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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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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이 XX들"은 어디 갔습니까!

2022-09-29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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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난데없이 'MBC'가 정쟁의 중심에 등장했습니다. "날리면"을 "바이든"으로 자막을 입힌 MBC의 첫 보도가 문제가 됐습니다. 국민의힘은 'MBC 편파·조작 방송 진상규명 TF'를 조직하고 28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MBC를 항의 방문했습니다. TF 명칭에서 드러나듯 국민의힘은 MBC를 편파·조작 방송으로 규정했습니다. 
 
대통령실 '해명대로라면'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외교안보 기조의 대전제로 삼은 상황에서 유엔 총회가 열리는 미국 뉴욕에서, 그것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주최의 행사장을 빠져나오면서 미국 대통령과 의회를 모욕한 상황이 연출됐으니 매우 난감했을 겁니다. 외신들도 주요 뉴스로 다룬 터라,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미국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 요청대로 수십 번을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바이든'으로 생각해서 들으면 '바이든', '날리면'으로 생각해서 들으면 '날리면'으로 들립니다. 듣는 사람의 사전 인식 차이입니다. 무엇보다 발언 당사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이 아니라고 주장하니 일단 믿을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 XX들"은 사라졌습니다.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만 남았습니다. 
 
다음은 26일 해외 순방을 마치고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주장입니다. 
 
"논란이라기보다…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실과 다른 보도로서 동맹을 훼손한다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그 부분을 먼저 얘기하고 싶고요. 그와 관련한 나머지 얘기들은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석이 되십니까. 'MBC가 '날리면'을 '바이든'으로 사실과 다르게 보도해 동맹이 크게 훼손됐다. 그러니 이에 대한 진상 규명이 우선이다. 나머지 논란은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 동의하십니까. 결국 미국 의회든, 한국 국회든 "이 XX들"로 지칭한 것은 큰 문제가 안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48초 짧은 환담에도, 윤 대통령에게는 바이든 대통령만 중요합니다. 
 
그러니 이해가 됩니다. 앞서 윤 대통령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방한 때 휴가 중이라는 이유로 만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차별을 다룬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쟁점이었음에도 대통령실은 미 의회의 파트너는 우리 국회라고 했습니다. 논란이 되자 부랴부랴 전화통화로 펠로시 의장과 의견을 나눴을 뿐입니다. 펠로시 의장이 우리 측 홀대에 불쾌감을 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윤 대통령은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도 같은 질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펠로시 의장이 중국을 견제할 목적의 칩4 동맹(한국·미국·일본·대만)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중국을 의식한 윤 대통령의 의도적 회피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니 의회 자체에 대한 무시가 아니었을까 의심됩니다. 대통령실 해명이 이 같은 의심을 키웁니다. 이는 한국 국회에 대한 비하로도 연결됩니다. 졸지에 야당인 민주당과 함께 "이 XX들" 범주에 들게 된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대의제에 대한 인식 부재를 지적하기는커녕 MBC와의 전선 형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박수영·유상범·배현진 등 일부 의원들은 "이 사람들"이라고까지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듣기평가 2교시를 해야 하나요?
 
의회를 대통령 아래로 보는 잘못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인식이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와 맞물린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입니다. 대통령 눈치만 보며 맹목적으로 앞장서는 여당 의원들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국민을 진정 위험에 빠뜨리는' 이는 다름 아닌 윤석열 대통령 자신입니다. 해당 발언의 논란에도 16시간 가까이 침묵했던 대통령실의 대처도 분명 사태를 확산시켰습니다. 사과는커녕 최소한의 유감 표명도 없이 MBC 탓만 하는 여권의 모습에서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 차지철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아직 대통령 임기가 4년 반 넘게 남았다는 점에 한숨만 커집니다.  
 
정치부장 김기성 kisung01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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