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금융시장 불안 해소를 위해 조성하는 채권시장안정펀드를 놓고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10조원 규모 채권안정펀드를 재가동하는 가운데 금융위원회는 채권안정펀드 출자 금융사에 대한 한은의 유동성 지원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반면, 한은은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유보적인 입장이다.
금융당국과 통화당국의 시각차가 뚜렷한 가운데 채권안정펀드에 출자해야하는 금융사들은 금융당국이 내부 논의 절차를 생략하고 속도전으로 펀드 조성을 추진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 상황인지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채권시장안정펀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도입된 것으로, 90개 시중 금융회사가 협약을 맺어 펀드 규모를 약정한 뒤 필요할 때마다 이 펀드를 통해 회사채 등을 사들여 채권 가격을 안정시키는 기능을 했다.
금융당국에서는 내년 채권시장 변동성에 따라 펀드 규모가 10조원 이상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달 초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채권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채권안정펀드를 가동하겠다고 밝히면서 "필요하다면 10조원 이상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채권시장 안정화 대책이 가시화 되면서 시장의 눈은 한국은행으로 쏠리고 있다. 한은은 과거 펀드가 처음 조성된 2008년에 금융권과 함께 절반씩 분담하는 형태로 채권안정펀드를 조성한 바 있다.
금융위 역시 한은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난 2008년 한국은행과 시중 금융사들이 맺은 계약이 유효하기 때문에 이번 채권안정펀드에 대한 금융사 출자가 이뤄지면 한은과 금융사간의 조율하는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은은 채권안정펀드 조성에 유보적인 입장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번 달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시기상조라고 본다"고 밝혔다. 한은 고위 관계자도 "이 총재 발언 이후 업데이트 된 내용은 없고 한은에서 진행 중인 사항도 없다"고 말했다.
한은 내부에서는 "금융위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이 없다"고 설명하면서 펀드 조성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까지 전해진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한은이 사기업들의 회사채를 지원해야 할 만큼 경제상황이 심각하냐는 것이다.
일부 사기업을 돕고자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도 예상된다. 국책은행의 구조조정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자본확충펀드 조성을 놓고 정부와 한은이 공방을 벌인지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한은이 유동성 지원을 하게 되면 금융사들의 출자 부담은 다소 줄어들게 된다. 채권안정펀드에 대한 금융업권별 출자금 할당율도 금융위기 당시 기준이 그대로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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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자 할당을 받은 금융업권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금융위가 신속한 펀드 조성을 이유로 규모와 비중에 대한 논의를 생략하다시피 했다. 금융위기 당시 펀드 분담율을 그대로 적용해 신생 회사나 자산총액이 늘어난 회사는 분담액이 크게 늘어났다. 금융권 관계자는 "업권별로 자산비중이 바뀌면서 보험사와 증권업권의 출자 비중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다른 업권 관계자는 "사안의 시급성을 이유로 당국에서 일괄적으로 정한 기준이라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며 "내부 절차를 거의 생략할 정도로 펀드 조성이 이렇게 급박하게 이뤄져야하는지 의문이다"고 토로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사진)은 이달 초 금리 상승 대응방안을 발표하면서 "채권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재가동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