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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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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했던 '인간 노무현'의 63년

'부림사건' 만나며 인권변호사 길로…기로마다 '정공법' 택한 승부사

2019-05-2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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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63년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변호사와 인권운동가, 정치인, 대통령을 거치는 동안 마주했던 각종 사건들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역사적 장면들로 남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재단 상임이사 시절이던 지난 2010년 주위 사람들과 함께 펴낸 노 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 서문에서 "(노 전 대통령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앞에 당당한 사람이 되려고 했던 사람"이라며 "삶의 기록 곳곳에서 전력을 다해 싸우고 끝없이 번민하는 '인간 노무현'을 만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은 어린시절부터 이른바 '대가 센' 인물이었다. 진영중학교 2학년 진급을 앞둔 1960년 2월, 학교에서 열린 이승만 대통령 생일 기념 글짓기 대회에서 동급생들과 함께 백지를 제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3·15 대통령 선거를 앞둔 불법 선거운동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 일로 1주일 정학 처분을 받았다. 부산상고 졸업 후 농협 입사시험에 낙방하고, 첫 직장도 그만 둔 그는 고시공부에 매달린다.
 
 
1975년 사법고시(17회)에 합격해 대전지법 판사로 임용됐으나 1978년 5월 변호사로 개업한다. 당시 관심사는 '부의 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때 부산지역에서 돈 잘버는 변호사로 알려졌던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1981년 9월 부림사건이었다. 구치소에서 피고인 접견 후 고문사실을 확인한 노 전 대통령은 '분노가 치밀어오르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1982년에는 당시 변호사였던 문 대통령과 공동 사무실을 열고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변호, 정법회(민변 모태) 창립 참여 등을 거치며 인권운동의 길을 걷는다. 1987년 9월 대우조선 노동자 고 이석규씨 유족을 돕다가 '3자 개입' 협의로 구속되고 변호사 업무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의 정계입문 제의를 받고 수락, 5공화국 실세였던 허삼수 후보가 출마한 부산 동구에 출마해 당선된다. 그 해 5공 청문회는 대중들이 노 전 대통령을 인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을 상대로 특유의 공격적이면서 논리적인 질문으로 '청문회 스타'가 됐다.
 
1990년 1월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민자당)이 탄생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합류를 거부했다. 1992년 3월 14대 총선에 '꼬마 민주당' 후보로 부산에 출마해 허삼수 후보와 재대결을 벌였지만 패했으며 1995년 6월 부산시장 선거에도 낙선했다. 1998년 7월 서울 종로구 보궐선거를 통해 15대 국회에 다시 입성했지만 이듬해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부산출마를 선언한다. 2000년 4월 16대 총선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 낙선했지만 이는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다.
 
2001년 해양수산부 장관에서 물러나 16대 대선에 나선 초기만 해도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한국 정치사상 최초로 도입된 국민참여경선제를 통해 이른바 '이인제 대세론'을 깨고 민주당 대선후보가 됐으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대통령에 오른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이끌 정부 명칭을 '참여정부'로, 국정목표는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잘사는 균형발전,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로 각각 정했다. 이를 토대로 남북관계 개선과 각종 사회개혁에 나섰지만 쉽지 않았고 훗날 "내 운명은 새 시대의 첫차가 아닌 구 시대의 막차가 되는 것이었다"고 토로했다. 퇴임 후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돌아가 생태농업 등에 나선 와중에 이명박정부 당시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을 받으며 고초를 겪다 결국 2019년 5월23일 오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9년 4월30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의 금품수수 의혹 관련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 앞에 대기 중인 서울행 버스에 오르는 모습.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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