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박기동 전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이 업무방해와 뇌물 등 혐의로 27일 구속 기소됐다. 이번 사건은 비뚤어진 성향이나 부패한 인사가 인사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지는 고위 공직에 임명될 경우 사회적으로 어떤 악영향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여서 주목된다.
청주지검 충주지청(지청장 조기룡)이 이날 발표한 수사결과에 따르면, 박 전 사장은 오래 전 악습인 ‘남존여비’ 사상에 가까운 신념으로 인사권을 전횡한 것으로 드러나 특히 충격을 주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공공기관 인사 과정에서, 절차를 무시한 채 성별에 대한 개인적 편견에 사로잡혀 자의적으로 여성만을 탈락시킨 최초의 사례”라고 지적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사장은 평소 ‘여자는 출산과 육아휴직 때문에 업무연속성이 단절될 수 있으니 조정해서 탈락시켜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실제로 그는 2015년과 2016년 직원 선발 당시 아예 처음부터 여성합격자를 줄이기 위해 인사담당자 등 5명과 짜고 면접점수와 순위를 바꿔치기 했다.
성적조작 공모 면접관들, 인사자료 아예 안 봐
당시 박 전 사장의 지시를 받은 면접관들은 아무런 인사자료를 읽어보지도 않고 면접평가표만 보고 합격자를 정했다. 이들은 합격이 확실한 여성지원자를 ‘X' 표시를 해 제외한 뒤, 예비 합격권에도 들지 못한 남성지원자를 ’O'로 표시한 다음 화살표로 순위를 변경했다. 심지어 자격증과 경력이 풍부해 면접 성적이 2위였던 여성지원자를 8위로 변경해 탈락시킨 반면, 자격증이나 경력도 없는 남성지원자(5위)를 3위로 변경해 합격시켰다.
이렇게 되는대로 전형을 하다 보니, 기업명만 보고 경력을 무시한 채 재원을 탈락시킨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다. 여성지원자인 A씨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230개 지점을 보유한 국제 가스도관업체 John Crane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지만 면접관들은 같은 이름의 크레인 제작회사로 잘못 알고 경력 미달자로 탈락시켰다.
박 전 사장은 가스안전공사의 시장 지배적 지위를 악용해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뇌물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사로 근무하던 2012~2014년 연구용역 계약과 항공권 구매 대행계약 등을 체결해주거나 특정 업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KGS코드를 개정해 주는 등 대가로 총 9개 업체들로부터 뇌물로 1억 3310만원을 받았다.
뇌물거래 대상된 KGS코드, 국민안전과 직결
관계법령과 가스안전공사에 따르면, KGS코드는 가스관계법령에서 정한 시설·기술·검사 등 기술적인 사항에 관한 상세기준으로, 이른바 ‘가스 3법’으로 불리는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액화석유가스의 안전관리 및 사업법', '도시가스 사업법'의 공백을 막아주고 있다. 기준이 총 164개에 달하고 가스 기술 전반과 일반 가정에 흔히 있는 보일러·LPG가스용기·밸브 등 가스 제품에 적용돼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다.
이 가운데 특정한 상세기준은 특정 업체·제품에 한정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가스안전공사가 특정업체에 사실상 2~3년간 독점권을 부여하게 된다. 특히 KGS 제·개정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구조 때문에, 가스안전공사는 관련 업체들에 대해 절대적인 위치에 서게 된다는 지적이다.
검찰 관계자는 “ KGS 코드 분야는 고도의 전문성·기술성이 요구되는 반면 관련 업계 종사자는 소수”라며 “상호 견제기능이 약한 특성상 가스안전공사와 유착해 특정 업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KGS 코드를 제·개정하는 구조적 비리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사 때부터 업무 전 영역 걸쳐 뇌물수수
이번 수사에서는 박 전 사장이 공사에서 힘을 쓸 수 있는 이사 재직시절부터 업무 전 영역에 걸쳐 뇌물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공사와 업체간 계약상 편의를 제공하거나 KGS코드 제·개정, 대통령표창 대상자 추천 및 선정, 승진 등 자신의 지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총 동원했다.
매우 충격인 것은 박 전 사장이 뇌물을 받기 위해 아예 관련 업체와 사전에 차명으로 동업계약서를 작성하고 납품 대금의 30%를 수익으로 정산해 천원단위까지 받아냈다는 사실이다. 검찰 관계자는 “관련 업자와의 유착이라는 일반적인 비리 행태를 훨씬 벗어난 ‘동업형’ 뇌물비리”라고 지적했다.
박기동 전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이 2015년 9월 충북 진천군 진흥복지원을 방문해 가스시설 안전점검과 함께 가스 안전사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 전 사장은 그러나 이 전인 이사로 재직시 가스안전 상세기준인 KGS를 업체 요구대로 바꿔주고 거액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