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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노동자들)⑤(단독)은폐된 통계…대우건설서 10년간 54명 사망

고용부, 2년째 중대재해 발생현황 자료 비공개…"기업 명예훼손 우려"

2023-12-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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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병호·신태현 기자] 2013년부터 올해 10월까지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가 가장 많은 기업은 대우건설이었습니다. 이 기간 대우건설에서 54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통계를 그간 정부는 공개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산재 은폐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고용부, 윤석열 대통령 당선 후 '중대재해 발생현황' 비공개  
 
그간 고용부는 노동단체 요청과 공익적 목적에 따라 중대재해 발생현황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숫자와 산재가 일어난 기업 명단, 사고현장 주소, 공사 규모, 사업장 규모, 사고 발생일 등입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지난해부터는 2021년도, 2022년도 자료 등을 제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기업에서 몇 명의 노동자가 언제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 어떤 기업에 개선을 촉구해야 할지 알 도리가 없어진 겁니다. 현재 시민단체는 고용부를 상대로 자료 공개를 요구하며 행정소송까지 진행 중입니다. 

2013년~2023년 10월 산재 사망자 집계…대우건설 54명 1위
 
이에 <뉴스토마토>는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 시민단체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의 도움으로 2021년부터 2023년 10월까지 산재 사망자 자료를 확보했습니다. 취재팀은 고용부가 기존 발표한 것과 입수한 자료를 더해 2013년부터 2023년 10월까지 산재 사망자 현황을 집계했습니다. 그 결과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가 가장 많은 기업은 대우건설이었습니다. 이 기간 54명이 사망, 한해 5명꼴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우건설 전경. (사진=뉴시스)
 
대우건설의 사례는 안전에 대한 지속적 투자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대우건설은 외환위기(IMF) 전까지는 대우그룹 계열사였습니다. 당시 대우그룹은 삼성·현대·LG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룡이었습니다. 하지만 IMF로 대우그룹이 무너지자 주인이 계속 바뀌는 풍파를 겪어야 했습니다.
 
대우그룹이 공중분해 된 후 한동안 주인을 찾지 못하던 대우건설은 2006년 금호아시아나(옛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됐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또 다시 매각, 산업은행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2017년 호반건설에 인수될 뻔했지만 무산되더니, 2021년 12월 마침내 중흥건설 품에 안겼습니다. 주인이 거듭 바뀌는 과정에선 제대로 된 안전관리가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 대우건설은 결국 최근 10년간 가장 많은 산재 사망자가 나온 기업이라는 불명예만 안았습니다. 
 
포스코이앤씨 48명 사망…건설업서 산재 사망자 다수 발생 
 
대우건설에 이어 2위는 포스코이앤씨로 집계됐습니다. 4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3위는 한익스프레스 39명 △4위는 DL이앤씨 38명 △5위는 GS건설 36명 △6위는 현대건설 35명 △7위는 현대중공업 33명 △8위는 포스코 24명 △9위는 롯데건설 22명 △공동 10위는 HL D&I 한라(옛 한라건설)와 현대제철로, 각각 18명입니다.   
 
(이미지=뉴스토마토)
 
주목할 건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가 가장 많은 기업 10위 안에 들어간 열한곳 중 일곱개가 건설사라는 겁니다. △대우건설 △포스코이앤씨 △DL이앤씨 △GS건설 △현대건설 △롯데건설 △HL D&I 한라 등입니다. 10년간 일곱개 기업에서만 251명이 죽었습니다. 한해 약 25명의 노동자가 건설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앞서 취재팀은 전국의 노동자 459명을 만나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산재 형태를 물었더니, '부딪침·끼임'이 25.46%(304명)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깔림·넘어짐 20.27%(242명) △떨어짐 17.34%(207명) △유해물질 접촉 8.88%(106명) △절단 7.71%(92명) △화상·폭발·화재 7.20%(86명) △기타 5.36%(64명) △감전 5.11%(61명) △붕괴 1.76%(21명) △산소 결핍 0.92%(11명) 순이었습니다. 
 
건설업은 흙과 나무, 철재 등 무겁고 딱딱한 자재를 다루고 장비를 사용한 공사가 많은 데다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서 일합니다. 산재 발생 형태 상위권인 부딪침·끼임, 깔림·넘어짐, 떨어짐 등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특정 업종에서 산재 사망자가 많다는 건 개별 노동자가 안전모를 쓰느냐 안 쓰느냐가 아니라 경영상의 문제"라며 "경영자가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현장에선 공사 압박까지 있는 상황이라면 현장의 안전수칙은 잘 안 지켜지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11월7일 전국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 건설지부가 서울 금천구 소재 DL이앤씨 공사 현장에서 하도급을 규탄하는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주목할 게 더 있습니다. 죽음의 외주화라는 말처럼 산재 사고는 대부분은 하청 노동자와 관련됐다는 겁니다. 산재가 발생해서 사람이 죽었다면 열에 아홉은 하청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말입니다. 이는 취재팀이 입수한 자료를 기반으로 분석한 통계에서도 드러납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산재로 인한 사망자를 원·하청별로 나눠봤습니다. 총 279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놀랍게도 92.5%에 달하는 258명이 하청 소속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산재를 당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노동자가 빈번한 마당에 고용부마저 관련 자료를 감추는 건 윤석열정부의 친기업 행보가 드러난 결과라고 지적했습니다. 알 권리도 침해한다는 의견입니다.  
 
김철홍 인천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기업 실적이 좋거나 신기술을 개발하면 굳이 알리지 말라해도 공개하면서 정작 인명을 앗아간 건 숨긴다"면서 "가뜩이나 윤석열정부는 친기업 행보로 노동문제에 대선 알레르기적으로 반응하는데, 그 결과가 중대재해 발생현황 비공개"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기업 이름 공개가 명예훼손이라는 주장을 말을 하고 있는데, 잘못엔 경종을 울려야만 예방효과가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권영국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변호사)는 "기업은 산재를 줄이고 예방해야 할 공적인 필요성이 크다"며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기업 명단을 공개하는 게 명예훼손이라는 정부 입장은 '핑계'고, 지나치게 기업을 보호하려는 걸로 보인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윤석열정부를 보면 기업에게 부담을 주는 건 모두 나쁜 것처럼 말한다"며 "국민이 알아야 할 공적 사안에 대한 기본개념 자체가 없는 정부요, 대통령"이라고 꼬집었습니다.
 
2022년 5월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병호·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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