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신인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가운데, 일본 정부가 비슷한 내용으로 제소된 자국 기업에 대한 배상이나 화해에 응하지 말라는 지침을 전달하는 등 반발이 거세다. 우리 정부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것과 더불어 여러 선택지를 다각도로 검토하면서 이를 둘러싼 우리 정부의 후속 조치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선 전문가들은 국제사법재판소는 국가 간 분쟁을 다루기 때문에 개인 간 민사소송은 관할권 문제 등으로 제소대상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일본이 제소해도 우리 정부가 응하지 않으면 절차가 진행될 수 없다.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중재도 마찬가지다. 청구권 협정 3조에 따르면 협정 해석에 관해 분쟁이 있을 경우 양국은 외교적 경로를 통해 해결하고 이게 어려우면 중재 절차를 거치도록 했으나 이를 강제하는 조항은 없다.
일각에서는 한·일 청구권 협정의 근간이 무너졌다며 국제사회를 향해 우리나라의 판결을 비판하고 나서는 일본에 대해 양국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신중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기한다. 반면, 이 문제가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되는 것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김기태 사단법인 국제법률전문가협회 상근부회장은 “전쟁범죄 행위인 강제징용 문제가 국제적으로 부각되면 단순히 일본과 우리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인권 문제로 프레임이 전환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외교적 대응과 더불어 대법원판결을 통해 확정 받은 권리를 실현을 위한 우리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대리인인 김세은 변호사는 “(강제 징용과 관련된) 많은 분이 재판을 보고 기다렸다”면서 “남아 있는 사람에 대한 권리구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하면 사법부에서는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청구 인용을 하는 판결을 하게 될 것인데, 관련한 사람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제징용에 대한 승소 판결이 나왔으나 일본 기업인 신일철주금으로부터 배상금을 실질적으로 받아내는 문제가 남아있는 등 유사 소송에서도 승소로 얻는 실리가 불투명하다. 신일철주금이 자발적으로 배상금을 내지 않는다면 법원이 신일철주금의 국내 잔류 재산을 강제집행할 수 있으나 외교 문제 등으로 실행 가능성은 작다. 신일주철금이 보유한 일본 내 재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일본 법원이 이미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해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 일제 강점기 피해자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은 일본 정부의 거부로 3년째 재판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결국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난 뒤 정부가 피해자 명예회복과 실질적 지원을 위해선 외교 역량과 행정적 노력의 병행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기업이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린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가 승소 후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