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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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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범종입니다.
(이범종의 미리 크리스마스)할렘의 검은 건반, 마일즈 모랄레스

2023-12-20 16:21

조회수 : 1,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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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뉴욕의 전철.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한 고등학생이 TV 화면에 들어섭니다. 이 소년의 이름은 마일즈 모랄레스. 1년 전 그는 우연히 실험체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와 마찬가지로 천장에 붙는 능력을 갖게 됐죠. 뉴욕 시장이자 오스코프사 대표인 노먼 오스본의 비밀 연구를 취재하던 <데일리 뷰글> 기자 메리 제인(MJ)이 자신도 모르게 거미를 데려왔고, 이 거미가 노숙인 쉼터 '피스트'에서 일하던 마일즈를 물었다가 맞아 죽은 겁니다. 이후 마일즈는 피터 앞에서 거미처럼 천장에 붙어서 새 능력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고, 이를 본 피터도 천장에 붙은 채 마주보고 웃었습니다.
 
그로부터 일년이 지났습니다. 인섬니악 게임즈의 소니 플레이스테이션(PS)4·5 게임 '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뉴욕에서 흑인 청년 마일즈가 한 명의 스파이더맨으로 굳건히 일어서는 여정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마일즈 모랄레스가 해외 출장을 앞둔 피터 파커 앞에서 뉴욕을 지켜내겠다고 맹세한다. (사진=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 실행 화면)
 
'마일즈 모랄레스'는 올해 출시된 '마블 스파이더맨 2'와 1편 사이를 잇는 작품으로 2020년 11월 출시됐는데요. 마일즈가 한 명의 인간이자 영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크리스마스 목도리 선물처럼 포근하게 짜냈습니다.
 
우선 마일즈는 시작부터 연출에 공들인 모습을 보입니다. 게임 메인메뉴 화면이 전철 내부 모습이고, 마일즈가 화면 왼쪽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서며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보는데요. 카메라는 그를 네 가지 각도로 비추며 그가 주인공임을 강조합니다. 시작 버튼을 누르면 열차가 125번가에 도착합니다. 게임의 메인메뉴 자체를 도입부로 만든 연출이,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경험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이제 브루클린 출신 마일즈의 할렘 정착기가 마일즈의 귀에 덮인 헤드폰 속 비트와 함께 힙하고 합하게 시작됩니다. 둠둠 탁!
 
선배 스파이더맨 피터는 거꾸로 매달려 커피를 마신다. 이를 본 마일즈가 신기해 한다. (사진='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 실행 화면)
 
어머니 심부름으로 슈퍼마켓에 가려던 마일즈는 피터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코뿔소 갑옷을 입은 악당 '라이노'의 교도소 이감을 지원하러 갑니다. 하지만 마일즈의 실수로 경찰 헬리콥터가 추락하고 컨테이너 속 라이너와 죄수들이 탈출하는데요. 우여곡절 끝에 사태를 수습한 뒤에는 피터의 해외 출장 소식을 듣고, 홀로 뉴욕을 지킬 수 있을지 걱정합니다. 전작 '마블 스파이더맨' 결말에서 피터는 MJ와 다시 사귀는데요. 피터가 몇 주 간 MJ와 함께 해외 출장을 가게 된 게 계기입니다. 사진 기자로요.
 
마일즈는 피터 없는 뉴욕에서 대기업 '록슨 에너지'가 할렘에 운반한 '실험적 연료' 누폼의 위험성을 파헤치고, 한편으론 폭력으로 록슨을 무너뜨리려는 친구 핀 메이슨의 폭주도 막아야 합니다.
 
이 게임엔 재밌는 부가 임무도 많은데요. 마일즈는 친구 '강케 리'의 도움으로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 앱을 만들어 시민들의 고충과 범죄 해결에 나서게 됩니다.
 
