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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네팔 지진 후, 위기가 우선되고 국가 보물은 폐기물 되다

세계 시민

2015-05-11 16:13

조회수 : 4,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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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네팔 지진이 일어나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하였을 것이다. 실제 네팔에서 어떤 식으로 구호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깨달았고 인명 구조 활동이 끝나고 네팔은 어떤 식으로 나라의 문화유산을 비롯한 전반적인 시스템을 복구할지 궁금증이 생겼다. 이 기사는 New York Times에 2015년 4월 28일에 실린 보도이다.
 
뉴욕타임즈 홈페이지. 캡쳐/바람아시아
 
카트만두, 네팔 - 화요일 카트만두의 바센타펄 둘발 광장에서 무거운 나무기둥들이 마주데가 신전의 남은 잔재를 타고 내려갔다.
 
수색구조 팀의 봉사 회원들은 나무들보를 발판사다리로 사용하고 가끔씩 많은 벽돌들을 그 위로 충돌하도록 보내기도 하면서 신전의 기저를 기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였다. 그것은 사람들이 가로지르고 비에 노출된 광장에 있는 수목 더미에 결국 놓이게 된다.
 
이전에 경매 전문 회사에서 전문가 일을 해봤다면, 나무기둥에 대해 몇 가지를 눈치 챘을 것이다: 그것은 두 신의 형상이 복잡하게 조각되어 있었고 아마 17세기의 것일 수도 있다 – 이러한 조각은 서양에서 수천 달러에 팔릴 수 있을법한 것이다.
 
진도 7.8의 지진이 네팔을 강타한지 삼 일만에 사망자 수가 5,000명이 넘도록 급증해서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관심에서 제쳐두어졌다. 생존자를 찾는 희망은 줄어들고 있었지만 수만 명이 현재 폭우에도 불구하고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깨끗한 물의 매장량이 고갈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많은 곳에서 몇 세기가 지난 신전들과 궁전들의 쓰레기들이 무방비하게 버려졌고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문화유산의 무리들을 결국 다시 세우는 기회를 줄게 하였다. 아마 감상적 가치 때문에 보행자들은 토요일에 40명의 사람들을 가두며 무너진 드라하라 타워의 벽돌들을 가지고 달아나고 있다.
 
월요일에 한 시민이 네팔의 고고학 부서에 전화를 해서 이 수도에서 신전의 지붕에 있는 동으로 된 종을 훔치려고 한 시도가 좌절된 것을 알린 이후에 당국에서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 첫 발을 내딛었다. 화요일에 지역신문에 공예품을 가져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벌을 받을 것이라는 공지가 실렸다.
 
하지만 거기에는 사적 보존 운동가들에 의해 꼼꼼하게 기록되고 1979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카트만두 골짜기에 닥친 재앙의 크기에 대한 무력함의 기운도 있었다.
 
“아무도 이것을 실제 할 수 없습니다 – 정부도, 유네스코도 할 수 없기에 저는 따라서 모두가 함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카트만두에서 유네스코 사무실의 대표인 크리스찬 맨하트가 말하였다. “몇 천개의 장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경찰관이나 군부대를 각각의 장소들에 24시간 배치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다른 용도를 위하여 필요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상상할 수 있듯이 불가능합니다.”
 
유네스코의 최고 직책에 있는 이리나 보코바는 월요일에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토록 많은 문화유산을 망가뜨린 현대의 자연 재해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따분하고 깊은 슬픔이 이번 주에 그 골짜기의 가장 유명한 이웃에 서성였다. 지진이 있은 지 이틀 뒤에 가파르고 좁은 바크타푸르의 거리에서 이곳으로부터 몇 마일이 떨어진 한 고대 분홍-벽돌 도시가 완전히 그 주민들에 의하여 버려져서 방문자는 비둘기가 우는 소리밖에는 들을 수 없었다.
 
위를 흘낏 보는 것이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벽돌집의 표면에는 지그재그로 금이 가있었고 크고 우아한 창문이 조각된 몇몇의 구조물들은 토요일에 안쪽으로 무너지면서 사람들을 가두었다. 가끔씩 이번 주에 주민들은 쌀이나 다른 물품이 든 가방을 집기위해 단숨에 뛰어갔지만 그들의 두려움은 너무나 극심해서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얄라첸 도로의 경계선에서 다른 곳으로 가야하는 급박함이 전혀 없이 앉아있는 사람은 삼 세대동안 그의 가족의 소유였던 집을 바라보는 키셔 레지밴다리였다.
 
