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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흰' 것에 담긴 삶과 죽음
한강 지음|난다 펴냄
입력 : 2016-05-31 오전 8:51:53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내 어머니가 낳은 첫 아기는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고 했다. 달떡처럼 얼굴이 흰 여자아이였다고 했다."
 
한강의 신작 소설 '흰' 중 '배내옷' 이야기는 이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얼굴이 흰 갓난아기의 죽음은 흰색이 가지는 깨끗함과 서늘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는 소설 전반에 걸쳐 흐르는 심상이기도 하다.
 
소설은 '나', '그녀', '모든 흰'이라는 세 개의 큰 줄기 아래 65개의 이야기들로 구성됐다. 작품 속 '나'는 지구 반대편 오래된 한 도시로 옮겨온 후에도 1944년 전쟁으로 90% 이상이 파괴됐다 재건된 '흰 도시'에서 두 시간의 짧은 인생을 살다 간 언니를 떠올린다. 실제로 한강은 지난 2014년 가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이 작품을 썼다. 
 
'나'는 도시의 공허 속에서 죽은 언니를 느끼며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더렵혀지더라도 흰 것을, 오직 흰 것을 건넬게."라고 말한다. 나의 이야기는 이내 '그녀'(언니)에게로 옮겨간다. 일이초만에 녹아버리는 눈송이, 빨래를 널다 실수로 떨어지는 손수건, 흰 나비의 날개에서 언니를 보며 언니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
 
"당신의 눈으로 바라볼 때 나는 다르게 보았다. 당신의 몸으로 걸을 때 나는 다르게 걸었다. 나는 당신에게 깨끗한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잔혹함, 슬픔, 절망, 더러움, 고통보다 먼저, 당신에게만은 깨끗한 것을 먼저. 그러나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작가는 흰 것에는 "아기의 배내옷이 수의가 되고 강보가 관이 되"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려있으면서도 "환부에 바를 흰 연고, 거기 덮을 흰 거즈"가 가지는 회복력과 생명력도 함께 있다고 말하며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 나직한 위로를 건넨다. 
 
또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개비."라고 읊조리며 삶과 죽음의 무게를 견뎌낼 것을 주문한다. 
 
짧은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심상을 이루는 소설 '흰'은 그 구성이 마치 시집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가는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고 말했다. 강보, 배내옷, 안개, 달떡, 성에, 서리, 소금, 구름, 연기, 침묵 등의 65개의 목록이 탄생했고 여기서 65개의 이야기가 나왔다. 각 소제목 아래 있는 이야기들은 각각 별개의 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의 형식과 관련해 정작 작가는 "새로운 형식에 대해 써보겠다고 생각해서 쓴 것이 아니라 그냥 썼다"고 덤덤하게 설명했다. "처음에는 흰 것에 대해 쓰니까 산문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 어떤 한 페이지는 시가 되기도 했다. 언니를 상상하면서 허구의 사람이 들어오자 점점 소설에 가까워졌다. 마지막에 끝내면서는 완전히 소설이 됐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시와 소설, 스토리와 이미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같은 글의 형식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말하는 작품 전반의 어조와도 묘한 조화를 이룬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원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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