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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식의 K-국방)"도쿄 왕궁을 폭격하겠다"

항공독립운동 뿌리 중시…공군 임정 윌로우스 비행학교 개설

2023-10-17 06:00

조회수 :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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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은 국립항공박물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항공독립운동정신과 항공선각자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한인비행학교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비행학교 기념조형물 제막식을 연다고 지난 2020년 7월 밝혔다. 사진은 1920년 한인비행학교 개교 당시 촬영된 학생비행사들과 Standard J-1 항공기. (사진=뉴시스)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부근에 국립항공박물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항공 선각자들이 항공독립운동을 통해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고 투쟁한 역사를 이곳에 가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공군 창건 과정도 이해하기 쉽죠.
 
1919년 3·1운동 이후 성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전쟁 전략의 하나로 비행대를 편성하기로 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습니다. 비행기가 새로운 전투 수단으로 눈길을 끌었죠. 독립전쟁에서 작은 전력으로 적을 강하게 타격하려면 공군력이 쓸모 있겠네요. 노백린 임정 군무총장(국방부 장관)은 "앞으로의 승리는 하늘을 지배하는 자에게 있다"('독립신문' 1919년 4월17일치)고 주장했죠. 임시정부는 비행기 구매 자금을 마련해보도록 노백린을 미국으로 보냅니다.
 
노백린은 미국에서 한인 청년들이 이미 비행술을 배우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노백린은 임시정부에 보고하고 미국에 자체 비행학교를 세우기로 합니다. 이때 김종림이라는 34살 청년 사업가가 나섭니다. 김종림은 1차 대전 당시 캘리포니아 윌로우스에서 군량미 수출용으로 쌀농사를 지어 큰돈을 벌었습니다. '백미 대왕(Rice King)'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였죠. 김종림은 비행장 부지 임차와 활주로 건설·비행기 구매·학교 운영비를 도맡았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만들어냅니다.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연습용 비행기 3대를 확보해 '조선항공대'라는 뜻으로 KAC 표지를 그려 넣었습니다. 학생들은 "도쿄로 날아가 왕궁을 폭격하겠다"는 각오로 훈련했습니다. 학교는 1920년 제1회 졸업생 25명을 비롯해 모두 40여명의 비행사를 길러냈습니다. 여기서 배운 박희성과 이용근은 192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병 참위(오늘날 소위)로 임명됐죠.
 
미국 서부 큰 홍수로 한인 농업이 타격을 입자 후원이 끊어졌고 비행학교는 1년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의미는 컸죠.
 
임시정부 요인 안창호는 비행기를 구입하고 조종사를 구하려고 미국, 필리핀, 러시아, 중국인들과 교섭을 벌입니다. "이는 비행기를 사용하여 국내 민심을 격발하고 장래 국내의 대폭발을 일으키기 위함"이라고 안창호는 1920년 1월 일기에 적었는데요. 윌로우스 비행학교가 도쿄 폭격을 목표로 삼았다면, 안창호는 비행기로 전단을 뿌려 독립운동 소식을 국내에 알리려고 했습니다. 자금 사정으로 실행하진 못했죠.
 
임시정부는 중국 항공학교에 조선 청년들을 추천해 비행사 양성 교육을 받도록 했습니다. 조선 최초 여성 비행사인 권기옥을 포함해 서왈보·최용덕·장지일·이영무·김은제·이병운 등이 교육받았죠. 일부는 소련 모스크바 항공학교로 갔습니다. 권기옥은 중국 공군 조종사로 항일전쟁에 참여했고 광복군에서 활동했으며 해방 뒤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일했죠. 미국과 중국, 소련 비행학교에서 교육받고 그 나라 공군에 입대해 항일전쟁에 참여한 항공독립운동가 24명의 인생 내력을 국립항공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해방 뒤 항공인들은 미 군정과 협의해 조선경비대 항공부대를 만듭니다. 이 부대가 공군으로 발전하죠. 최용덕 장군을 비롯한 7명의 항공 경력자가 공군 창설 주역으로 활동했는데요. 출신과 경력을 보면 좌장인 최용덕 장군과 이영무가 중국 공군과 광복군에서 활동했습니다. 박범집·김정렬·이근석·김영환은 일본 육군 항공대 경력자입니다. 장덕창은 일본 민간 비행학교에서 배우고 민항기 조종사로 활동했죠.
 
광복군이든 일본군이든 다양한 경력자가 공군에 참여한 사실이 문제 될 건 없습니다. 공군 조직이 어떤 역사와 정신을 소중히 여기느냐가 중요하겠죠.
 
국립항공박물관 옥외 전시장에는 '리멤버 윌로우스'라는 조형물이 있습니다. 2020년 윌로우스 비행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아 이 학교가 공군의 효시임을 공군본부 차원에서 공식 선언하려고 조형물을 세웠습니다.
 
오늘날 공군본부 홈페이지를 보면 임시정부가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세웠으며 안창호가 비행기 구입을 시도했고, 임시정부 차원에서 중국과 소련 비행학교에서 우리 청년들이 위탁 교육을 받도록 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제에 맞서 싸운 항공독립운동이 공군의 뿌리임을 정확히 밝힙니다.
 
해군본부 홈페이지를 볼까요. 통일신라 시대 해상왕 장보고와 조선 시대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소개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를 소개하고 그 아들 손원일 제독 중심으로 오늘날 해군을 창설한 과정을 기록합니다.
 
육군본부 홈페이지를 보면 궁금증이 생깁니다. "해방 후 미 군정 하 1946년 1월 15일 남조선 국방경비대가 창설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국방경비대는 육군으로 개칭되어 국군에 편입되었으며…". 육군의 기원을 미 군정이 한 일에서 찾고 있죠. 대한제국 말기 항일 의병에서부터 신흥무관학교 운영, 봉오동 청산리 전투, 독립군과 광복군에 이르기까지 빛나는 독립전쟁 역사가 있는데도, 이 부분은 기록하지 않아요.
 
육군이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공군과 해군이 독립전쟁 역사를 중시하고 기리는데 육군만 빠질 이유가 없을 겁니다. 외국 군대들도 국가 주권을 되찾기 위한 전쟁 역사를 소중히 여깁니다. 독립전쟁 전통을 기억하면 육군 구성원들도 자부심이 커지겠죠.
 
■필자 소개 / 박창식 / 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와 소통, 말과 글로 행복해지는 기술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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