마일즈만의 개성을 살리는 요소도 눈과 귀를 즐겁게 합니다. 스파이디의 힙한 여정에 음악이 한몫 하는데요. 전작에서 피터 파커가 웹 스윙 할 때 웅장한 관현악이 흘러나오지만, 마일즈가 날 때는 '둠둠 탁! 타다닥 탁탁!' 하며 힙하고 합한 연말의 스파이디를 즐길 수 있습니다. 마일즈 부모님과 삼촌 간 불화의 원인을 밝히는 추가 임무에서, 마일즈는 삼촌과 돌아가신 아빠의 추억이 깃든 장소를 찾아 여러 소리를 녹음하게 됩니다. 나중에 이 모든 소리를 합치면 한 곡의 음악과 함께 가족사의 한 부분이 완성됩니다.
 
마일즈네 집 거실에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 실행 화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한껏 느낄 수 있어요.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마일즈의 집안과 뉴욕 시내 곳곳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영웅물 서사의 중심인 성장에 대한 연출도 본작 구호인 '더 강해져라. 너 자신이 돼라(Be Greater. Be Yourself)'에 걸맞습니다. 1편의 구호는 그냥 '더 강해져라'였는데요. '너 자신이 돼라'는 할렘에 사는 흑인이자 또 한 명의 스파이더맨으로 당당히 거듭나는 마일즈를 위한 문장입니다. 새로운 의상을 입은 마일즈의 뒤에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벽 글씨가 나타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자신이 도와준 소녀로부터 목도리 선물을 받는 장면,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소셜 미디어에서 칭찬이 늘어나는 점 등도 눈여겨 봐야 합니다.
 
(사진 위) 새 스파이더맨 옷을 입은 마일즈 뒤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벽 글씨가 드러나고 있다. (사진 아래) 언어 장애를 가진 소녀가 마일즈 목에 목도리를 두르며 감사 표시를 하고 있다. (사진='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 실행 화면)
 
마일즈의 팔로워 수 변화를 보는 재미도 있어요. 게임 초반에는 마일즈의 팔로워가 25만5492명이었지만, 작품의 결말을 볼 때쯤엔 1370만명으로 폭증해 있습니다. 새로운 스파이더에 대해 반신반의하던 온라인 여론도, 긍정적으로 돌아선 모습을 확인하며 기분 좋게 엔드 콘텐츠(결말 감상 이후 즐기는 부가 요소)를 즐길 수 있지요.
 
처음엔 공중에서 팔다리를 허우적대고 착지도 버거워하던 마일즈가, 나중엔 능숙하게 날고 안정적으로 착지하는 변화를 지켜보는 즐거움도 놓칠 수 없습니다.
 
기분 좋은 변화가 또 있는데요. 이걸 알려면 고양이 찾는 부가 임무를 꼭 해보셔야 합니다. 슈퍼마켓 주인이 잃어버린 고양이 '스파이더맨(주인이 고양이 이름을 이렇게 지었음)'을 찾는 겁니다. 이 고양이를 찾아 가게 주인의 마음을 얻으면 나중에 고양이 스파이더맨을 배낭에 태우고 돌아다닐 수 있어요. 가끔 배낭 밖으로 고개 내민 고양이의 행동이 다양하고 귀엽습니다. 적을 처치할 때 고양이도 마지막 한 방을 날려줍니다 :)
 
귀여운 고양이와 함께 연말 뉴욕 여행을 하고 싶다면 고양이 '스파이더맨' 찾기를 꼭 하자. (사진='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 실행 화면)
 
제작사 인섬니악은 메인메뉴에서 도입부로 자연스레 연결한 연출처럼, 결말 후 엔드 콘텐츠가 이어지는 장면도 성의 있게 만들었는데요. 추가 영상과 클로징 크레딧이 끝나면, 소중한 인연을 가슴에 묻고 앞으로 나아가는 마일즈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엔드 콘텐츠에 자연스레 돌입하기 때문입니다.
 
마일즈 모랄레스는 이렇게 새 삶의 터전인 할렘의 검은 건반이 되어, 흰 건반인 피터 파커와 함께 뉴욕의 일상을 감미롭게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그 화음은 올해 출시된 '마블 스파이더맨 2'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이 있는데 아직 이 게임을 안 해보셨다면, 이번 연말에는 마일즈와 함께 뉴욕을 날아보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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