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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정

(토마토칼럼)애매할 땐 하는 겁니다

2016-05-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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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불구경. 정부의 외국환업무 규제 완화에도 꿈쩍 않는 금융투자업계를 보며 이런 속담이 떠올랐다. 원하고 기다렸던 외국환업무 규제 완화였건만 막상 받아드니 실감이 나지 않아서일까. 속내를 들여다보니 이유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였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서란다.
 
정부는 3월22일 비은행 금융사의 외국환업무 범위를 확대했다. 은행만 할 수 있었던 외환업무 상당 부문을 증권사도 할 수 있게 했다. '규정한 것 외에 모든 것을 불법'으로 보는 포지티브 규제에서 '불법이 아닌 모든 것을 합법'으로 보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한 것이다. 규정이 세세한 포지티브 규제와 달리 네거티브 규제는 단서가 없다. 최소한만 남기고 다 풀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달 초 외국환업무 규제 완화를 통해 금투업계가 어떤 업무를 확대할지 궁금했고 수요조사를 겸한 의견수렴에 나섰다. 규제와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움직이던 업계는 혼란스럽다. 오랜 시간 수동적 시스템에 갇혀 지내온 만큼 확 풀린 규제 완화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업계의 표정이 생각만큼 밝지 않은 이유다. 
 
실제 외국환업무 변경 신청에 나선 증권사도 매우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무 확대에 대한 기대감보다 우려가 더 커 보인다. 채권·외환·상품을 담당하는 한 대형증권사 FICC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 모호한 상황에서 '이거 하겠다, 저거 하겠다' 일을 벌였다가 후에 안 된다고 하면 그 리스크는 누가 떠안는 거냐"고 되물었다. 금융정책상 은행과 보험에 비해 차별받으며 '서자' 취급 받는 증권사에 깐깐한 요건을 들이댈 게 분명하다고 했다. 관성은 뚫기 힘들지 않겠냐는 얘기다. 이번 수요조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가 거부할 게 뻔한데 억지할 필요 있겠냐고 말한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없다.", "가이드라인이 미흡하다.", "해외투자에 장애가 되는 규제가 여전하고 알맹이가 없다"는 업계의 주장도 일견 이해는 된다. 정부는 이번 규제완화에서 업계가 간절히 바란 투자목적 이외의 외화 송금이나 환전과 같은 기본적인 업무를 제한했다. 외화 예금, 외화지급·수령·추심 등도 금지했다. 최근 정부에 환전업무와 미래 해외상품 투자를 위한 대기자금 환전과 환매조건부채권(RP) 판매 환전, 저축보험 환전업무 등을 허용해줄 것을 당부했지만 이 또한 긍정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결제 리스크 관리를 우선할 수밖에 없는 기재부 입장에서 전향적으로 봐줄 지도 의문이다. "금융투자회사의 환전 업무 확대와 외화 RP 확대 등 해외투자에 장애가 되는 규제들을 과감히 푸는 게 우선돼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저금리·저성장 시대 해외자산 투자 확대를 통한 소득수지 개선은 시급하고 또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자본시장의 외국환업무 확대는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의 협회장 선거 당시 공약이기도 하다. 적극적인 추진 끝에 받아든 규제완화라는 걸 업계도 모를리 없다. 애매할 땐 하는 것이 유리하다. 업계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우는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차현정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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