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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용산전자상가의 오늘)몰락

2015-05-21 11:00

조회수 : 18,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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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자상가의 화려한 시절은 갔다. 상가의 전체 매출액은 한때 10조원에 달했으나, 지난 2004년 무렵에는 6조원 이하로 추락했다. 하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 폭도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더 심각한 것은 서울시, 용산구, 통계청, 국세청 등 관련 지자체와 기관 모두 제대로 된 지표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용산 전자상가는 거리를 지나는 자동차 외에는 한산한 모습이다. (사진=뉴스토마토)
 
다만, 건물주의 임대소득 변화를 보면 침체 수준을 일부 확인할 수 있다. 취재진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전자랜드 임대료는 한때 1층 10평 점포 기준으로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50만원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반토막이 났다. 선인상가 임대료도 과거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으며, 최근 8년간 관리비는 동결 상태다.  
 
임대료가 하락해도 용산을 떠나는 상인들의 발길은 이어지고 있다. 나진상가는 임대료를 최근 10년간 20% 낮췄으나, 같은 기간 점포수는 650곳에서 100곳이나 줄었다. 전자랜드의 상주인구 수는 최대 3000명 수준에서 1000명 감소했다.
 
건물주는 점포를 대형화해 공실을 메웠고, 상인들은 직원 수를 줄였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매장 운영을 병행하는 곳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김민우 전자랜드 대표는 "개별 점포의 매출액을 알기 어렵지만, 온라인과 병행하는 점포도 계약을 해지하는 걸 보면 온라인도 잘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평일 오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점포들이 문을 닫았다.
  
몰락 원인으로는 ▲경쟁상권 대두 ▲전자상거래 부상 ▲시설·서비스 낙후 등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특히 전자제품을 파는 대형매장이 전국 곳곳에 생기면서 용산만의 매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테크노마트가 강변과 신도림에 자리 잡았고, 백화점·이마트·하이마트 등 대형매장이 소비자의 발길을 잡았다. 전자상가 턱밑에도 대형 쇼핑몰이 들어섰다. 현대산업개발이 운영하는 아이파크몰이 지난 2004년 용산역에 문을 열었다. 연면적 28만㎡(8만4700평)에 백화점과 영화관, 마트, 대형 식당가 등을 갖췄다. 지하철역과 연결돼 접근성도 좋다. 이제는 호텔신라와 손잡고 면세점 입점이 추진될 정도로 대규모 투자가 단행되고 있다. 터미널상가 부지에는 호텔이 건립되고 있다.
 
이를 지켜만 봐야 하는 상인들의 심정을 착잡하다. 접근성 등 상대적으로 유동인구 유입 요인이 적은 데다, 시설 또한 80~90년대 수준으로 낙후된 것을 잘 알고 있다. 용산 전자상가 상인들은 "시설의 겉모습만 봐도 양극화를 느낄 수 있다"고 토로한다.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에 자영업자들이 밀려나는 모습과 꼭 닮았다는 지적이다.
 
온라인 쇼핑의 부상과 '다나와' 등 가격비교 사이트의 등장은 용산 몰락을 가속화 시켰다. 소비자는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가격을 비교하고 최저가를 요구했다. 상인은 이런 요구에 응하는 순간 손해를 보게 된다고 말한다. 박리다매가 통하려면 많이 팔아야 하지만, 용산에 오는 손님이 줄어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다.
 
용산이 주름잡던 저가 조립형 PC시장 또한 노트북과 태블릿 등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컴퓨터·전자제품이 인기를 끄는 시대는 이미 과거가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 거래액에서 컴퓨터·전자제품의 비중은 지난 2001년 46.3%에 달했으나, 2013년에는 여행·의류 등에 밀리면서 18.6%로 급감했다.
 
건물주들의 소극적 투자에 따른 시설 낙후와 '용팔이'로 불리는 상술이 자초한 몰락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부 상인들이 전자상가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인 용산역까지 나타나 호객했고, 물건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팔고는 권리금을 챙겨 점포를 팔고 떠나는 사례도 빈번했다. 
 
이에 대해 상인들은 "전자제품 매장을 70%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는 80년대 규제 탓에 건물 개보수는 수익성 차원에서 무리"라며 "손님이 많을 때는 전용 신용카드나 전용 브랜드 제품도 선보였고 자체 인력으로 호객행위를 막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럴 여력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과거의 추억만을 먹고 사는 방치된 괴물로 남겨져 있다.
 
김동훈 기자 donggool@etomato.com
 
◇상당수의 매출이 온라인으로 옮겨간 현재의 용산전자상가. 많은 점포들이 창고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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