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워낙 말 수가 적었다. 작품 속 이미지와는 달리 사석에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말을 하지 않았다. 특별히 내성적이거나 낯을 가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배우 김강우는 그랬다. 사실 따지고 보면 ‘꼭 해야 할 말’만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질문 하나하나에 곰곰이 생각하고 대답했다. 물론 대답이 짧아 인터뷰어 입장에선 상당히 곤욕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작품에 집중해 온 탓일까. 아니면 의례적으로 시간이 흐른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불혹이란 나이가 가져 온 여유일까. 부쩍 말 수가 늘었다. 여유로워졌다. 배우라면 누구나 꺼리는 가족과 아들 이야기에도 웃으며 화답한다. 물론 최근 촬영을 마치고 개봉 대기 중인 ‘사라진 밤’에서 김강우는 당혹스러움의 연속이다. ‘국민 죽일놈’을 각오하고 있다며 웃는다.
김강우. 사진/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지난 5일 오후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테이블에 놓인 ‘사라진 밤’ 홍보 팜플렛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국과수 사체 보관실을 배경으로 사체 검안대 위 하얀색 속옷 차림의 김희애가 부자연스런 자세로 앉아 있다. 정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온통 푸른빛이 감도는 차가운 공간이다. 분위기만으로도 공포감이 감돈다. 김강우는 빙긋이 웃으면서 못내 관객들이 오해를 할지 모를 지점을 먼저 전했다.
“이 포스터도 사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요. 이게 포스터를 찍자고 만든 컷이 아니에요. 현장에서 스틸 기사분이 ‘자세 좀 잡아 주세요’ 하면서 찍은 게 결국 포스터로 사용된 거에요. 우선 전 마음에 너무 드는데. 관객 분들이 혹시 공포영화로 오해하실까봐. 하하하. 공포 영화 잘 못 보시는 분들 많잖아요, 저도 공포는 잘 못 보거든요. 저희 영화는 꽤 영리한 추리 스릴러물인데. 포스터만 보고 오해는 안하셨으면 해요(웃음)”
김강우. 사진/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그의 우려처럼 공포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연기한 ‘박진한’은 죽은 아내 윤설희(김희애)에게 억눌린 채 살아온 인물이다. 아내 자체가 공포였다. 함께 한 삶 자체가 공포였을 수도 있다. 결국 그는 아내를 죽인다. 영화에선 처음부터 박진한이 범인이란 점을 공개하고 시작한다. 스페인 영화 ‘더 바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국내에서도 개봉했던 영화라 ‘누가 범인일까’는 사실 스포일러가 아니다.
“아마 원작을 보신 분들도 꽤 있으실 것이고. 제가 범인이란 점은 굳이 숨길 요소는 아니에요. 다만 ‘진짜 죽었나?’ ‘살아는 있는가?’ 등등 보시는 분에 따라서 여러 가지 추리가 가능한 트릭이 곳곳에 숨어 있죠. 그 맛이 아주 뛰어난 영화에요. 콘셉트 자체가 원작과 달라요. 결국 범인으로 나오는 제가 관객들이 느끼는 심리를 오롯이 끌고 가야 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았죠. 제가 느끼는 감정이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 그대로가 될테니.”
김강우. 사진/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밀폐된 공간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사건 그리고 국과수 취조실 등 온통 낯선 공간이며 짧은 시간이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배우 본연의 연기력으로 전달을 해야 한다. 갇힌 공간이기에 관객들이 느낄 서스펜스는 감독의 연출력 그리고 배우 본인의 연기력 두 가지로만 풀어야 한다. 워낙 탄탄한 이야기가 김강우를 매료시켰지만 사실 처음엔 출연을 망설였다고.
