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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脫디지털' 체험기)②'내비' 없이 살기..낯설고도 익숙한 도로와 마주하다

2014-07-15 10:57

조회수 : 3,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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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정기종기자] “내비게이션이 또 말썽이네, 확 버려버리던지 해야지 이걸.”
 
간혹 내비게이션이 작동 오류를 일으키면 홧김에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법한 말입니다. 하지만 과연 복잡한 도심에서 내비게이션 없이 목적지를 온전하게 찾아갈 수 있는 운전자가 몇이나 될까요. 과연 찾아갈 수는 있을까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조사에 따른 대한민국의 추정 내비게이션 보급률은 60%. 여기에 이통3사에서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사용자를 포함하면 90%가 넘는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을 사용합니다. 차량 구입 단계부터 내비게이션은 당연한 옵션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죠.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 내비게이션은 운전자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내비게이션이 없이 운전을 한다면 어떨까요? 
 
저는 지난주 일주일간(6~12일)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하기’를 해봤습니다. 단말기형 제품은 물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일절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체험은 평소에 익숙한 출퇴근길부터 처음가보는 임의의 목적지까지 다양하게 시도했습니다.
 
◇출발부터 다음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좌불안석이었다.
 
◇ 출발부터 우왕좌왕..“내가 알던 그 길이 아니네”
 
먼저 익숙한 출퇴근 길을 먼저 체험해봤습니다. 평소 가장 자주 출근하는 곳은 서울 여의도에 있는 LG트윈타워 기자실인데요, 영등포집에서 이곳까지는 약 20분이 걸립니다.
 
비록 내비게이션이 없다 해도 수개월간 주 2~3회 정도 출근해 익숙한 길이라고 생각했던 여유는 출발한지 5분여 만에 초조함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경로와 신호는 물론 방향전환을 위해 미리 위치해야하는 차선의 위치까지 어느 하나 미리 생각해서 대비할 수 있는 요소가 드물었습니다.
 
어렴풋한 기억과 도로상의 이정표를 보며 겨우겨우 찾아가봤지만 좌회전을 해야 하는 사거리에서 미리 좌측 차선에 붙어있지 않아 본의 아니게 끼어들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또 신호 정지 시에 어디로 가야할지 헷갈려 망설이다가 바뀐 신호를 미처 보지 못하고 뒷 차량에게 경적 세례를 받는 일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좌회전을 위해 좌측 차선에 미리 붙어야 했지만, 직진차선에서 한참을 서있거나(왼쪽) 불안한 마음에 접착지 메모지에 경로를 적어두고 운전해야 했다.(오른쪽)
 
이런 상황은 저를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평소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편안한 마음으로 그저 따르기만 했던 스스로의 무성의를 한탄하게 만들었습니다.
 
평소처럼 느긋하게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는 여유도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도로며 신호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했기 때문이죠. 운전경력 3년이 무색할 만큼 거리와 도로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이동경로를 접착식 메모지에 적어 운전대에 붙여놓고 주행해가며, 겨우 LG트윈타워에 도착하기 까지 걸린 시간은 40분여. 평소 경로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에도 시간은 2배 가까이 걸렸습니다.
 
◇초행길·야간주행은 ‘공포’ 그 자체
 
그나마 어렴풋한 기억이라도 더듬을 수 있었던 출퇴근 길은 양호한 편이었습니다. 초행길과 야간 주행은 그야말로 악몽이었습니다.
 
주말을 이용해 충무로에 살고 있는 친구집을 방문하기로 하고 가장 먼저해야 했던 일은 면허 취득 후 처음으로 운전자용 지도를 펼쳐보는 일이었습니다.
 
◇목적지인 지인의 집이 위치한 서울시 중구 교통정보지도. 솔직히, 봐도 전혀 모르겠다.
 
실제 도로상이 아닌 지면에 펼쳐진 서울시내 도로는 학창시절 지리시간에 배우던 지도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자세히 봐도 모르기 때문에 일단 출발. 도로상 표지판과 주요 지하철역을 이정표 삼아 어렵사리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서울 중심지인 종로와 명동일대 넓은 차선과 수많은 교차로에 들어서자 불안감과 혼란스러움은 더욱 커졌습니다. 기사를 위해 촬영하고자 했던 사진을 찍을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특히 친구집을 찾아가기 위해 주택가로 들어서자, 주소만 입력하면 알아서 방향을 척척 알려주던 내비게이션이 더욱 간절해지더군요. 그렇게 주택가를 한참이나 배회하고서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어렵게 찾아간 친구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돌아가야 할 길이 더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환한 대낮에도 도로상에서 헤매기 바빴는데, 돌아오는 길은 더욱 오리무중이었죠.
 
길도 모를뿐더러 시야도 제한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야간 시간대가 비교적 선선하고, 에어컨까지 켜두었지만, 운전하는 내내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없는 상태에서 시야가 제한된 야간주행은 '공포' 그 자체였다.
 
내비게이션을 사용할 경우 약 30분이 걸리는 거리를 1시간을 훌쩍 넘겨 운전했고, 집에 도착한 뒤 완전히 녹초가 돼버렸습니다. 다음 경로에 대해 사전에 인지하고 대비하거나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미리 알고 운전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체험이 끝난 후에도 당분간 운전을 하고 싶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운전대를 잡는 대신 평소에 잘 타지 않던 택시에 탔습니다. 웬만한 목적지는 내비게이션 없이 이동한다는 운전경력 20년의 택시 기사와 자연스럽게 체험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좋지, 내비게이션. 그런데 결국 그거 없음 바보잖아. 배운 사람들이 운전하면서 다 바보가 된다고. 익숙한 길은 가끔씩 끄고 다니면서 경치도 좀 보고 해두는 게 좋아.” 중년의 기사분이 남긴 조언입니다.
 
여러분은 내비게이션 없이 어디까지 갈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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