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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욱

(시론)안보위기에서 딴청 부리는 대통령

2023-09-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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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에콰도르, 투르크메니스탄, 네팔, 슬로베니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태국, 불가리아, 그리스, 가나, 파라과이. 일반인이라도 이런 나라가 있다는 것쯤은 안다.
 
그런데 다음 국가를 보자. 세인트루시아산마리노, 모리타니, 세인트키츠네비스, 시에라리온, 북마케도니아. 들어본 적 있는가? 외교에 꽤 관심이 많은 필자도 처음 들어보는 나라들이다. 이번 유엔 총회에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양자 정상회담을 하는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를 포함해 총 30개국이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오찬 목록에 올라와 있다.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리셉션과 만찬을 제외하고도 이렇게 많이 만난다.
 
윤 대통령이 국내에 돌아와 자신이 만난 정상들의 이름을 기억이나 할까. 아무리 부산 엑스포 유치가 절실한 상황이라지만 짧은 기간에 양자 정상회담 기록을 세워 “기네스북에 등재 신청을 하겠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은 기가 차다. 이건 지독한 외교 중독이다.
 
지금 한반도 주변이 어떤 정세인가. 냉전 종식 이후 30년 넘게 고립되었던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9월 13일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난 데 이어 16일에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만나고 돌아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국제적 포위망을 돌파할 확신을 얻은 듯하다.
 
미국과 일본은 거의 비상사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가장 중요한 북한 변수가 출현한 것도 모자라 북한이 현대화된 군사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것 자체가 끔찍한 재앙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 보좌관은 그동안 쳐다보지도 않던 북한에 러시아에 포탄을 보내지 않도록 “설득하겠다”고 말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한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긴급히 러시아로 가서 라보로프 러시아 외교 장관과 예정에 없던 회담을 할 예정이다.
 
무언가 주변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정작 한반도 안보의 당사자인 윤석열 정부만 동맹 외교에 안주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대지진을 예고하는 파장이 느껴지는 지금,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안전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출현했는데 중국이나 러시아에 특사 파견을 검토도 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당장 “담판을 하자”며 특사를 보내거나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 사태에 개입해야 한다. 이번 유엔 총회는 북한-중국-러시아로 이어지는 대륙 연합의 출현을 견제하면서 한반도 주변 정세 변화에 개입할 절체절명의 외교 공간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나라들을 만나 부산 엑스포 유치에 소중한 시간을 다 써버리겠다는 거다.
 
그동안 “글로벌 중추국가”를 외치면서 외교 강국을 자처해 온 윤석열 정부가 막상 동북아시아 지정학의 변동에 대응할 정책 수단은 하나도 없다. 솔직히 이건 탄핵감이다. 1950년의 한국 전쟁은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의 스탈린 지원을 받아 남침을 했고, 나중에 중국 의용군이 개입했다. 당시 이승만은 북한과 중국-러시아로 이어지는 대륙 연합의 실체에 무지몽매했으며, 전쟁을 막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390만 명이 사망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이 일어났다. 지금 윤석열과 뉴라이트가 가장 숭배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가 바로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다. 73년 전과 마찬가지로 러시아가 북한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중국이 발을 담그는 모양이 펼쳐지는데도 윤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과 다르지 않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은 정신 차리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이 위험해 진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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