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필들에게 인기가 높은 서울 이수역 예술영화전용관 아트나인은 배급사 엣나인 소유의 극장이다. 보통 배급사가 극장까지 소유하는 것을 두고 수직계열화라고 부르며 원칙적으로는 권장하는 방법이 아니다. 자본이 큰 회사가 이럴 경우, 영화산업에서 독점적 위치를 점하기 쉽기 때문이다. CJ와 CGV가 그런 경우이며 과거 할리우드의 메이저 회사들이 미 전역에 자사 계열 극장을 거느리고 있을 때가 폐해의 절정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1948년 일명 파라마운트법을 만들어 제작과 배급, 극장 운영사업을 오랫동안 분리해 왔으나 법 제정 70년 후인 2020년 사실상 이 법률을 폐지했다. 더욱이 OTT 시대가 가속화되는 이즈음 수직계열 독점을 반대하는 건 약간 ‘어이가 상실된’ 일이 됐다. 특히 예술영화의 경우 수입과 제작 배급, 극장 운영을 일원화해서라도 제발 좀 더 많은 관객을 모으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각설하고, 술 원고에 수직계열화는 웬열? 엣나인–아트나인 계열에 또 하나의 법인이 있으니 그게 바로 ‘잇(Eat)나인’이다. 아트나인은 테라스의 통유리를 통해 사당동과 그 너머의 관악산까지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형 레스토랑인 잇나인을 운영하는 것이 자랑거리이다. 예술영화관을 운영하면서도 천생의 금수저 출신(?)인 대표이사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조망 하나는 서울 시내 극장 중 가장 압권이다. 정면에는 물경 4백 인치의 LED를 설치하고 있다.
잇나인에서는 종종 크고 작은 파티가 열린다. 얼마 전 <여행과 나날>의 6만 관객 돌파를 기념해 몇몇이 모였으며 거기서 술과 음식을 먹었는데 그 비용을 누가 냈는지는 밝힐 수 없다. 추후 문제가 되면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생각이다. 잇나인 셰프 정의진의 음식을 소개하면 위 사진과 같다. 왼쪽부터 슈림프 토마토 알리오 올리오 해장 파스타와 트러플 슈림프 카나페 그리고 사과 브루스게타이다. 아래 사진은 청어알 리코타치즈 카나페이다. 이날 웰컴 와인으로 나온 것은 서브미션 화이트와인이었으며, 두 번째 병은 배우 하정우가 좋아하는 것으로 입소문이 난 화이트와인이었다. 나 같은 싸구려 술꾼에게는 평소 그냥저냥 그림의 떡이었으나 술안주로는 적격의 음식들이었고 그 덕에 와인 대신 생맥주를 4잔이나 마셨다. 오랜만에 풍족하고 맛있었다.
배우 하정우가 좋아하는 것으로 입소문이 난 화이트와인과 청어알 리코타치즈 카나페.(사진=오동진)
잇나인에는 원칙적으로 소주를 반입할 수 없는데 그건 굉장히 잘하는 영업방침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트나인에서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누벨바그> 같은 영화를 보고 하정우 ‘픽’ 와인을 하우스와인으로 한잔 정도 먹으면 괜찮을 것이다. 슈림프 토마토 알리오 올리오 어쩌구는 개인 취향으로 알아서 하면 된다. 먹는 것보다는 역시 술이 더 좋은 법이고 정셰프는 이 하우스와인을 가득 따라 줄 것이다.
하정우가 좋아한다고 소문이 나서 품절 대란을 겪고 있다는 와인 얘기를 한 것은 프랜시스 F. 코폴라 와인을 얘기하기 위한 ‘밑밥’이다. 코폴라는 전설의 <대부 1, 2, 3>을 만들었으며 <지옥의 묵시록>으로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상영에 상영을 거듭하고 부가 판권을 팔고 또 팔아 어마어마한 수입을 올리고 있는 감독이다. 그의 자산 가치는 4억 달러, 거의 6천억 원에 이른다. 이런 사람들은 도대체 현금을 갖고 다니기는 할까. 그가 갖고 다니는 신용카드의 한도액은 얼마나 될까.
