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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연

통상당국 WTO 개도국 포기 시사 "심각한 타격 없어"

기준 충족 한국, 미국과 대결 부담…대만·브라질·UAE·싱가포르 대열 합류

2019-09-04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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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내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전망이다.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을 경우 자유무역체제에서 보호받아온 국내 농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거란 우려와 달리 개도국 여부에 관계 없이 농업분야에 적용되는 기존 협정문안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게 통상당국의 설명이다. WTO 중심의 다자무역체제 내 추가 개방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점 역시 작용하고 있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4일 세종정부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부의 오해와 달리 WTO 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도 현재 누리는 혜택은 거의 변함이 없다"며 "미국이 중국과 미국을 겨냥하기 위해 압박하는 상황에서 개도국 포기에 따른 피해가 없음에도 유지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지난 2017년 12월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WTO 11차 각료회의가 열리는 아르헨티나로 떠나기 전 'WTO 쌀수입 전면 철페, WTO해체, 농민의 길 투쟁단 출정식'을 열고 있다. 사진/전국농민회총연맹
 
다만 이 관계자는 "(개도국 포기에 대해) 정부 내 결정된 바는 없다"면서도 "통상 담당자로서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부처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걸 느끼는 만큼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부처 간 협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며 개도국 포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개도국 지위 포기시 가장 우려돼온 농업부문의 추가 개방은 발생하지 않는다. 한국은 국내 농업 보호를 위해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부터 개도국을 선언한 이후 지난 2004년까지 한국에 부여된 관세와 보조금 감축 이행 의무를 모두 끝냈다. WTO 회원국 스스로 선언하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더라도 한국의 이행계획서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추가 관세 인하 등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300억원 가량의 수출보조금의 경우 다른 방법으로 전환해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개도국 포기에 따른 피해가 크지 않은 반면 미국의 압박 요구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미국이 개도국 지위를 들고 나온 것은 WTO 체제 하에 진행 중인 수산물 협정 때문이다. 수산자원 남획을 막기 위해 어획 보조금을 줄인다는 원칙에 WTO 회원국들이 합의하고 빠르게 협상을 진행 중인 가운데 중국은 개도국이라는 이유로 예외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어획 비중이 가장 큰 중국이 보조금을 유지할 경우 협정이 사실상 무의미해진다는 점에서 미국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미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G20 회원국 △세계은행(WB)에서 분류한 고소득국가 △세계 상품무역 비중 0.5% 이상 국가 등 4가지 기준에 해당하는 국가들은 WTO 개도국 지위를 내려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편지를 해당 30여개국에 보내고 WTO에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고, 7월 말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이 문제를 90일 내에 해결하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이에 대만, 브라질, 아랍에미리트(UAE), 싱가포르가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은 상태다.
 
문제는 한국이 미국이 제시한 4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유일한 개도국이라는 점이다. 이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의도는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이 개도국 혜택을 내려놓게 만들자는 것이지만 중국은 4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한국을 걸고 넘어질 수밖에 없다"며 "미국 대 중국 구도가 미국 대 한국 구도로 전환될 위험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개도국 문제 해결 시한으로 제시한 10월 23일에 가까워지면 미국이 언급한 기준을 충족하는 30여 개도국의 상당수는 포기 선언을 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WTO 체제 아래 추가적인 다자 협상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다자무역체제상 추가적인 농업개방 우려도 없을 거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우르과이 라운드를 통해 형성된 WTO를 대체할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사실상 멈춘 가운데 자유무역협정(FTA)이 새로운 무역질서를 재편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열린 DDA 협상 논의시 나왔던 관세율을 기준으로 개도국 지위 포기시 시장 개방 우려가 제기돼왔지만 현재 중단된 상태다. 특히 미국이 중국과 인도의 개도국 지위를 인정하는 협상을 거부한다고 공언하고 있는 만큼 한국이 개도국이라고 주장할 협상도 존재하지 않을 전망이다.
 
세종=강명연 기자 unsai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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