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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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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LH 직원은 땅 투자하면 안되느냐"고?

2021-03-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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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 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토부-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개발 관련 기관 임직원 주거목적 외 부동산소유 금지 방안"에 대해 설문한 결과 72.6%가 찬성했다. 분노가 극에 달하지 않고서는 나오기 힘든 수치다.
 
LH직원 투기의혹 건을 대하는 정부-여당의 자세, 안이하다. 조직적이고도 영악한 이번 건은 중대 사안으로 비화됐다. '기존 틀' 안에서 해결하려 하면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정의와 공정이라는, 촛불정부 정체성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알려진 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의 일성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개발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건 아닌 것 같다. 신도시 개발이 안될 걸로 알고 샀는데, 갑자기 신도시로 지정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일부 직원의 일탈"이라고 했다. 개발이 안될 걸로 알고서도 58억원을 대출받아 땅을 사고 묘목을 심는 사람도 있나. 그런 사람 있으면 변 장관은 소개 좀 해주기 바란다. 그러면서 대단한 일이라도 한 양 직위해제를 거론하고, "재발 시 인사 불이익"을 대책이랍시고 내놨다. "재발 시"라니. 현실 인식이 얼마나 안이한지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LH의 직전 사장이었다.
 
투기보다 그의 이런 발언에 국민 분노가 더 커진 걸 변 장관만 몰랐다. "인사상 불이익"이라니. 파면과 형사처벌도 성에 차지 않아 하는 민심을 그만 모르고 있다. 이번 사건은 법을 고쳐서라도 엄벌에 처해도 될까 말까 한 사안이다. 공정과 정의를 표방한 정권에서 이런 사건은 치명타다. 이러니 수구-반동세력이 날뛰는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이번 건은 변 장관 말마따나 도덕 불감증이나 일탈이 아니라, 명백한 반사회 범죄다. 법을 고쳐서라도 최대의 처벌을 해야 한다. 정의와 공정을 해한 자들에게 최대의 고통과 비참함을 주지 않는다면, 그 정치적 후과는 가혹할 것이다. 2017년 5월 대선으로 갑작스레 출범한 현 정권에 공정과 정의는 숙명이었다. 그런데 신분과 직무가 공무원에 99% 준하는 LH의 투기자들은 이를 비웃듯 대놓고 능멸했다. 사건 며칠 후 나온 LH의 사과문은 오히려 국민들을 경악시켰다. "재발 시 인사상 불이익"만 언급하며 "투기자 14명 중 2명은 LH 전 직원"이라고 현직 숫자 줄이기에 급급했다. 이 판국에 전-현직을 구분해서 어쩌자는 말인가. 한 명이라도 숫자를 줄이고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서라도 축소하고픈 생각 밖에 없다는 얘기다.
 
LH는 한 마디로 사과와 수습의 기본이 돼 있지 않다. 사과는 원인 및 경과·결과를 (사과 시점까지) 조사된 대로 밝히고, 피해자들에게 상응하는 사과를 함으로써 위로를 다 하는 한편, 재발방지책을 통해 용서를 비는 절차로 진행되는 게 마땅하다. "인사상 불이익"은 국민적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우수수…민심 떠나는 소리가 LH와 국토부 사람들에게는 왜 들리지 않을까. "아직 진상파악이 덜 돼서, 전수 조사중이고, 수사를 의뢰할 지도 몰라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말 할 셈인가. 그러면서 "현직은 12명에 불과하다"는 말은 하고 싶던가.
 
"LH 직원은 투자하면 안되느냐"고. 하시라. 다만 옷 벗고. 어떻게 이런 망발을 버젓이 대놓고 할 수 있는가. LH 전-현 사장은 직원들 입에서 이런 말이 터져나오는데도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LH 사람들에게 직업윤리를 말 하는 건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를 거는 격이다. LH는 수 조원 대 부채를 국민 세금으로 탕감받고 출범한 공공 기관이다. 그런데 "LH 직원은 투자하면 안되느냐"는 말이 나오다니…. 평소 국가관과 직무자세가 어떻길래 저따위 소리가 나오는가. "그 입을, 그 글을 쓴 LH 직원 손을 찢어버려도 후련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임을 왜 변 장관이나 LH 경영진은 모르는가. 기존 직원들이 오죽 썩어 나자빠졌으면 보다 못한 신입 직원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제보했을까.
 
공무원-공기관 개혁실패의 후과가 크고도 무섭다. LH의 일부(인지 상당수 인지 모르겠을) 쓰레기 때문에 촛불정부가 의심받는 것은 주권자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배신이다. 이 정부는 유한하지만, 촛불정신은 무한하다. 아울러, 촛불은 어느 한 정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새기고 또 새길 일이다. 4년 전 그 겨울, 시민들이 시린 손으로 처절하고도 근엄하게 든 촛불을 기억하라. "아직도 촛불 운운하느냐"는 그 입, 당장 닥치라. 현 정부가 후임 정부에 물려줄 유일한 유산은 구조화된, 그리고 한층 공고해진 촛불정신이다, 이어야 한다.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pen33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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