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헌법재판은 사회변화를 수용할 줄 알아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헌법이 모두 불변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진성 헌법재판소 소장이 개헌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이렇게 정리했다. 지난 5일 가진 출입기자단과의 인왕산 산행에서다. 이번 산행은 이 소장이 제안해 이뤄졌다. 평소에도 산행을 즐겨 틈만 나면 산을 찾는 이 소장은 지난해 11월27일 헌재소장에 취임한 뒤 한번밖에 산에 오르지 못했다. 지난해 10월27일 점심시간 중 조국 민정수석으로부터 헌재소장 내정소식을 들었을 때도 헌재 인근에 있는 한 산에 있었다고 한다.
이 소장은 “헌법이 바뀌면 (바뀐)헌법에 따라 재판을 한다. 지금까지 해온 게 잘못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가서 판단해봐야겠지만, 헌법이라는 것이 항상 불변은 아니다. 사회현실을 반영한 헌법이 생기면 그것을 반영한 결정이 바로 나온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이와 함께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말이 있지만 헌법에 눈물이 있다는 얘기는 없다. 헌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말을 만드는 것이 내일의 야망이라면 야망”이라고 말했다. 동행하던 기자가 “헌법은 눈물로 만드는 것 아닌가”라고 묻자 “헌법은 피와 눈물로 만든 것이다. 지금의 민주주의 체제를 완성하기 위해서 얼마나 피를 많이 흘렸나. 혁명을 여러번 거쳐야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헌재 재판관 인사청문회 때 뒷 얘기도 이날 나왔다. 이 소장은 김종삼 시인의 <장편2>라는 시를 애송한다.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와 헌재소장 취임식에서 각각 전문을 낭송했을 정도다. 헌법재판관 취임식에서는 전문을 읽지 않았지만 역시 언급했다.
“장편2 라는 시가 있다. 헌재재판관 청문회 때 인사말을 심의관이 대강 써서 줬다. 그래서 뻔한 얘기라고 새로 썼다. 심의관들이 자기들끼리 회의 한 다음 ‘청문회 인사말에 시가 들어가면 곤란하다’고 해서 ‘이 청문회는 내 청문회다’라고 고집을 부렸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지금도 시 <장편2>를 외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화제가 됐던 이정미 헌재소장 대행의 ‘헤어롤’은 선고가 모두 끝난 뒤 기사를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탄핵 선고 후)같이 점심을 먹는데 이 재판관께서 창피하다고 했다. 아이들도 전화해서 ‘엄마 왜그랬느냐’고 했다고 한다. 우리(재판관들이)가 괜찮다고 했다. 얼마나 일에 집중했으면 몰랐겠나. 원래는 동승한 여자경호관이 차에서 내리기 전 빼준다고 하는데, 그날은 이 재판관께서 먼저 내리셔서 체크를 못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예전에 집사람과 해외에 갔을 때 집사람이 그걸(헤어롤) 안 가져왔다고 해서 구해다 주느라 힘들었다. 편의점에서 샀는데 ‘헤어롤’의 정확한 이름을 몰라 바디랭귀지로 사다 줬다”며 헤어롤과 얽힌 본인의 추억도 떠올렸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1987’은 아직 못봤다고 말했다. 소장이 된 뒤 밀려드는 업무 때문이다. 1987년 당시 그는 부산지법 판사였는데, 이때 미국으로 장기연수를 떠났다. 이 소장은 “나는 그 상황을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다. 그때 외국에 나가려고 외환은행에서 돈을바꾸러 갔었는데 주변이 시끌시끌하더라. 무슨 일인가 하고 그냥 지나갔는데, 그게 그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대학 진학 전 학창시절 원래는 상대로 진학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고1이었던 1972년 10월 유신이 터지면서 법대로 진로를 정했다. 이 소장은 “10월유신 때 동급생 7명이 유인물을 배포한 혐의로 체포돼 고초를 겪는 것을 보고, 그전에는 상대를 갈 생각이었고 법을 전공할 생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법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영화도 즐겨보는데, 대부분 애니매이션이라고 한다. 최근 아내와 본 영화는 '러빙 빈센트'로 고흐의 자살을 소재로 만든 작품이다. 그는 "집사람이 보고싶은 것 보다 내가 보고싶은 것을 주로 본다. 다 애니매이션이다. 그 전에 본 영화는 '너의 이름은'이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은 애니매이션 '명탐정 코난'이다.
이날 산행은 인왕산 등산로인 청운도서관과 윤동주 기념관, 박노해 전시전, 백사실계곡 구간에서 진행됐다. 김헌정 사무처장과 박준희 공보관 등 헌재 관계자들과 기자 37명이 함께 했다.
지난 5일 오후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2018년 새해를 맞아 출입기자들과 함께 인왕산 자락길 산행을 하고 있다. 사진/헌재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