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소셜미디어 세대로 표현되는 밀레니얼이 전 세계의 소비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 미국의 미디어그룹 비아콤에 따르면 1980~2000년생인 이들 밀레니얼 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25억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세계 인구의 3분의1이 밀레니얼인 셈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올해를 기점으로 밀레니얼이 기존의 최대 인구집단이었던 베이비부머 세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밀레니얼의 경제력도 성장하고 있다. 오는 2017년이면 이들의 연간 구매력이 200억달러 수준으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됐으며, 평생 동안 10조달러 규모의 소비를 할 것으로 추정됐다. 밀레니얼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이들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생활양식이나 소비패턴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밀레니얼은 기존 세대와 달리 경험과 다양성을 중시한다. 브랜드 선정은 까다롭게 하고 디지털 세대인 만큼 공유경제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이 같은 이들의 특성은 주류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소규모 맥주 양조장 열풍이 불면서 맥주는 브루주아의 술이 됐으며 반대로 와인은 모든 사람을 위한 술이 됐다"고 말했다. 평범한 것을 싫어하는 밀레니얼들이 기존의 맥주를 외면하고 수제맥주를 찾는 한편 와인 시장에서도 거품이 빠지고 실용적인 소비 패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수제맥주' 열풍…기존 맥주업체 '비상'
맥주의 브루주아화는 수제맥주 열풍을 이끌었다. '수제·소규모 제작·주문제작·한정판' 등의 수식어를 좋아하는 밀레니얼의 특성이 맥주 선택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수제맥주 소비량은 최근 연평균 두자릿수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해리스폴과 민텔 등은 미국 내 수제맥주 소비량이 지난해에는 전년대비 11% 늘어난 196억달러, 올해는 22% 늘어난 240억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 2009년 전체 맥주시장의 4.5%만을 차지하던 수제맥주 비중은 올해 8.5%로 두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지역 양조장에 있는 맥주탭 모습. 사진/뉴시스=AP
수제맥주를 만들어내는 소규모 양조장의 숫자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현재 미국에서 영업 중인 소규모 양조장은 4000곳 수준으로 지난 1979년 44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약 25년만에 90배가 급증했다. 지난해에만 소규모 양조장이 24%, 맥주를 직접 양조해 파는 브루펍은 10%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포브스가 "앱은 잊어라. 미국 내 가장 뜨거운 스타트업은 맥주 양조장이다"고 말할 정도다. 수제맥주 열풍은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알테크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수제맥주 양조장은 1만곳이 넘는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년 전부터 이태원 경리단길이나 홍대, 상수동 등 젊은층이 많이 모이는 곳을 중심으로 수제맥주 판매점이 크게 늘었으며 신세계 등 대기업도 수제맥주 사업에 뛰어든 바 있다.
2015년 전세계 수제맥주 양조장 현황. 자료/ 알테크·스타티스타
밀레니얼의 수제맥주 소비가 늘어나는 이유는 이를 통해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다. 다양한 수제맥주를 마시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 것이다. 과거 세대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맥주를 찾기 위해 여러 종류의 맥주를 시도했던 것과는 다른 패턴이다. 미국의 소규모 비즈니스 전문 매체 스몰비즈트렌드는 "많은 소형 양조장이 테이스팅룸을 만들어 여러 맥주 샘플을 시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이 같은 방법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쌓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제맥주에는 상대적으로 '건강함'이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수제맥주는 기존 대형 맥주업체들이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맥주보다 원료의 생산지와 제작방식 등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수제맥주의 인기는 높아지고 있으나 기존 맥주는 외면당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조사 결과 24%의 주류 소비자가 내년 맥주 소비를 줄일 예정인 것으로 드러났다. 맥주를 더 마시겠다는 비율은 8%에 불과했다. 특히 맥주를 멀리하는 밀레니얼이 늘어나는 추세로 '맥주가 가장 선호하는 주류'라고 답한 밀레니얼의 비중은 지난 2012년 33%에서 올해 27.4%로 줄었다. 세계 최대 맥주회사인 안호이저부시(AB)인베브가 자체 조사한 결과 밀레니얼의 44%가 자사 맥주를 마셔본 경험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버드와이저는 전성기였던 지난 1988년에는 연간 5000만배럴의 맥주를 판매했으나 현재는 판매량이 1600만배럴로 줄었다. 경계감을 느낀 AB인베브는 최근 수익성 강화 차원에서 2위 업체인 영국의 사브밀러를 인수해 몸집을 불리기도 했다.
