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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이 19일 오랜만에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재임 당시 북한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합의한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인데요. 문 전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에서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겨냥해 “파탄 난 지금의 남북 관계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착잡하기 짝이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뜻깊은 날이지만 정작 정치권에서는 화두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역사적인 평양공동선언
문재인 정부는 2018년에만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했습니다. 9.19 평양공동선언은 그 대미를 장식한 결과물인데요. 이 공동선언문에는 ▲비무장지대 등 대치지역에서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 ▲상호호혜와 공리공영 바탕으로 교류 협력 확대 및 민족경제 균형발전 ▲이산가족 문제 근본적 해결을 위한 인도적 협력 ▲다양한 분야의 교류협력 적극 추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터전 조성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방문 등이 담겨 있습니다.☞관련기사
트럼프의 변심, 휘청이는 한반도
문재인 정부는 이후 북미정상회담까지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열린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이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결렬되면서 남북관계도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엔 개성공단 연락사무소가 폭파됐고,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재개되면서 남북관계는 공동선언 이전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문 전 대통령은 UN기조연설에서 거듭 종전선언을 제안하며 양측의 긴장관계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2022년 5월 10일 퇴임하며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과제는 미완으로 남게 됐습니다.
달라진 국제정세
신냉전의 입구에 선 한반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전 세계에 민주주의의 물결이 일렁였지만, 2010년 이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퇴행하며 러시아는 푸틴의 독재체제로, 중국 역시 시진핑 독재체제로 넘어갔고, 민주화 바람이 불었던 중앙아시아와 중동, 북아프리카 국가들 역시 예외없이 민주화 체제 구축에 실패하고 독재나 권위주의 체제로 넘어갔습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을 뒤흔들었고,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깨트리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대북정책에 보다 강경한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것입니다.
‘군사합의 파기해야’
새 정부, 새 남북관계
5주년을 맞은 9.19 평양공동선언은 이제 잊혀진 역사가 되고 있습니다. 전에 없던 위기를 맞기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의 남북관계를 ‘굴종외교’로 보는 여권의 인식이 강하게 반영되며 군사합의 파기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볼까요?
-2022년 1월: "(북한으로부터) 마하 5 이상의 미사일이 발사되면, 거기에 핵을 탑재했다고 하면 우리 수도권에 도달해 대량 살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분 이내입니다. 요격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 조짐이 보일 때 우리 3축 체제의 가장 앞에 있는 킬체인이라고 하는 선제타격밖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고요."☞관련기사
-2022년 10월: "민주주의라면 좌우가 다 있을 수 있으니 협치할 수 있습니다. 진보도 좋고 좌파도 다 좋습니다. 그러나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아니고 좌파도 아닙니다. 반민주, 반헌법세력입니다."☞관련기사
-2023년 1월: "북한이 다시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남북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관련기사
-2023년 6월: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들은 핵 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하여 유엔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습니다."☞관련기사
-2023년 8월: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 조작, 선전 선동으로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관련기사
-2023년 9월: “지금 우리 자유의 자유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세력, 그리고 반국가세력은 반일감정을 선동하고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북한은 ‘북러회담’까지
정부여당은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강경책을 주장합니다. 북한은 군사합의 이후 현재까지 약 17차례 합의를 위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북러회담까지 진행했죠. 특히 군사분야에 중점을 둔 회담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인데요.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러시아 우주기지와 항공기 공장, 태평양함대 기지 등을 방문했습니다. 정부여당은 이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 사항이라며 북한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군사력 증강 가능성이 커지면서 안보 위협, 나아가 군사합의 파기를 주장할 명분이 생긴 셈입니다.☞관련기사
말로는 합의 지키자는 민주당
다지난 정권에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군사합의 무산 기조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합의사항들을 지킴으로써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것인데요.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18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반도 평화를 향한 이어달리기는 계속돼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정부는 진보와 보수를 넘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결단을 내렸습니다”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남북합의를 사수하기 위한 목소리는 별로 없는 게 현실입니다. ☞관련기사
이재명 사법리스크에 갇힌 민주당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당은 지금 5년 전 남북합의가 중요한 상황이 아닙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단식 19일차인 지난 18일 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이날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평양공동선언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고, 신경쓰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 전 대통령조차 이재명 대표를 방문해 단식 중단을 요청하는 등 공동선언 이슈는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관련기사
평양공동선언의 현주소
현재 정국 상황에서 평양공동선언 5주년이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국제정세도 변했고, 한반도정세도 변했고, 국내정세도 변했습니다. 평양공동선언은 이대로 잊혀지는 걸까요?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전 주석의 7.4남북공동선언 이후 50년간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늘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새로운 합의가 만들어지는 날이 오리라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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