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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노동자들)⑥"산업안전 지출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이학영 "안전에 대한 기업 투자 유인해야…소규모 사업장 지원도 마련"

2023-12-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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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병호·신태현 기자] <뉴스토마토>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사망사고를 줄이는 대안을 찾고자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학영 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 권미정 '김용균재단' 운영위원장 등은 정부와 기업이 안전에 대해 충분히 투자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사람 목숨이 걸린 산업안전에 관해 돈을 쓰는 건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학영 "안전에 투자해야. 돈을 버리는 게 아니라 투자다"
 
이학영 민주당 의원은 40분간 진행된 인터뷰 내내 기업이 안전에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의원은 "기업은 안전에 대한 투자가 회사 가치를 높이고, 상품의 소비를 더 늘리는 영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산업재해를 막는 데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 이건 돈을 버리는 게 아니고 투자"라고 말했습니다.
 
이 의원은 잇따라 끼임 사고가 일어난 SPC그룹 공장을 방문한 경험도 꺼냈습니다. 그는 "지난 8월에 갔는데 가루를 반죽하는 기계는 뚜껑을 덮지도 않고, 반죽이 잘 안 되면 기계 안에 손을 넣어서 직접 반죽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끌려들어 가 죽는다"며 "노동·안전에 투자 안 하면 절대 사고를 줄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학영 민주당 의원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또 기업이 안전에 투자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의지를 갖고 법과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의원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추가 유예할 게 아니라 이 법을 적용할 경우 50인 미만 사업장이 입는 부담에 대해서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장기 저리 대출이나 정책자금 지원, 법인세 감면이나 보험료 할인 등 인센티브, 정부 계약 때 가산점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의원은 근로감독 제도의 개선에도 대해서도 대안을 주문했습니다. 권한을 늘려야 한다는 겁니다. 그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근로감독관 숫자는 평균적으로 노동자 1만명당 1명인데, 우리나라는 노동자 8300명당 1명"이라면서 "우리나라는 근로감독관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아니라 그들의 권한이 부족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시스템과 역량을 검토해서 부족하면 여기에 대한 투자도 늘려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산재보험 대상에서 빠진 학습지 교사, 배달 노동자 등을 산재보험 대상에 포함하고, 정부에서 지원도 해서 산재보험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라면서 "건강보험처럼 산재보험 처리도 속도를 높이는 게 필요한데, 의사가 환자를 진찰한 뒤 산재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병원에서 청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은주 "산재 예방·보상을 총괄할 '산업안전보건청' 필요"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산재 사고, 하청 노동자 사망이 빈번한 건설업과 철강업, 소규모 사업장 등에 대한 제도 개선을 촉구했습니다. 그는 "건설업은 특성상 최저가 낙찰 경쟁인데, 낙찰을 받은 하청 사업주는 당연히 공사비를 낙찰가보다 더 줄여야 이윤이 남는 구조"라면서 "다단계 하청을 통해 재하도급이 반복될수록 밑으로 내려가는 하도급 업주는 자기 몫을 떼고 계속 이익을 남겨야 하니까 안전에 대한 투자를 줄이게 되고 산재가 생기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입찰 때 안전 비용까지 다 포함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우리나라 철강업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업체가 상당수"라며 "안전을 개선한 신규 설비투자를 안 하고 있는데, 노후된 설비를 바꾸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또 "대기업은 예산과 인력을 확보할 여력이 있는데 소규모 사업장은 그렇지 않다"며 "국가 재정과 행정력이 적극적으로 투입돼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 의원은 현재 중대재해 관련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일부 은폐의혹이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습니다. 그는 "현행 산재 보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산재를 은폐하는 게 너무 많은 것"이라며 "보상 절차도 느리고 관련 제도도 엄격해서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프거나 죽는 사람들이 제때 보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산재가 많이 발생하면 보험료를 가중하는 방식의 현재 징수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단일한 요율로 가야 한다"며 "보험료를 많이 내니까 당연히 은폐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이 의원은 산재를 예방하고 은폐를 막는 한편 중대재해처벌법 도입에 따른 시대적 변화를 반영해 산재 행정 업무를 고도화·전문화한 '산업안전보건청'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 의원은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위해 지난 2021년 3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산업안전을 고용노동부 1개 부서 차원에서 다룹니다. 그런데 영국에선 보건안전청(HSE), 미국에선 산업안전보건청(OSHA)을 만들어 산재 예방과 보상 등 관련 행정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중입니다. 우리나라도 산업안전보건청을 설치해 고용부 외청으로 삼고, 산재 관련 행정의 실질적 권한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의원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했는데, 당시 매일 확진자 수를 공개하고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들이 브리팡을 할 만큼 국민 생명을 중요하게 여겼다"며 "이제라도 산재 사고를 제대로 관리하자는 취지"라고 했습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2년 전 발의했는데, 국회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다"며 "심지어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에서도 한번도 안 다뤘다"라고 토로했습니다.
 
권미정 "중대재해처벌법 현실화 위한 '정부 의지'가 중요" 
 
권미정 김용균재단 운영위원장은 "중대재해처벌법 현실화엔 정부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추가 유예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부는 우리 사회에서 지금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 제대로 판단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산재를 막으려면 정부 의지가 가장 중요하고, 법을 솜방망이로 만들지 말라는 겁니다. 
 
권 위원장을 만난 지난 7일 오후는 하필 대법원이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한 직후였습니다. 서부발전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노동자였던 고 김용균씨는 2018년 12월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가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그런데 사법부는 원청인 서부발전의 최고 책임자에겐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법을 솜방망이로 만들지 말라는 권 위원장의 말엔 사법부에 대한 단단한 분노가 묻어났습니다. 
 
권미정 김용균재단 운영위원장이 7일 서울 금천구 김용균재단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권 위원장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국회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을 만든 취지라는 게 있는데, 그 취지를 따른다면 이번 판결은 나올 수는 없다고 본다"면서 "사법부는 '김용균 노동자가 원청과 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식으로 계약 관계를 형식적으로 봤는데, 원·하청 관계를 실질이 아니라 형식주의 논리로만 계속 보면 하청 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특수고용 노동자의 죽음은 실제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다"라고 우려했습니다. 
 
이어 "산재로 인해 사망자가 생기는 건 어쨌든 기업에 대한 일인데 우리 사회에선 사법부에게 기업을 심판할 권한을 준 것이고, 사법부에는 그 죽음을 용인하느냐 아니냐가 달린 것"이라며 "사법부가 계속 이렇게 형식논리로 판결을 하면 그런 태도는 기업들에게 '이 정도까지는 해도 된다'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연히 산재와 사망자는 줄지 않고, 죽음의 외주화는 더 확장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권 위원장은 법과 제도를 개선할 필요성에 대해선 "중대재해처벌법에 5인 미만 사업장이 아예 적용이 안된 건 말이 안 된다"며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원청 책임에 대해서 명확하게 물어야 할 것도 있고, 위험 때문에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나 노동조합에게 불이익을 준 기업을 처벌하는 조항도 들어가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권 위원장은 정부와 정치권이 노동자 50명 미만인 사업장이나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건설 공사에 대해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추가 유예키로 하는 것을 강하게 성토했습니다. 그는 "솔직히 기업에게 '당신들은 착한 기업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건 다소 어렵다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제재 수단들이 있어야 하는데, 윤석열정부는 그간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에게 너무 과하다고 계속 이야기해 왔었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죽음을 막는 법'으로서 역할을 하는 걸 정부가 막았다고 생각한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최병호·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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