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한 장의 명작,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말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어떻게 탄생하는가를 적고 싶었습니다."
장편소설 '붉은 소파(해냄)'를 쓴 조영주 작가는 30일 서울 광화문 인근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제12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붉은 소파'는 15년 전 살인사건으로 인해 딸을 잃은 사진작가 정석주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추리소설이다.
조영주 작가가 30일 서울 광화문 인근 식당에서 열린 '붉은 소파'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책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진/해냄
정석주는 19살에 찍은 사진으로 단숨에 스타작가, 거장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딸 정은혜가 살해당한 이후 그는 범인을 찾기 위해 15년간 붉은 소파를 가지고 전국을 떠돌며 사진을 찍는 기행을 벌인다. 딸이 죽음을 맞이한 붉은 소파에서 범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범인 잡기에 매달리면서 정석주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고, 제자인 이재혁은 정석주에게 경찰의 살인사건 현장 사진을 찍도록 강제로 맡긴다. 살인사건 사진 촬영으로 경찰 일을 도우며 정석주는 딸과 연관된 문제를 하나씩 다시 풀어나가게 된다.
작가는 범인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사진을 찍는 정석주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소설 속에서 천재 사진작가 유진 카쉬가 윈스턴 처칠의 본질을 드러낸 사진 '으르렁거리는 사자'를 단 2분만에 찍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는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 올지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에 살인자에 대한 (응징) 도구로 쓰는 사진 한 장이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그런 때입니다. 굉장히 많은 준비를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찍는 사진은 우연히 나옵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죠."
소설의 구상도 사진에서부터 출발했다. 막연히 사진에 대해서 쓰겠다고 생각하다 승용차 위에 올라가 뷰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오래된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사진을 실로 엮어 모자이크 형식으로 만든 구본창의 '태초에'가 가장 큰 영감을 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를 모티브로 소설 속에서 장석주는 범죄 현장을 모자이크 사진으로 찍기도 한다.
'붉은 소파'는 범죄 피해자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 속 주인공 정석주는 40년간 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람 인생에서 여자들이 죽어갑니다. (딸이 죽은 이후) 사진을 찍긴 찍는데 발표는 안하다가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자신의) 진짜 사진 한 장을 찍어요. 단순한 사진이 아니고 이 사람에게는 일종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이었던 겁니다. 범죄 피해자들이 하는 용서라는 게 단순한 용서가 아닌 스스로를 극복해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공소시효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도 던진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15~40년 전 사건들이다.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한 '태완이법'이 아니었다면 공소시효가 모두 끝났을 사건들이다. "처음부터 공소시효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사회파 추리소설이 많은 일본 쪽에서는 요코야마 히데오의 '제3의 시효'같은 책이 나오며 대놓고 문제를 이야기했고, 그래서 보다 빨리 공소시효가 없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쓰는 중간에 태완이법이 통과돼 (내용을) 다시 다 고쳐야 했죠."
한편 이번 책은 조영주 작가가 실명으로 발표하는 첫 책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필명 윤해환으로 '홈즈가 보낸 편지'와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