“우선 전 원작을 못봤어요. 지금도 안봤고. 처음 시나리오를 건네받았을 때도 제목은 원작과 같은 ‘더 바디’였어요. ‘무슨 의학 영화인가?’하고 봤는데. 와 뒤통수 맞는 느낌이었죠. 그런데 감독님이 신인이더라구요. 위험해 보였죠. 제대로 이 느낌이 나올까? 사실 의심이 됐어요. 그런데 망설이던 찰나에 제작사에서 감독님이 연출한 단편을 하나 보내주셨어요. 아주 짧은 단편인데. 소름이 돋았죠. 완전한 밀폐 공간에서 벌어지는 얘기인데 서스펜스가 진짜 대박이었요. ‘이 정도이니 원작이 있는 영화를 리메이크하겠다고 하셨구나’라고 이해가 됐죠.”
김강우. 사진/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출연을 결정한 뒤 학교 직속 선배인 김상경 그리고 김희애의 합류가 그에게 천군만마의 힘을 더해 줬다. ‘아내를 죽인 남편’ 그리고 처음부터 범인임을 공개하고 시작하는 충격 반전의 서스펜스를 절반이상 혼자 끌고 가야 하는 부담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두 선배의 합류가 김강우에게서 그 부담감의 무게를 덜어주게 됐다.
“상경 형님과는 홍상수 감독님 ‘하하하’ 한 편 밖에 작업을 안 해 봤지만 워낙 친했구요. 사실 언젠가 같이 하게 될 것이고, 같이 하게 된다면 형님이 형사 역을 할 때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저 막연히 해왔어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랬죠. 아내역의 김희애 선배님이야 저에겐 학창시절부터 뮤즈였죠. 그냥 우러러보던 존재였는데(웃음). 정말 많은 도움도 받았고. 배우로서의 자세나 가정을 꾸리면서 활동을 하시는 모습 모두 저에겐 뮤즈세요.”
김강우. 사진/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두 선배의 합류가 큰 힘이 됐지만 그럼에도 김강우는 부담이었다. 아내를 죽여야 하는 남편의 심정 그리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전해야 하는 입장. 한정된 공간 속 심리 모두가 철저히 계산을 해야 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했다.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가 된 뒤 김강우의 연기에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지금도 ‘제대로 한 것인가’란 의문은 여전하다고. 배우라면 당연하다. 그때마다 신인답지 않은 이창희 감독의 결단력에 그는 조금씩 의문을 지웠단다.
“아마 전체 촬영 분량에서 편집으로 덜어낸 게 10분도 채 안될 겁니다. 거의 그대로 찍어서 그대로 다 사용했다고 보시면 되요. 신인 감독이 이러는 거 결코 쉽지 않거든요. 불안하니깐 현장에선 되도록 많이 찍게 되요. 근데 각 장면의 테이크도 많이 안갔어요. 한 번은 제가 너무 불안해서 ‘설희와의 이야기를 좀 더 찍어야 관객들이 이해가 되지 않겠냐’라면서 제안도 드렸어요. 근데 ‘아니 이걸로 충분해요’ 딱 이 한마디였어요. 근데 영화를 보니 감독님의 그 말이 이해가 되더라구요.”
김강우. 사진/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그렇게 탄생된 영화는 충격적 반전과 탄탄한 구성 그리고 출중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만든 캐릭터로 벌써부터 ‘웰메이드 반전 스릴러’란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든 ‘아내를 죽인 남편’ 그리고 ‘사라진 사체’ 여기에 ‘반전의 충격’이 더해져 ‘사라진 밤’이 완성된 것이다. 김강우는 자신이 꼽는 ‘사라진 밤’ 즐기기 팁을 전했다.
“범인이 누군지는 이미 공개돼 됐잖아요. 제가 범인이에요. 하하하. 근데 그 외에는 모든 게 베일 속에 가려져 있어요. 아마 보시면 다양한 추리가 가능할거에요. 그런 추리를 끼워 맞추는 재미가 꽤 쏠쏠한 영화입니다. 아!!! 개봉 후 보시게 되면 반전에 대한 비밀은 예의인 것 아시죠(웃음)”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