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연인과 헤어진 후 보복할 목적으로 상대방의 성적인 사진·영상 등을 유포하는 ‘리벤지 포르노’ 범죄를 저지른 미국 남성이 약 1조 6000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는데요. 이렇게 천문학적인 금액이 나온 이유는 미국이 시행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때문입니다. 오늘 토마토Pick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란?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전보배상 외에 추가적으로 징벌적 성격의 훨씬 더 많은 배상액을 부과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영미법에서 발달한 제도로, 징벌적 손해배상의 주된 목적은 불법행위자의 악의적인 불법행위를 처벌하고, 이를 예방 내지 억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대륙법을 바탕으로 하는 국내에서는 아직 전면적으로 도입되지는 않았지만, 도입 여부에 대해선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기능
-처벌적 기능 : 처벌기능과 장래에 유사한 불법행위를 예방 또는 억제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처벌기능은 그 본질이 위법행위를 한 자에 대한 응보로써 이루어 지는 형사상 제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준수 기능 : 실제 손해 이상의 배상액을 피해자에게 취득하게 함으로써 피해자로부터 불법행위를 고발하도록 유인하는 기능 또는 불법행위를 적발하도록 촉진시킬 수 있습니다. 권리를 주장하는 제소를 장려한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억제효과로써 법규위반 행위를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법을 실행하는 효과와 법을 준수하도록 합니다.
-만족적 보상기능 : 현실적으로 발생된 손해를 전보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소송에서 자신에게 발생한 모든 손해를 주장⋅입증할 수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요. 전보적 손해배상에 일반적으로 포함되지 않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과 변호사비용, 소송비용 등을 보상해줄 수 있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역사
영미법계 국가는 '불법행위자의 이득이 손해를 배상하고도 남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따라 오래전부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요. 가장 먼저 이 제도를 시행한 국가는 영국입니다. 1763년 영장 없이 압수·수색 당한 출판업자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처음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했습니다. 이후 1964년 영국 법원이 "공무원에 의한 억압적 권력남용행위와 불법행위로 얻은 이득이 손해를 배상하고도 남는 경우, 관련 분야를 규율하는 법률에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규정돼 있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된다"고 판단하면서 현대적 의미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시행됐습니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영미계 국가들도 오래전부터 징벌적 손해배상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 사례들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가장 발달한 나라로, 미국 법무부 통계국에 따르면 전체 손해배상 청구소송 가운데 약 10%가 징벌적 손해배상 형식으로 청구되고 있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명확히 규정하는 연방법이나 주(州)법은 없지만, 보통법에 근거해 대다수의 주에서 다양한 형태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인정되고 있습니다.
-1994년 맥도널드 커피 소송 : 가장 유명한 사례입니다. 스텔라 리벡이라는 할머니가 맥도널드에서 파는 커피를 마시다 몸에 쏟아 심하게 데어 소송을 걸었는데요. 맥도널드 측이 스텔라의 실수라고 주장했지만 스텔라가 신체의 6% 이상 3도 화상을 입었고, 커피의 뜨거움으로 인한 피해자가 무려 700여명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대법은 맥도널드 측에 최종 64만 달러(약 8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2009년 필립 모리스 담배회사 소송 : 남편이 담배를 40년 간 하루 세갑씩 피우다 폐암으로 숨졌는데 담배 회사가 흡연의 위험성을 제대로 경고하지 않았다며 1999년 아내 마욜라 윌리엄스가 필립 모리스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미 연방대법원은 필립 모리스사에 7950만달러(약 100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2023년 도널드 트럼프 성폭행 2차 가해 소송 : 사상 최초로 미국 대통령이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사례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약 27년 전 성범죄 의혹과 관련해 총 배상액 500만달러(약 66억원)를 배상해야 하는데요. 이 중 200만달러가 성추행에 대한 배상, 징벌적 배상으로 2만달러입니다. 명예훼손 배상액은 270만달러, 징벌적 배상액은 28만달러입니다.
한국에서는 어떤가?
기본적으로 한국은 대륙법 체계를 따르고 있어 징벌적 배상제도가 없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도입 이야기가 나왔고, 2000년대에 들어 국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도에 국민적 공감 부족, 기업 부담 심화 등 이유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는데요. 시간이 흘러 개별법률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예가 늘어났습니다. 2011년 '하도급법' 개정을 통해 처음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됐는데요. 갑질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의 경우 실제 피해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후 2018년 기준 '환경보건법' 개정까지 약 10개의 법률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됐습니다. 다만 징벌적 손해배상이 실제로 청구된 경우는 매우 적고, 그나마도 청구가 인용된 예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고찰없이 미국법을 참고해 법안을 만들다 보니 실제 해석·적용을 할 경우 난점이 많다는 평가입니다.
징벌적 손해배상 찬반
이 제도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여전히 치열합니다. 각자의 입장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찬성
-피해자에 대해 실효성 있는 손해 배상을 얻게 하는 동시에 가해자의 행위의 악성에 대하여 제재를 가함으로써 강력한 예방 조치 가능
-대기업 등 갑의 위치에 있는 자에 대한 위법행위를 효과적으로 제재 가능
-피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부분도 가해자의 반사회성을 근거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실손해액 증명의 부담을 덜 수 있음
-미국에서 실제로 징벌적 손해배상 때문에 기업이 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음
반대
-어마어마한 금액 배상으로 인해 기업 운영의 리스크가 커져 전체적 경제발전 저해의 결과를 낳을 수 있음
-실손해의 정도에 상관없이 막대한 배상금 지급을 가능하게 한다면 무차별적인 소송전이 일어날 수 있음
-대륙법을 적용하고 있는 한국으로선, 민사법 체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음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정부 책임이 희석될 가능성
결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과거 가습기 살균제 사건,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건, 라돈 침대 사건, BMW 화재 사건 등 대형 소비자피해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다만 법안 도입은 여전히 지지부진합니다. 현재도 지금 도입되어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형식적, 명목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과 기업에게 과도하게 부담이 된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가 수천명에 달함에도 여전히 배상 문제가 난항을 겪고 있는데요.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관련된 제조물의 안전과 관련된 분야 등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우선적인 확대도입이 필요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본래 목적한 바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단과 적절한 운영방안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