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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현

여전히 아픈 '반도체'…안전도 '강국'돼야

(반도체 지하세계②)20만명 중 '암 사망' 1178명

2022-11-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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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반도체 강국을 지향하는 한국에서 안전한 일터의 갈길은 여전히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전 교육을 비롯해 제도 개선으로 '안전 강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는 대목이다.
 
시민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2007년 6월부터 지난 6월까지 대리 및 지원한 누적 산업재해 신청은 175명이고 이 중에서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를 포함한 반도체 6개 기업은 99명이다.
 
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1998년에서 2016년까지 반도체 6개 기업 전현직 20만1057명을 조사한 결과 암 피해는 3442명, 사망은 1178명에 이르렀다. 직업성암 신청률은 2.9%, 인정률은 1.2%다.
 
반도체는 산업 특성상 유독한 가스가 각종 공정 단계에서 사용된다.
 
한국공기청정협회에 게시된 '촉매식 배가스 처리기술' 논문에 따르면 △'아주 유독'에는 불산, 염소, 아르신, 포스핀, 브로민화수소, 삼염화붕소, 삼불화염소, 염화알루미늄, 옥시염화인, 사염화티타늄, 육불화텅스텐 △'많이 유독'에는 암모니아, 삼불화질소, 디클로로실란 △'보통 유독'에는 디실란, 모노실란 등이 있다.
 
특히 가장 위험하게 꼽히는 물질은 플루오린화 수소 가스 일명 '불산'이다. 2012년 9월 구미에서 일어난 불산사고로 5명이 사망했으며 지난해 4월에도 이천 SK하이닉스 공장에서 불산이 누출돼 3명이 다쳤다. 불산은 불화수소를 물에 녹인 휘발성 액체로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의 불필요한 부분을 녹이는데 효능이 탁월해 반도체 산업에 필수적이다. 부식성이 크고 사람에게 누출시 생명도 잃게 할 수 있다.
 
'반도체 강국'을 지향하는 한국인만큼, 직원들의 안전도 보강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반올림에서는 반도체의 위험성에 비해서 안전의 사각지대가 지나치게 크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1년에 국내에 도입되는 화학물질 300~400개 중에서 반도체가 절반 가량인데다, 사업장에서 퇴출되는 속도도 빨라 안전성을 검증하고 직업병과의 인과성을 밝힐 시간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자동화 등의 첨단시설도 만능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는 "자동화 설비를 유지보수하는 노동자는 차폐된 설비를 열기 때문에 유해화학 물질에 다 노출된다"며 "R&D(연구개발)은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대상이 아닌데다 연구개발이 양산라인을 거치면서 엔지니어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에 들어가는 물질이 작업환경에서 (화학)반응해서 생긴 부산물도 직업병을 발생시킬 수 있다"면서 "먼지를 거르는 클린룸은 미세한 화학물질 분자를 거르지 못하는데다, 내부 공기를 순환시켜 작동하기 때문에 한 공정에서 유입된 물질이 다른 공정으로 유입 및 공유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28일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가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생명·건강권, 알권리 침해하는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 반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반올림)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에서는 불행한 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불산, 포스핀, 아르신 등을 당장 안 쓸수는 없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안전 규정 매뉴얼을 따르는 훈련"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수 활동가 역시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명시한 사업주의 의무는 MSDS(물질안전보건자료)나 작업환경보고서를 게시하는 것"이라며 "이를 '노동자가 알게 해야 한다'는 문구로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사각지대를 메꾸려는 노력이 제도권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미래전문기술원은 화학물질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의 시범 사업을 끝내는 등 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행 작업환경측정 제도를 보완하기 위함이다. 1년에 2차례 이뤄지는 작업환경측정으로는 순간적으로 평소의 수천, 수만배까지 올라가는 물질 노출을 잡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외에 반도체를 포함해 화학물질 관리 제도를 전반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이 활동가는 "발암성·돌연변이성·생식독성(CMR) 물질은 2000가지이지만 특별관리물질은 36가지뿐"이라며 "2000가지를 모두 관리하되 노출량에 따른 위험성을 기준으로 삼아 차등 관리하자"고 제안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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