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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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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삶을 직접 대면하고서야 보였다

바람도 막아버리고, 전깃줄도 잘라버리고

2022-03-25 17:26

조회수 : 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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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네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버리고, 바람도 막아버리고, 전깃줄도 잘라버리고..(중략) 내가 그린 세상에선 누구나 자유로운 이성에 의해 살아갈 수 있다.

조세희 작가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간은 많은 것들을 사유하고, 탐닉한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절망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7번방의 선물> 촬영지로 유명한 '개미마을'. 마을 주변부로는 '어린왕자' 모습이 그려진 알록달록한 벽화가 눈에 띈다. 일명 '벽화마을'로도 불리는 그곳.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은 마지막 달동네 '개미마을'

실제 개미마을을 방문하기 전에는 '달동네'에 대해 완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문학작품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달동네'였다. 또, 매년 추운 겨울이 되면 '사랑의 연탄' 나눔 등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곤 했다.

왜 '저곳은 재개발을 하지 않을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왜 노력조차 하지 않을까' 등 편협하고 고리타분한 생각이 현존했다.

개미마을에 들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홍제역 2번 출구에서 도보로 23분 정도 걸어야 마을에 도달할 수 있었다. 평상시 버스나 택시를 애용했기에, 걷는 수고조차 사실 귀찮았다. 건너편에 버스가 있었지만, 배차 간격을 기다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걸으면서, 주변을 스케치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개미마을'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풍경이 너무 생생하다. 완공된 지 얼마 안 된 새 아파트, 상가, 학교 등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이런 배경을 뒤로 한채 '개미마을'을 향해 갔다.

'개미마을' 입구에는 '개미마을 약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약도에는 오밀조밀하게 인접한 주민들의 집이 그림으로 표시돼 있었다. 

개미마을은 50년 넘는 긴 세월의 풍파에 마을 곳곳엔 허물어져 가는 낡은 집과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한 집은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을 정도로 버려진 가스통, 가재기구 등이 산재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고 확언하고, 뒤돌아서는 순간 인기척이 났다. 그 인기척에 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다. 내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항상 옳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터라고 생각했던 그곳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그곳을 지나 집 뒷편에 '공용 화장실 축'이 무너지고 있다는 한 할머니 집을 방문했다. 화장실은 총 2칸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른편에 자리한 화장실은 흰 색 벽돌로 입구를 막아놓아서, 개방조차 할 수 없었다. 왼편에 자리한 화장실은 고무줄로 개폐 여부를 조절할 수 있었다. 화장실 구조는 수세식 변기 밑으로 좌식 변기가 있었다. 어두컴컴한 화장실은 조명조차 있지 않았다. 때문에, 육안으로 보기에도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화장실'은 많은 상징성을 내포한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마무리하는 곳. 그 작은 곳 하나조차도 이들에게 쉽게 허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고 좌절감을 느꼈다. 2년 동안 구청 관리과에 자신의 화장실 축이 무너진다고 말했지만, 개선된 건 하나도 없었다는 것.

'개미'처럼 열심히 산다고 해서 내가 바라는 삶=현실이 동일하다는 법은 없다. 다만 최소한의 삶 조차 보장받을 수 없다면 이렇게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할머니 집을 지나, 음악이 흘러나오는 한 집에 갔다. 그곳은 마당 오른쪽 구석에 라디오와 각종 영화 OST 등이 담긴 CD와 테이프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음악이 계속 흘러 나왔다. 마을의 고요한 분위기와 대조돼서 색다른 분위기라고 여겼다. 전망이 좋은 곳으로 이동하고 싶다는 아저씨를 따라, 개미마을 전경이 다 보이는 한 집으로향했다. 취재를 마치고, 나서려는 차에 '따뜻한 누룽지 한 뭉텅이'를 건네줬다. 

아저씨는 인터뷰 내내 그랬다. 그는 "재개발이 안 됐으면 좋겠어... 이렇게 서울 전경도 다 보이고, 한번도 도둑이 들지 않을 정도로 좋은 이곳인데..."라며 연신 마을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사실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런 현장이었다. 현장에 직접 가 내 눈에 담아오고 싶었다. 편안하게 선배들이 만든 뉴스를 통해서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접적인 경험이 울림을 준다. 몸은 천신만고 무거웠지만, 감사함을 느낄 수 있던 곳이었다.

다만 끝으로 바라는 건 1가지다. 지금은 초짜 기자이지만, 베테랑 기자가 됐을 때 다시 이곳을 방문하고 싶다. 그들의 삶을 묘사하는 '르포 기사'에만 머무르고 싶진 않다. 내가 쓰는 기사 한 줄이 이들의 삶에 변화를 줬으면 좋겠다.
  • 고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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