◇저가 와인 인기에 '와인 대중화' 성큼
밀레니얼들은 와인에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와이너리에서 직접 재배한 포도를 바탕으로 만드는 와인은 '수제' 및 '로컬'이라는 키워드를 대표하는 품목이기도 하다. 폭스비즈니스의 조사 결과 일주일에 한번 이상 와인을 마시는 소비자의 30%는 밀레니얼 세대였다. 나이 지긋한 중년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즐길 것이라는 통념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와인을 찾는 밀레니얼이 늘어나면서 타코 음식점 처럼 그 동안 와인을 취급하지 않던 대중형 음식점에서도 와인을 구비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와인을 고르는 기준도 기존 와인애호가들과는 달라졌다. 와인 칼럼니스트인 레티 티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밀레니얼 세대는 기술적으로 앞서가고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으며 그들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스토리를 원하는 세대"라며 와인을 고를 때에도 스토리를 찾고 주변 사람의 의견에 의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 와인산업 조사업체 와인오피니언이 지난 9월 밀레니얼과 X세대, 베이비부머세대 와인 소비자의 소비성향과 취향 등을 조사한 결과 이들 3 세대는 와인 평가와 관련해서 가장 큰 차이를 보였다. 밀레니얼은 100점 만점으로 와인에 점수를 매기는 시스템에 대해서 '이전 세대가 만들어낸 평가 시스템'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와인칼럼니스트의 의견을 신경쓴다는 비중은 17%, 와인 관련 뉴스레터를 구독한다는 비중은 22%에 불과했다. 가격적인 측면에서는 밀레니얼들은 보다 저렴한 와인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밀레니얼세대의 와인 소비자 10명중 8명은 한 병에 10~15달러 수준의 와인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밀레니얼은 높은 점수나 좋은 평가만 믿고 비싼 와인을 사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대신 그들은 와인에 담긴 스토리나 주변의 평가를 더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와인에 담긴 스토리는 와인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얼마나 친환경적인가에 대한 것으로 이를 고려해 와인 포장을 친환경 재질로 바꾸는 와이너리도 늘고 있다. 티그는 "밀레니얼의 반항적인 취향은 식당의 와인리스트에서 그간의 인기 와인인 나파 카르베네나 뉴질랜드 소비뇽블랑을 몰아내고 무명의 와인을 올려놓기도 했다"고 말했다.
와인업계는 밀레니얼을 잡기 위해 온라인 마케팅을 강화하는 추세다. 밀레니얼 와인 소비자의 61%는 와인을 마신 뒤 페이스북에 코멘트를 올리거나 다른 사람들이 올린 코멘트를 읽는 등 SNS상의 의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실제로 2013년산 카니버 샤베르네를 생산한 와이너리는 블로거들에게 브랜드 전략을 설명한 이메일과 함께 시음용 와인을 선물하며 온라인상에서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해당 와이너리는 더 많은 밀레니얼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와인에 어울리는 고기와 레시피 정보 등도 온라인을 통해 제공했다.
◇보드카·럼 등 증류주도 '프리미엄' 인기
밀레니얼들의 '수제' 사랑은 증류주 시장에도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가디언은 최근 "양조업자가 한 지역에서 재배한 곡물을 바탕으로 직접 술을 담가 판매하는 단일지역(single-estate)증류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단일지역 증류주를 만드는 양조장은 곡물 재배와 발표, 맥아제조(몰팅), 증류, 숙성, 병 담기, 라벨링 등 거의 모든 증류주 제조 단계를 직접 한다.
양을 불리기 위해 다른 곡주를 섞지 않는 이들의 양조 방식이 와인이나 수제맥주처럼 술에 일종의 스토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영국의 단일지역증류주 제조업체 체이스양조는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증류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신경쓰지 않았으나 좋은 음식을 쫓는 사람이 생겨나면서 이제는 술에 대해서도 기원을 묻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회계법인 UHY해커영에 따르면 부티끄형 양조장이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영국 정부에 제출된 양조장 설립 신청은 65건으로 전년동기 20건에 비해 3배 넘게 증가했다.
수제 증류주 열풍에 편승해 대형 증류주 제조업체들도 프리미엄 제품 출시에 나서고 있다. 앱솔루트보드카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페르노리카는 단일지역 제조품 프리미엄라인인 '앱솔루트엘릭스'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 기존 핵심 제품인 럼의 판매 부진에 시달리는 바카디도 올초 단일지역생산 럼을 새로 출시한 바 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