“이것은 제 집입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이것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안에는 모든 구석마다 갈라진 틈이 있습니다. 다음 진도 6.5의 지진이 오면 이것은 사라질 것입니다.”
 
카트만두 도시는 중국과 인도를 두 개의 통상로의 교차로에 지어졌고 이것의 건축 유산은 서로 중복되는 사건들을 비추었다: 질 높은 놋쇠와 목각으로 장식된 7세기의 소형 불교도의 봉헌구조; 불로 구운 빨간 벽돌로 만들어진 줄로 배열된 신전들; 수도원, 종교적 단지, 궁전, 뜰과 기와집의 무리들.
 
이 파괴는 압도적이었다. 유네스코는 카트만두, 바크타푸르과 파탄에 있는 신전 단지들이 거의 파괴되었다고 말했다. 화요일 바센타푸르 더르바르 광장에서 자원 봉사자 팀들이 토요일에 무너진 두 개의 신전의 하부구조에서 파편들을 삽으로 치우고 있었다. 봉사자들이 발견한 두 구의 시체를 치우기 위하여 구급차가 출동되었다. 어느 정도의 경찰관들이 광장에 서있었지만 이들의 노력을 도우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어떠한 조직도 없습니다,” 라고 마주데가에서 돌무더기를 치우는 것을 4시간 동안 도와준 22세의 캐나다에서 온 여행객인 카이틀린 불이 말했다. “이것은 그냥 무질서한 상태입니다.”
 
비록 미소를 짓는 두 신 아래서 곡예사처럼 즐겁게 뛰노는 여자가 있는 분홍색의 조각품과 같은 몇 개의 특히 아름다운 조각품들은 한쪽으로 치워졌지만 돌무더기를 빨리 치우려는 과정에서 조각된 기둥과 받침대들은 나무의 파편들로 쌓이게 되었다.
 
광장에 있는 경찰서에 경감인 아닐 아드히카리는 광장에서 약탈로 인해 체포된 사람들은 골동품 시장에 목각을 팔려고 계획했던 여덟 명의 청소년뿐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서 밖에서 쌀을 담아 팔던 하얀색 봉지에 아드히카리씨는 한 다스의 신과 여신들의 조각상들을 모았다.
 
당국자들은 최근 며칠 동안 약탈이 더 긴급한 쟁점이 되었다고 했지만 현장을 지키는데 각각 다른 대리인을 그곳을 지키는 책임자로 둔 모양이다. 아드히카리씨는 그의 경찰서는 정부의 고고학과 당국자들로부터 돌무더니 속의 보물들에 대하여 알려졌지만 그 부서의 당국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정부의 국가적 계획 위원회의 회원인 찬드라 마니 아드히카리씨는 “상세한 사업 계획을 세우고 빨리 행동을 취해서 이것들을 보존하라”고 부서에게 지시했다고 했다.
 
고고학과의 단체장인 베쉬 나라옌 다할씨는 자기로서는 도시의 경찰과 지역 장교를 방문해서 “제발 더 많은 보안을 그곳에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약탈을 금하는 경고장이 인쇄되어 방송될 것을 지시했으며 직원들에게 유적들을 방문한 뒤 공예품들을 박물관에 안전하게 보관해두라고 하였다. “저는 너무 걱정됩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제가 어떻게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너무나도 걱정됩니다. 우리의 유산을 어떻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자원 봉사자들이 바센타푸르 더르바르 광장에서 마지막 시체들을 돌무더기 속에서 꺼내는 일에 열중하는 것에 대한 부수적인 걱정이었다. 정오가 지나고 바로 그들은 보아하니 신전 계단을 뛰어서 내려가다가 흉부가 으스러진 한 네팔 남자를 발견하였다.
 
2014년에 출판된 그 도시에 관한 책인 “카스만두”의 저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토마스 벨은 조각된 기둥이 서로의 위에 떨어지도록 먼지 속에서 그것들을 내던지는 봉사자들을 보았다. 그는 그 기둥들이 즉시 분류되어 보관되고 더 이상의 손상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된다고 말했다. 네팔에서 “사람들은 그것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나무 한 조각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신전을 복구하려 한다면, 그것들을 원할 것입니다.”
 
 
 
김진영/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기자 www.baram.asia T F
서종민 기자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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