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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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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꽃이라고요?"..고단한 부행장

2013-08-06 16:55

조회수 : 7,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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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지난달 초에 임기가 끝난 모 은행 부행장이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지면서 은행권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겉으로 볼 때는 부행장이  화려한 '은행의 꽃'이지만 은행장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2인자인 만큼 남모를 고충이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일반인들이 아는 것과 달리 행장 아래의 부행장 자리는 한 자리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에야 은행의 본부 조직 슬림화로 부행장 수가 많이 줄었지만, 전략기획·영업추진·여신심사·리스크관리·기업금융·글로벌 등 사업 부문별로 최소 5명 이상이다.
 
◇평균 50대 중반..하루회의만 최소 4건
 
4대 시중은행인 국민(7명), 우리(11명), 신한(8명), 하나은행(5명)의 부행장 수(부행장보 제외)는 모두 31명이다. 전체 행원 수에 비할 때는 0.1%도 안된다. 그렇다보니 부행장이 관할하는 직원만해도 1000여명을 훨씬 넘는다.
 
모 은행 영업기획부문 부행장은 "회의하랴 영업일선 챙기랴,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라며 "부행장의 위치에 서니 업무상 관련된 술자리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토로했다.
 
다른 부행장은 "자칫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할때는 한달에 며칠 밖에 못 쉰다"며 "주말에도 각종 접대나 부서 단합대회, 각종 세미나 등으로 집에서 쉬는 날은 손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부행장의 평균 연령은 56세로 이들은 공식적으로 하루 회의를 평균 3회 정도 한다. 여기에 부서장 회의까지 하면 평균 4회가 될 때도 있다.
 
최근 부행장 수를 10명에서 7명으로 줄인 국민은행 부행장의 평균 연령은 55세, 신한은행의 부행장들 평균 연령 54세로 이들의 회의 참석 수는 주 10회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중한 음주와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치는 부행장들도 많다. 그렇다고 업무가 바쁘다는 이유로 은행장들이 휴가를 포기하거나 반납하는 판국에 본인 휴가를 챙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 부행장은 "행장이 보름짜리 휴가를 가는 외국계와 달리 국내 은행은 사정이 다르다"며 "직원 사이에서는 '부행장이 되면 회사에 야전침대를 갖다놓고 살겠다'는 사람도 있는데 사정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타박했다.
 
◇내부 승진이 대세.."2년제 비정규직" 자조섞인 저평가도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다수 행원들이 가슴에 품는 현실적인 자리는 지점장"이라며 "그러니 부행장 같은 임원은 얼마나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이겠나. 웬만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오르기 어려운 자리다"고 말했다.
 
부행장들의 학력은 대부분 대졸 학력 소지자였다. 31명의 부행장 가운데 고졸 부행장은 각각 국민은행 1명, 우리은행 1명 뿐이었다. 하나은행은 전원 대졸자였으며, 신한은행에서는 부행장보 2명이 고졸 출신이다.
 
경력을 보면 내부 출신이 대세다. 재경부 출신이나 교수 등 외부에서 영입된 부행장이 다수 있었던 수년 전과는 대비된다. 국민, 우리, 신한, 하나은행 모두 내부에서 입신양명해 부행장에 오른 케이스다.
 
또 이들 부행장은 기본적으로 재직기간 본점에서 근무를 했지만 지점장으로 영업통인 부행장들도 상당수에 달했다. 물론 부행장들은 임기 2년에 중임도 가능하지만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에 하루하루 정신없이 보내야한다.
 
은행장이 바뀌는 때에는 재신임을 묻는 차원에서 임기와 상관없이 사표를 제출한다. 
 
한 부행장은 "본부장에서 부행장 자리에 올라오면 '이제 은행에서 나가야 할 차례가 왔다'는 자조섞인 농담도 들었다"며 "2년마다 계약이 끝나는 비정규직인 셈"이라고 자평했다.
 
◇억대 연봉에 자회사 CEO로도 기회
 
그렇다고 부행장이 고되고 힘들기만 한 자리는 아니다. 일단 본부장이나 일반 부장급에 비해 예우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연봉이 기본적으로 억대인데다가 경영성과에 따른 성과급 등을 추가로 받는다.
 
임기중 승용차도 오피러스, 제네시스 등 중대형 세단 차량이 기사와 함께 제공되며 전문비서가 딸린 33㎡(10평형)의 집무실에서 근무한다.
 
또한 업무능력을 인정받으면 다른 금융기관이나 기업체 임원으로 스카웃돼 가는 경우도 많으며, 임기를 마치면 자회사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회사 핵심보직으로 갔다가 능력을 인정받아 다시 은행장 후보로 거론되는 경우도 많다.
 
`은행의 꽃`이 은행장이 아닌 이유다.
 
  • 이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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