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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1¥=900₩은 ‘부등식’이다

오늘 부는 바람은

2015-05-06 09:39

조회수 : 3,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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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일본을 수학여행한 지 7년쯤 됐다. 요즘처럼 엔화 값이 참 쌌다. 이웃 나라 화폐 값이 싼 이유를 그때 나는 궁금해 하지 않았다. 수학여행 가서 쓸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될지 가늠했을 뿐이다. 올여름에 일본으로 여행 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중국에 가겠다던 지인은 여행지를 일본으로 틀었다. 한 친구는 “기말고사 치르고 바로 오사카 가자!”고 보챈다. 요즘 엔화 값이 워낙 많이 떨어진 탓에 그런 모양이다.
 
수출시장에서 어느 나라의 화폐 값이 떨어지면 이웃 나라의 손해가 는다고 한다. 수출에 많이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특히 예민하다. ¥(일본 화폐)가 싸질수록 상대적으로 ₩(한국 화폐)가 비싸진다. 수출시장에서 우리나라가 불리해지는 것이다. 화폐 값을 일부러 떨어뜨린 이른바 아베노믹스가 ‘이웃나라 궁핍화’ 정책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유이다.
 
우리도 돈을 막 찍어내든지 채권을 사들이든지 해서, ₩의 값을 떨어뜨리면 되지 않을까. 복잡한 환율 문제의 대응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면, 경제 문외한의 필자가 느끼기에도 위험하다. 미국부터가 가만있지 않는다. 최근 미국 정부는 전에 없이 센 어조로 우리 정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는 환율보고서를 냈다. 아베노믹스에는 별말이 없으면서 말이다. 이에 값싼 ¥에 침묵으로써 미국이 힘 쓸 것이라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1¥=900₩이라는 등식의 성립에 미국의 힘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두 장면이 눈길을 끈다.
 
장면 하나. 지난주 미국과 일본은 새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짰다. 2차 대전을 겪은 세계는 전범 일본에 족쇄를 채웠다.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짠 것. 보름 전만 해도 일본은 제 나라 영토가 타격된 때 말고는 군사력을 쓸 수 없었다. 새 가이드라인은 그 족쇄를 부쉈다. 이제 일본은 전 세계의 미군 곁에서 군사 활동을 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니즈’가 잘 맞물렸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미국은 국방 예산의 5,000억 달러를 줄이기로 했다. IS가 활개 치는 중동을 비롯해 전 세계 각지에 미국이 군사력을 쓸 공간은 늘고 있는데도 그래야 한다. 미국은 가능한 한 군사 활동을 ‘외주’로 돌릴 필요가 있다. 러시아,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동북아에서는 절실하다. 쿠릴열도(러시아), 댜오위다오(중국)에서 영토 다툼 중인 일본은 믿을 만한(?) 외주업자 아닐까.
 
장면 둘. 중국이 아시아 경제의 새 틀로 짠 ‘AIIB’(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에 일본은 아직까지 참여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영국 등 57개국이 참여했는데도 말이다. 일본은 미국이 대아시아 경제 정책으로 짠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만 참여했다. 중국 주도의 새 질서와 미국 주도의 기존 질서 사이 일본의 위치 선정이 선명하다.
 
일부러 ¥의 값을 떨어뜨리는 일본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우리나라의 경우와 판이한 이유 아닐까. 중국이 짜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견제해야 하는 미국으로선, 일본을 부양할 필요가 있다. 어느 언론은 이 장면을 “‘강한 달러와 약한 엔화’ 패키지는 사실 미-일 신동맹전략의 경제적 버전으로 해석하는 게 옳다”고 풀이했다.
 
1¥=900₩이라는 등식이 왜 가능한지 생각하다보니 이 식은 등식이 아니라 ‘부등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장면을 보고나서 우열을 다투는 정치•경제적 힘이 느껴져서 일까. 아무튼 5월 치곤 너무 덥다 했더니 그게 날씨 때문만은 아녔나 보다. 어쩌면 한반도 오른쪽(미국, 일본)과 왼쪽(중국)의 힘, 그 열기가 각각 동해와 서해를 건너오면서도 식지 않는 탓일지도.
 
YTN뉴스 한장면. 캡쳐/바람아시아
 
 
 
서종민 기자 www.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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