지난 2024년 칸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사진=뉴시스)
그가 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자신의 이름으로 와이너리를 만들었는데 <대부1>(1972)의 성공 직후인 1975년에 땅을 산 것을 보니 혹시 처음엔 땅 투기에 관심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한국식 천박한 의심도 든다. 어쨌든 주식회사 ‘코폴라 와이너리’는 2006년에 공식 설립됐고 지금은 와인 좀 먹네 하는 사람들도 이 와인을 ‘픽’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코폴라 와이너리 회사 자체는 매각했고 처음에 시작했던 나파밸리 포도 농장만 직접 소유 운영하며 코폴라 프리미엄 와인만큼은 생산하고 있다. 코폴라 와인 중에 영화적인 것은 ‘디렉터스 컷’과 ‘소피아’이다. ‘디렉터스 컷’은 카베르네 소비뇽이 일반적이다. 소피아는 스파클링이다. 가볍고 화사해서 술꾼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디렉터스 컷’이 낫다.
하정우가 선택한 와인의 특징은 싸고 맛있고 코스트코 같은 대중 마트에서도 구매 가능하다는 것에 있다. 커클랜드 시그니처 티 포인트 소비뇽 블랑 같은 것은 1만500원으로 살 수 있기에 이걸 매장에서 3~4만 원에 마시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생맥 6잔 값이다. 젠장) 그래서 하우스와인으로 시키고 가득 달라고 하면 좋다. 이게 훨씬 경제적이다.
와인은 기본적으로 위험한 술이다. 특히 화이트와인은 가볍고 달달하고 맛까지 있어서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어느새 ‘한 방에 훅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니 발견조차 못 하고 침대에 쓰러져 잠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 와인을 자꾸 권하는 남자 혹은 여자는 다 ‘엉큼한 목적’이 있을 수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한동안 별별 짓(?)을 다하며 살았는데 전주영화제 기간에 ‘라이징 스타 어워드’라는 것을 했었고 이 후원사가 모엣샹동이어서 비교적 럭셔리한 파티를 열었었다. 여기에 온 영화계 후배들에게 절대 벌컥벌컥 마시지 말라고 수십 번 경고했으나 그걸 무시한 영화인들이 파티장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많이 목격했었다. 신인 여배우로 ‘라이징 스타 어워드’에서 상을 탄 사람은 김고은, 정은채, 고아성 등이다. 지금은 다들 스타가 돼 있다. 이들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드레스가 불편했을 것이다.
와이너리 영화로는 숨겨진 작품인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사진=티캐스트)
와이너리를 소재로 한 영화를 얘기하면, 영화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하지 않고 그래도 영화를 면밀히 들여다볼 줄 아는 정도의 사람들은 대체로 <어느 멋진 순간>(2006)을 떠올릴 것이다. 거장 감독 리들리 스콧이 ‘한쪽 눈 감고 한쪽 다리를 깨금발로 짚고 다니면서 만든 듯한’, 그저 그런 영화이다. 러셀 크로가 지금처럼 괴물로 변하기 전 비교적 반듯한 몸매일 때 찍은 작품이다. 런던의 금융투자 전문가가 삼촌이 물려 준 프랑스 프로방스의 와이너리를 처분하러 왔다가 눌러앉는 얘기이다. 이 남자가 눌러앉게 되는 건 마리옹 코티야르 같은 여자를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평론가급이라고 생각한다면 와이너리 영화로는 숨겨진 작품인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2017) 정도는 봐야 한다. 이 영화를 수입한 영화사 ‘티캐스트’는 영화가 너무 안 돼서, 한동안 직원들이 와인 한 병 사 마시기 힘든 처지가 됐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와이너리를 떠안게 된 삼 남매가 와인을 만들며 갈등을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 나간다는, 역시 다소 쓰잘 데 없는 얘기이다. 그 넓은 땅을 상속받는 인간들이 영화 속에서는 왜 그리 많은지 원.
와인은, 화이트이든 레드이든 한 병 이상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에릭 클랩튼의 노래 <원더풀 투나잇>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카 키(car keys)를 줄 때 헤드에이크(headache)가 와서 그랬다고 얘기하는 것도 다 그놈의 와인 탓이다. 와인 한 병이든 맥주 몇 잔이든, 위스키 몇 잔이든 술은 속도이다. 현명한 알코올 중독자는 술을 천천히 마신다. 그걸 늘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