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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현

(차기태의 경제편편)우발사건인가 필연인가

2022-10-26 06:00

조회수 :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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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각종 산업재해가 하루가 멀다고 일어난다. 그때마다 수많은 인명이 죄없이 희생당하거나 재산상의 손실을 당한다.
 
이렇게 잦은 산업재해 가운데서도 지난 15일 일어난 경기도 수원 SPC 계열사의 사고는 특히 더 가슴 아프다. 20대 여성이 공장을 다니면서 어머니와 남동생의 생활을 책임져왔는데, 불의의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 노고에 보상을 제대로 받기는커녕 기업의 무책임 때문에 가족들과 영원한 이별을 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SPC는 사고가 난 현장에서 문제의 기계들을 그다음 날부터 다시 가동했다고 한다. 그리고 23일 또다시 손가락 절단 사고가 일어났다. 안전불감증이 체질화되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듯하다.
 
같은 날 벌어진 카카오톡 먹통 사태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데이터센터 입주 건물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로 말미암아 먹통 사태가 일어났고, 그 사태가 며칠이나 계속된 것이다. ‘국민 메신저’를 운영하는 경영자의 책임 의식이라고는 없었다.
 
이런 사고들은 얼핏 보면 모두 우발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단순한 우발사건이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산업 현장의 끊임없이 일어나는 재해를 막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올해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 전면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재계는 과잉 입법이라는 식으로 비판하면서 사실상 철폐를 요구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도 선거 과정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문제가 많다고 맞장구쳤다.
 
윤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규제 완화 드라이브도 걸기 시작했다. 재계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아마도 법의 집행 자체가 흐지부지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걸기도 했을 것이다. 중대재해법이나 산업재해에 대한 경각심도 상당히 무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기에 이번 사고는 필연적인 사건이었다고 여겨진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는 법이다. 설령 중대재해처벌법이 다소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지적하는 데도 적합한 시기가 있는 것이다. 산업재해가 크게 줄어들어 이제는 그런 법은 굳이 없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설 때 할 일이다. 그런데 그런 여건도 안 되고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산재면허장’을 주자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가 하면 지난달 19일에는 플랫폼 민간 자율기구가 출범했다. 윤석열 정부가 온라인플랫폼 문제를 다룰 법을 제정하지 않고 민간 자율에 맡기기로 한 방침에 따라 만들어진 기구이다.
 
그럴듯한 논리이다. 어차피 인간사회의 모든 일을 법으로 규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도 지적한 것처럼, 성문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인간사회에서 경험과 상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온라인플랫폼 사업자들은 소상공인과 소비자들에 대해 우월한 지위를 향유하고 있다. 그 우월적 지위를 선량하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 이기적으로 써먹는다. 이 때문에 수많은 소상공인과 소비자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눈물짓는다. 힘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고 플랫폼 사업자들이 우월한 힘을 남용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그렇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를 마다하고 ‘민간 자율’이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대형 온라인플랫폼을 사실상 풀어주니 긴장과 책임감이 약해지는 것은 사실 필연에 가깝다.
 
그러니 카카오톡 먹통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없다. 올 것이 왔을 따름이다. 게다가 국민 메신저로서 책임감도 없었으니 먹통 사태를 스스로 불러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온라인플랫폼의 책임과 의무를 명시하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런 최소한의 법규마저 없다면 제2, 제3의 먹통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인간 세상의 무수히 많은 ‘우발사건’ 가운데 사실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많다. SPC 산재사고와 카카오톡 먹통 사태가 바로 그런 사건들이다. 우발사건을 올바르게 해결하는 지름길은 따로 없다. 그 사건을 초래한 필연적인 요인들을 확실히 제거해야 하는 것뿐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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