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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물컵' 채울 필요성 느끼기나 할까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과거사 입장 고수·‘피해자 배상’ 참여기업도 전무

2023-10-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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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초당파 의원 모임인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들이 추계 예대제(例大祭·제사) 이틀째인 지난 18일 오전 도쿄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참배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트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물컵에 절반 이상이 찼다. 앞으로 이어질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
 
여당에서도 "미진한 것은 사실" 지적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3월 6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배상 문제와 관련 '제3자 변제' 방안을 최종 해법안으로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의 책임과 호응을 상징하는 ‘물컵론’의 시작입니다. 그로부터 반 년도 더 지난 지금, 이 비유를 쓴 박 장관은 적잖이 당황스러울 듯합니다. 여당인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까지도 지난 16일 도쿄 주일한국대사관에 대한 외교통일위 국정감사 자리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이 ‘우리가 물잔의 반을 채웠으니 일본이 나머지를 채워라’라고 했지만, 미진한 것은 사실"이라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일본 정부가 독도를 자국 영토로 왜곡하고,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관련 내용을 삭제한 초등학교 교과서 승인을 규탄하면서 이를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외통위는 이미 지난 6월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 합의로 결의안을 의결했지만, 규탄 대상을 일본 교과서뿐 아니라 일본 정부 공식 문서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반영해 새로 결의안을 만들었는데, 11월 본회의에서 최종 확정될 예정입니다.
 
국회에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여야 합의가 이뤄지는 경우가 극히 드문데, 여야 모두 한일관계 개선의 최대 걸림돌인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기시다, 군국주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 봉납…총리 취임 후 7번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 등이 합사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신사에 17일 공물을 봉납했습니다. 그는 총리 이전 즉, 각료 등으로 일할 때는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거나 공물을 봉납한 적이 없지만, 2021년 10월 총리직에 오른 뒤 공물을 봉납하기 시작해, 이번에 7번째 봉납이라고 합니다. 그는 전임인 고 아베 총리에 비해 온건파로 분류됩니다. 총리가 되면, 공물 봉납 관행을 거스르기 어려운 일본의 우경화된 현실을 보여줍니다.
 
"일본에서는 전후 태어난 세대가 이제 인구의 8할을 넘고 있습니다. 그 전쟁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의 자녀나 손자, 그리고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2015년 8월 14일, 당시 총리는 ‘전후 70년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945년 종전 이후 세대는 사죄할 필요 없다"고 전 세계에 선언한 겁니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 내각에서 4년 7개월이라는 장수 외무상으로 근무했습니다. 아베 총리가 건강 문제로 전격 사임한 뒤, 약 1년간 재임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에 이어 '아베 파벌'의 도움으로 '아베 3기'라는 평가 속에서 총리에 올랐습니다.
 
일본 사회의 확실한 우경화 흐름에 기시다 총리의 이력을 겹쳐보면, 기시다정부가 한일 과거사 문제에 변화를 보일 거라고 예상하기는 애초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예상대로…제3자 변제 기부?미래 파트너십 기금에 일본 기업 참여 전무
 
과거사 문제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3월 박진 장관이 발표한 ‘제3자 변제’안의 핵심은 한국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금을 대신 변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부는 여기에 일본 기업들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애드벌룬을 뛰었으나 태평양전쟁 당시 가해기업은 물론 다른 일본 기업들도 현재까지 전혀 참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역시도 예상한 대로입니다. 일본 기업들로서는 여기에 참여할 경우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때문에 일본 정부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 기업들이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 지배적인 예상이었습니다.
 
혹시나 했던 한일 청년들을 위한 ‘미래파트너십 기금’도 한국의 전경련과 일본이 게이단렌이 각각 10억원을 내놓은 것을 제외하면, 일본 기업들의 추가 출연은 역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뉴델리 마하트마 간디 추모공원인 라즈가트를 방문해 헌화에 앞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런 상황에서도 윤덕민 주일 대사는 "기시다 총리가 여러 국내 상황 속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와 진정성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하는가 하면,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에 대해선 "일본 기업, 게이단렌과 접촉하고 있으나 일본 쪽에선 관련 기업이 참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위기"이라며 "전경련에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서고 게이단렌과 논의를 하고 있는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일본 정부를 '방어'해주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문제에 자기 일처럼 함께 방어해주는 것도 모자라, 우리 세금을 18억 8000만원이나 들여 ‘안전성 홍보’까지 나섰습니다.
 
양금덕 할머니 서훈 문제에, 정부 '대일 관계 고려' 속내 밝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정부 서훈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는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한 정부 해법이 이행되는 상황이기에 그런 측면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이전까지 "절차상 문제"라고만 하던 것과 달리, 대일관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솔직하게' 밝힌 겁니다. 게다가 강제동원 배상금의 '제3자 변제'를 위한 공탁을 법원마다 건건이 기각당하자, 정부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까지 선임해 항고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부담해야 할 소송비용까지 정부가 부담하면서 변제를 밀어붙이고 있는 겁니다.
 
이쯤 되면, 기시다 정부가 '물컵의 나머지 절반'을 채워야 할 필요성에 대해 생각할 필요나 있을까요? '밀당'이 기본인 외교의 세계에서 이렇게 아낌없이 다 내주고 있는데 말입니다.
 
애초부터 이 정부에게는 일본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그리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중국, 북한이라는 적에 맞서기 위한 한미일 협력이라는 ‘대의’로 포장해 ‘한일 과거사’를 꽁꽁 덮어버리겠다는 의도였고, 국민은 이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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