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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회장은 마이너스의 손"…'승자의 저주'로 지금껏 자금난
2006년 대우건설 인수로 시작된 '승자의 저주'…형제 결별과 분쟁까지 촉발
입력 : 2018-07-09 오후 6:37:13
[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사태를 계기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자질론이 도마에 올랐다. 기내식 공급 차질이 16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과정에서 빚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룹 재건에 과도하게 집착한 박 회장의 경영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룹에 자금난을 안기면서까지 무리하게 인수했다가 되팔아야 했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까지 회자되고 있다. '승자의 저주'는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금난의 원흉이 되고 있다.
 
9일 아시아나항공 노조가 소속된 전국공공운수 노조는 인천공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벌의 갑질과 탐욕이 기내식 차질을 야기했다"며 박 회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앞서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지난 6일과 8일 두 차례 집회를 열고 "박 회장은 손만 대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박 회장이 그룹 재건 및 자금난 해소를 위해 자신이 최대주주인 금호홀딩스(현 금호고속)의 1600억원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추진했고, 기존 기내식 공급업체인 LSG코리아가 배임 등의 위험성을 들어 이를 거절하자 업체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이번 기내식 대란이 빚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중국 하이난그룹은 박 회장 측 요청대로 1600억원 규모의 BW를 매입을 수용,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공급의 30년 독점권을 쥐게 됐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과 하이난의 합작사인 게이트고메코리아 신설공장이 불에 타면서 기내식 대란을 야기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재계에서는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6년 대우건설 인수와 2008년 대한통운 인수가 금호아시아나 추락의 근원이라고 설명한다. 기내식 업체까지 바꾸며 이른바 돌려막기를 할 수밖에 없는 사태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2002년 9월 회장에 취임한 박 회장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를 추진했다. 1946년 선친 박인천 회장이 설립한 금호아시아나는 박 회장의 형 박성용·정구 회장이 초석을 다지며 1987년 재계 22위에서 2000년 8위까지 약진했다. 금호아시아나는 항공을 비롯한 물류와 석유화학 등 탄탄한 사업구조를 갖춰 외환위기도 탈 없이 넘겼다. 박 회장은 신성장 동력 확보라는 명분 하에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연이어 인수했다. 인수에는 무려 10조5000억원이 투입됐다.
 
과감한 투자에 박 회장에 대한 주가는 치솟았다. 하지만 주변의 만류에도 무리한 투자를 감행, 내부의 우려는 갈수록 커졌다.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품에 안으면서 2007년~2010년 재계 순위에서 라이벌인 한진을 제쳤지만 결국 '빛 좋은 개살구'에 그쳤다. 이 과정에서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절대 만류에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박찬구 회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2006년 대우건설과 2008년 대한통운 인수까지 13개월 만에 무려 10조원의 자금이 들어갔다"며 "2008년 말부터 부채가 늘어 위험신호가 여러 곳에서 발생했다"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곪았던 환부가 드러났다. 대우건설 인수에 따른 재무부담은 가중됐고, 해결 방안을 놓고 형제 간의 분쟁이 촉발된 것도 이 무렵이다. 당시 그룹 내에서는 금호석유화학 등을 팔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살려야 한다는 쪽과 항공과 석유화학 등 본업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박찬구 회장은 "형은 금호석화를 희생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손실을 메우려 했다"며 "대한통운 등의 매각은 형이 베팅한 것에 대한 (경영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버티면서 출혈도 계속됐다.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9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등 핵심 계열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갈 만큼 금호아시아나는 크게 휘청였다. 결국 박삼구 회장은 2009년 대우건설을, 2010년에는 대한통운을 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대우건설 등의 처리를 놓고 갈등을 빚었던 동생과도 결별했고, 이는 금호석화라는 알짜 기업을 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금호타이어 인수도 지난해 손을 떼야 했다. 박 회장 취임 당시 재계 9위였던 금호아시아나는 올해 24위까지 곤두박질쳤다. 승자의 저주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당시 공중분해될 뻔한 그룹을 재건하고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기내식 업체 변경의 무리수를 둔 것이 기내식 대란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박 회장의 경영실패도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최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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