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압박 수위를 연일 높여가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시작되고 얼마 뒤 최순실(60·개명 최서원·구속기소)씨와 안종범(57) 전 청와대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제1부속실비서관 등을 연이어 구속하면서 박 대통령의 수족을 모두 묶더니 바로 박 대통령에게 “대면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최씨 등 핵심 인물들 기소를 앞두고는 ‘조사 시점은 18일이 마지막’이라는 경고를 보냈고, 박 대통령이 유영하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앞세워 시간 끌기에 나서자 "최씨 등 구속된 피의자 범죄의 중요한 참고인이자(박 대통령 본인도) 범죄 행위가 문제 될 수 있다"고 말해 사실상 피의자임을 시사했다. 지난 20일 최씨 등을 구속 기소하면서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에는 기재만 안 됐지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박 대통령을 지목했다.
검찰이 이처럼 초강수로 시시각각 박 대통령을 몰아세우는 배경에는 희대의 ‘국정 농단’이라는 사건의 특성과 정가를 비롯한 국민적 공분이 있기도 하지만 검찰 스스로 수사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한 대검찰청 관계자는 “사건 초기부터 김수남 검찰총장은 끝장을 봐야 한다는 지침을 이영렬 특별수사본부장 등 수사팀에 강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전선에서 강도 높은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이 본부장이지만 결국 최고 사령탑인 김 총장의 의지라는 것이다. 대검은 공식 부인했으나 김 총장이 지난 20일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 제3자뇌물수수죄에 대한 수사 언급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며 수사팀을 질타했다고 전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대통령과 김 총장, 두 사람은 사실 복잡한 인연이 있다. 그 시작은 영남대학교로,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남대는 1947년 ‘경주 최 부자’ 후손들이 설립한 대구대학을 박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강탈해 청구대와 1967년 강제 통합해 만들었다. 박 대통령은 1980년 4월 영남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가 이사로 내려왔지만 영남대를 실질적으로 운영했다. 그러던 중 1988년 11월 부정입학과 교비 횡령 등 학내비리가 불거지면서 총장까지 검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총장은 김기택 박사로, 김 총장의 아버지다.
비리 연루자 대부분이 법정에 섰으나 김 박사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러나 1988년 4월 김 박사 역시 스스로 사임했다. 학내 민주화와 유신재단 퇴진 등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점거농성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다. 박 대통령도 그해 11월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런 사연 때문에 김 박사와 박 대통령 사이는 좋지 못했다. 김 박사는 당시 박 대통령을 가리켜 ‘직은 이사지만 사실상 이사장’이라고 비판했고, 박 대통령 역시 꼬장꼬장한 김 박사를 탐탁치 않게 봤다고 전해진다. 주위에서는 두 사람을 두고 '앙숙'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고도 한다. 김 박사는 이후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같은 대구 출신인 박 대통령이 아닌 포항 출신의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공개 지지했다. 이때 김 총장은 인천지검 2차장 검사로 있었다.
이 전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김 총장은 검찰 요직 중의 요직인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영전했다. 이후 청주지검장과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을 거쳐 서울남부지검장에 취임해 서울 4대문 안의 검사장이 됐지만 MB정권 끝물인 2012년 7월 수원지검장으로 발령이 난다. 이때 김 총장은 공직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을 만나게 되는 데 그것이 바로 통합진보당 '이석기 내란사건‘이다. 김 총장이 진두지휘에 나서 이 전 의원은 현직 의원 신분으로 구속 기소됐으며 2015년 1월 징역 9년이 확정됐다. 이보다 조금 앞선 2014년 12월19일 이 전 의원이 소속됐던 통합진보당도 헌정사상 처음으로 헌재로부터 해산 결정을 받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때문이었을까, 2013년 4월 고검장 1차 승진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김 총장은 그해 12월 서울중앙지검장(고검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하게 만회했다.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절에는 ‘정윤회 문건파문 사건’ 수사를 지휘한 끝에 사건을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의 조작극으로 마무리 짓고 이들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2015년 10월, 김진태 당시 검찰총장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면서 차기 검찰총장이 누가 될 것인지가 정계와 법조계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때 취임하는 총장이 박 대통령 임기만료까지 검찰을 지휘하게 되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당시 대검차장을 역임 중이었다. 사법연수원 16기인 그는 자기 보다 한 기수 아래지만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 김경수 대구고검장, 김희관 광주고검장 등 쟁쟁한 후보들과 경쟁했다. 법조계는 가장 선배인 김 총장의 우위를 점치는 분위기였지만 과거 영남대에서 있었던 김 총장 부친인 김 박사와 박 대통령의 일을 아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 총장은 총장이 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김 총장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고 자신의 남은 임기와 차기 대선을 맡겼다. 그래서 정계에서는 김 총장을 두고 ‘순장조’라고도 불렀다. 김 총장도 2015년 12월2일 취임사에서 "최근 폭력시위 행태가 용인 한도를 넘었다"며 '공안 드라이브'를 예고해 당시 박 대통령의 국정기조에 화답했다. 하지만 취임 1년도 되기 전인 지난 10월27일 김 총장은 ‘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위한 특별수사본부 구성을 지시하고 현직 대통령인 박 대통령을 향해 정면으로 칼을 겨누고 있다. 박 대통령은 모든 검찰 조사를 거부한다고 밝혔지만 검찰은 이르면 23일 ‘피의자 박근혜’ 조사 시점을 정해 청와대에 통보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12월10일 오후 청와대에서 김수남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