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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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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삼중 '한계'…중대재해처벌법, 시작부터 누더기였다

제정 당시 원안에서 대폭 후퇴…입법 취지 훼손

2023-08-10 06:00

조회수 : 2,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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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박진아·최수빈 기자] 지난해 근로자 사망 사고로 대국민 사과까지 했던 SPC 그룹에서 또다시 치명적인 끼임 사고가 발생하면서 일명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사업장의 재해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경영자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부과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산업현장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는데요. 안전을 위한 법률과 제도를 강화하고 있음에도 산재가 줄지 않자, 법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들이 많습니다. 정치권 안팎에선 '예견된 결과'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시작부터 허점이 많은 누더기 법안이었습니다. 반쪽 법안으로 전락한 중대재해처벌법의 문제점을 짚어봤습니다.
 
지난달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생명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저지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개악저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①5인 미만 사업장 제외
 
9일 고용노동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1월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조업 50인 이상, 건설업 50억원 이상의 사업 또는 사업주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법 위반 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나타나면서 내년 1월27일부터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는데요. 문제는 법의 사각지대인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라는 점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제정 당시 △중대재해에 대한 발주자 책임 삭제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처벌 수위와 징벌적 손해배상액 대폭 하향 등 원안의 내용을 대폭 수정한 탓에 '입법 취지가 심각하게 훼손된 누더기 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산재 사고가 시설이 열악한 소규모 작업장에서 집중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5인 미만 사업장 제외'는 '노동자 죽음을 막겠다'는 법안 취지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가장 큰 허점으로 지목됩니다. 때문에 노동계와 산업현장에서는 중대산업재해로부터 시민과 종사자를 보호하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법이 적용돼야 할 곳이 바로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②재벌 총수 면책권
 
중대재해처벌법이 갖고 있는 또 다른 허점은 처벌을 통한 책임 범위가 희미하다는 것입니다. 법안은 경영책임자 범위에 대해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데요. 
 
핵심은 '또는'이라는 단어입니다. '또는'이라는 단어가 삽입되면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책임을 피할 길을 열어뒀는데요. 즉 산재가 발생해도 재벌 총수 등 실질적인 책임자가 아닌 안전보건 담당자에게 책임이 돌아가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당초 법안 제정 당시 원안과 정부안에서 '사업상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 '사업 운영을 총괄하는 권한 또는 책임이 있는 자'로 제시한 부분을 일부 반영하긴 했지만, '또는' 이라는 표현을 관철하면서 그간 꾸준히 제기돼 왔던 '책임 전가' 문제를 해소하지는 못했습니다.
 
③처벌 수위 후퇴
 
산재 사망 때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징역 1년 이상, 벌금 10억원 이하', 법인도 '5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는 처벌 수위 역시 당초 원안하고 비교하면 대폭 후퇴했습니다.
 
원안에서는 '2년 이상 징역·5억원 이상 벌금'이었던 것이 정부안에서 벌금형에 10억원 상한을 두는 것으로 일보 후퇴했고, 여야 논의 결과 '1년 이상 징역·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재차 후퇴했습니다. 징역 하한선은 낮춰졌고, 벌금은 그나마 있던 하한선이 사라졌는데요. 징벌적 손해배상도 손해액의 '최저 5배'로 제안됐다가, '최대 5배'로 대폭 완화됐습니다. 
 
때문에 노동계와 산업 현장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수위를 전반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특히 관련 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예방적 차원에서 사회적 환기 효과와 정부의 로드맵 구성 등 일부 효과가 있지만, 가시적인 효과라는 부분에선 의문"이라며 "특히 처벌 조항과 관련해 현행법은 굉장히 추상적으로 표현, 궁극적으로 최고책임자가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법이 만들어졌지만 (강력한) 처벌은 내려진 적이 없다"고 꼬집으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으니 예방 효과가 측정이 안 된다"고 평가했습니다.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지난 1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아·최수빈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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