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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환

눈물도 말랐다…피 맺힌 '한'만 남아

(이태원 참사 1년) 이정민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인터뷰

2023-10-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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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장성환 기자] "딸이 제 곁에 없다는 생각을 아직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 우리 가족과 함께 있는 것 같아요."
 
이정민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지난 25일 서울 중구 을지로 서울광장에 있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만난 이 위원장의 목소리는 이태원 참사 이후 지난 1년간 잦은 울음으로 눈물마저 메말라 버린 듯 덤덤했습니다.
 
이태원 찾은 딸 참사 휘말려…"아직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해"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인근은 핼로윈을 맞아 들뜬 분위기로 가득 찼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수년간 제대로 된 축제를 즐기지 못한 상황에서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이후 첫 핼로윈이다 보니 수많은 인파가 이태원을 방문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날 오후 10시께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은 수많은 행인들로 병목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사람들끼리 밀고 밀리는 과정에서 뒤엉키고 넘어지면서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약혼자와 이태원을 찾은 이 위원장의 딸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 사고로 196명이 다치고, 이 위원장 딸을 포함해 159명이 숨졌습니다.
 
이 위원장은 "딸이 외향적이고 활발한 성격에 의지가 강한 아이였다"며 "가족끼리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 때 늘 앞장서서 주도적으로 나서는 집안의 활력소 같은 존재"였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 이후 가족의 일상이 무너졌습니다. 그는 "그 사고 이후 우리 가족은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날 그 시간에 멈춰있다"고 호소했습니다.
 
건축 분야에서 일하던 이 위원장은 딸의 죽음 이후 모든 일을 그만두고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활동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태원 참사의 진상이 규명돼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으나 갈 길이 아직 멀어 보입니다.
 
이정민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지난 25일 서울 중구 을지로 서울광장에 있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뉴스토마토>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사진 = 장성환 기자)
 
정부, 참사 원인 밝히기보다 희생자 탓만…길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어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 초기에 정부가 그 원인을 밝히고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참사의 잘못을 희생자들 탓으로만 돌리려 했고, 결국 길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이 지난 1년간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분주히 노력했지만 녹록지 않았습니다. 국회에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국정조사가 이뤄졌지만 여야 정쟁과 짧은 조사 기간으로 인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위원장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우 이태원 참사의 핵심 인물로 국회가 탄핵 소추를 추진해 가결됐지만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며 "당시 유가족들이 헌법재판소에 나가 증언하겠다고 했는데 거부당했다. 우리 이야기를 듣지 않은 채 탄핵 여부를 판단한 건 부적절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구속된 채 재판을 받아오다 지난 6월 보석으로 풀려나 업무에 복귀한 박희영 용산구청장을 두고는 "구청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하기보다 본인 입지나 정치적 행보를 위한 모습만 보여왔다"고 꼬집었습니다.
 
검찰의 기소 여부조차 결정되지 않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 대해서는 "김 청장의 구속 수사가 마땅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건 윗선으로의 수사를 막겠다는 현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정민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지난 25일 서울 중구 을지로 서울광장에 있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뉴스토마토>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사진은 이 위원장이 합동분향소에 놓인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사진 = 장성환 기자)
 
"재난 방지 시스템 갖추는 것보다 사람의 의지가 더 중요"
 
그는 이태원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사고와 재난을 막을 수 있는 체계를 잘 갖추더라도 결국 그 체계를 운용하는 사람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므로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않으면 잘못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겨야 한다는 겁니다.
 
"매년 하던 핼로윈 축제인데 작년에만 이러한 참사가 일어난 것만 봐도 시스템보다는 사람이 중요한겁니다. 관리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과 직무를 다하고자 노력만 했어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그날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해당 법은 지난 6월 국회 본회의에서 신속 처리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8월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으나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입니다.
 
"서울의 길거리에서 이렇게 많은 젊은 청년들이 희생당한 참사인데 이렇게 어영부영 덮이면 안 됩니다. 올해 안에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특히 이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 비협조적인 여당을 겨냥했습니다.
 
"여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강하게 반대하면 할수록 참사가 정부의 잘못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정부의 꼭두각시가 돼서 충성 맹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고치도록 하는 게 국회의원의 자세이자 국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이정민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지난 25일 서울 중구 을지로 서울광장에 있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뉴스토마토>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사진은 이 위원장이 합동분향소에서 향을 피우고 있는 모습.(사진 = 장성환 기자)
 
"안전한 나라 되기 위해 참사 잊지 않고 기억해야"
 
정부를 향해서도 국민과 유가족에게 잘못한 부분을 솔직히 털어놔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는 "현 정부가 이태원 참사의 진상에 대해 솔직하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유가족들이 더 큰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자신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 채 살아가길 원하고 있지 않은 만큼 정부가 잘못한 부분과 고칠 부분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해야 국민들도 정부를 믿고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위원장은 국민들이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길 바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 참사를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그래야 우리 사회와 정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위기의 순간마다 참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고민하고 노력하게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기성세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해 꿈 많은 청춘들이 그 뜻을 펼쳐보지도 못한 게 너무 미안한거죠. 이 죽음이 불명예스럽지 않도록, 헛되지 않도록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물을겁니다."
 
이정민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지난 25일 서울 중구 을지로 서울광장에 있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뉴스토마토>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사진은 이 위원장이 합동분향소 옆 추모 공간에 붙어있는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를 보고 있는 모습.(사진 = 장성환 기자)
 
장성환 기자 newsman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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