳에서 가게를 열게 됐다. 성북동은 대사관저가 많아 외국 손님이 처음에 많았다. 그분들을 통해 빵맛이 소문이 나게 되면서 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게 됐다. 다행히 지금은 그 손님들 이외에도 건강한 빵을 찾는 많은 국내분들이 내가 만든 빵을 찾고 있다. 무엇을 만들어 그것을 찾는 고객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빠르게 유명 빵집으로 자리잡게 된 비결은?
 
다양하지는 않지만 고집스러운 빵을 만든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심심하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지만 강한 맛보다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런 빵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또 무엇보다 건강한 빵을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현재 대표빵은 통밀빵이나 식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바게뜨도 대표적인 인기 품목 중 하나다. 다른 제빵업체와 달리 매일 접할 수 있는 빵을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 손님들이 간식 보다는 식사용으로 구입을 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곳 성북동 대사관 손님들이 처음 주 수요층이 됐으며, 지금은 동네 주민들도 많이 찾아주시고 계신다.
 
좋은 재료를 쓴 것도 빠르게 이 동네에 녹아든 계기가 아닌가 싶다. 누구나 알듯 빵의 주재료는 밀가루다. 밀가루가 가장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 호주에서 3대째 유기농 밀 농사를 짓는 집안의 밀가루만 가져다 쓴다. 물론 가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지만 많은 수익을 남기는 것 보다는 오랜기간 인정 받고, 신뢰받는 빵을 만들고 싶어 선택하게 됐다.
 
그 덕분에 시간이 갈수록 한 번 찾은 손님이 지속적으로 방문해 주시는 등 입소문이 나면서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각종 잼이나 청 등 유기농 건강 상품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도 있다.
 
-직장생활을 하다 큰 변화를 겪었을텐데.
 
내년 4월이면 '오보록'을 오픈한 지 3년째를 맞는다. 그동안 많은 계절이 반복적으로 지나갔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바깥 세상은 나와는 상관없이, 또 때로는 나를 배제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빵집에만 모든 시간을 쏟아왔다. 오로지 가게 창밖으로 보이는 계절 변화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바쁘게 지내왔다.
 
직장인들의 경우 본인 가게를 하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경우도 많은데, 결코 쉽지 않음을 꼭 알아야 할 것이다. 정해진 월급이 없어 때로는 빵 하나가 팔리는 것에 안도하고, 또 때로는 슬퍼하기도 해야 했다. 지나친 대박에 대한 환상만 갖고 창업에 도전한다면 큰 좌절을 겪을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평소에 아침을 잘 먹지 않는 가족이었는데 내가 만든 빵 덕분에 이제는 온가족이 아침마다 식탁에 모여 식사를 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아이를 위해 어머니께서 빵을 사가셨는데 그게 아이에게 잘 맞아서 매일 먹게 되고, 이후 어머니, 아버지도 함께 먹게 되면서 아침에 온 가족이 모이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최근에도 이틀에 한 번은 꼭 찾아 오신다. 단순한 음식으로서의 역할이 아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또 왜 빵을 잘 만들어야 하는지 크게 느끼는 계기가 됐다.
 
빵집 처음 문을 열때 마늘을 구하기 위해 의성, 팥을 구하기 위해서는 영동을 직접 방문하는 등 국산 재료를 쓰기 위해서도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자주 찾는 손님들은 그 재료와 진한 국산 재료의 향기에 만족해 이곳 빵을 먹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성북동 동네빵집 '오보록' 제빵실 모습. 왕명주 대표는 유기농 재료를 통한 건강 특화 빵들을 선보이며 대형 프렌차이즈 업체들 틈바구니 속에서 성공한 동네 빵집으로 자리잡았다.
 
 
-대기업의 체인점들이 골목상권을 흡수하고 있는데.
 
사실 이 동네에도 대형 프렌차이즈 빵집이 문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수제로 빵을 만드는 가게들을 이기지 못하고 오히려 지금은 문을 닫았다. 다들 어렵다고 하지만 특화를 통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렌차이즈뿐 아니라 이 골목에는 이미 성공한 대형 빵집이 오래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지인들은 처음 빵집 문을 열때 큰 걱정을 하기고 했다. 하지만 어느 동네에나 있는 일반 빵이 아닌 서로 특색있는 빵을 만들다보니 오히려 시너지 효과가 났다. 단순히 동네 손님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성북동 골목에는 맛있는 빵집들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일부러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연세가 좀 있는 어르신들이나 아이를 둔 엄마들이 성북동 빵집의 주요 고객층이다. 이곳 대부분 빵집들이 건강함과 기존과의 다름으로 승부를 했고, 지금은 어느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특징있는 빵집들이 이곳에 많이 들어섰으면 좋겠다.
 
-골목상권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께 조언을 한다면
 
우선 너무 성급하게 수익에 대한 헛꿈을 꾸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많은 분들이 기존 상권을 형성하고 노하우를 가지고 일을 해오시고 계신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알려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조금은 길게 보면서 성급한 마음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뚜렷한 자기 철학이 있었으면 좋을 것이다. 어떻게 나가겠다는 방향성을 스스로 제시해야만 새로운 상황이나 변수에 능동적으로 잘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처음 빵집을 열면서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지만 건강이라는 컨셉을 잡고 유기농 제품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건강한 재료를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평소의 생각을 실전에 옮긴 것이다. 가격과 익숙하지 않음 등으로 처음에는 어려움도 겪었지만 결국 내 진심이 고객들에게 잘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또한, 창업의 가장 기본인 상권 분석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곳 골목은 이미 빵집이 있어도 같은 업종의 새로운 가게가 생겨도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대부분 상권이 쉽지 않은 만큼 동네 상권에 대한 분석은 어떤 업종이든 창업의 기본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제의 독창성도 중요한 성공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업종 자체가 특별하기는 쉽지 않은 만큼 재료나 방식 등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고객에게 다가간다면 성공의 길이 더욱 가까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용현 기자 blind28@etomato.com
  • 김용현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